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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독서 노트

생명공학의 발달… 축복인가 재앙인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생명공학의 발달… 축복인가 재앙인가

생명공학의 발달… 축복인가 재앙인가

인간의 미래
라메즈 남 지음/
남윤호 옮김/
동아시아 펴냄/
324쪽/ 1만4000원

‘전차남’은 연애 경험이 없는 22세의 청년이 한 여성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어찌할 바 몰라 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도움을 요청, 누리꾼들과 댓글을 주고받으며 만남을 이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당시에는 이 책이 왜 밀리언셀러가 됐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IT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가’란 책에서 일본 남성의 연애관을 다룬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일본 남성은 ‘회사형 인간’이 많다. 거의 날마다 집과 회사만 오간다. 회사에서도 컴퓨터나 실험기구 같은 ‘기계’하고만 논다. 인간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회화 과정이 생략되다시피 하니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발달한 기술을 이용해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사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생산된 ‘상품’이니 가치중립적일 리 만무하다. 그런 상품이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까? 아닐 확률이 높다는 것이 ‘IT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가’의 결론이다. 이 책에서는 제조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도 제기한다.

지금 IT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BT(생명공학)다. ‘인간의 미래’는 “유전공학이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과도하다 싶을 만큼 생명공학을 옹호한다. 저자는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환영하며, 사회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탐구를 금지하기보다 우리의 심신을 개선할 힘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한 생명공학은 전화, 자동차, 책, 기계 등 인간의 능력을 강화시킨 기술처럼 우리에게 서로 소통하고, 세계를 배우고, 인류에 기여하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기에 “인간의 자연적 본성”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루게릭병의 치료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치료만으로도 근육량과 근력의 감소를 막아 노화를 방지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알츠하이머병 치료 연구를 통해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고도로 강화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칼로리를 제한할 수 있는 안전한 약이나 유전자 치료법이 개발돼 육체적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정신적으로도 젊은 시절의 유연함을 지키면서 한결 충만한 삶을 즐기는 시대가 곧 오리라 내다본다. 이는 “만약(if)이 아니라 시간(when)의 문제”일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컴퓨터 인터페이스인 임플란트 같은 인공신경장치를 뇌에 삽입함으로써 인간의 지각에 컴퓨터의 통찰력까지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뇌는 아이디어, 경험, 혁신을 주고받는 시장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강해질수록 뇌는 통합되고 일체화해간다. 이렇게 생물학적 뇌를 통합함으로써 마음속 생각과 경험을 풀어헤쳐 서로 공유하고 이들을 다시 끼워맞춰 ‘월드 와이드 마인드’를 구축할 수 있다.

생명공학은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장래에 부모들은 체외수정, 착상 전 유전자 진단, 자궁 내 유전자 치료 같은 유전자 조작으로 아이의 건강이나 외모(머리카락, 눈동자, 피부 색깔, 키, 용모, 건강 요인, 운동능력, 몸무게 등)는 물론, IQ나 성격 등 정신적 형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저자는 우리 능력을 초월해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려는 생각, ‘현세에선 이룰 수 없는’ 무언가를 달성하려는 야망이야말로 인류세계를 구축한 원동력으로 본다. 그래서 ‘충분하니 이제 그만하면 됐다’가 아니라 ‘그럼 다음엔 뭘 할까’라는 노력을 계속 경주하다 보면, 1000년 또는 100만년 뒤에는 도저히 우리 후손이라고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 탄생하리라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마치 SF(공상과학) 소설처럼 읽었다. 현대과학의 첫 번째 화두였던 인간 육체의 결점을 보완해온 과정과 앞으로 이뤄질 변화를 매우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과학은 약진할 것이다. 그리고 생명공학의 발전 덕에 인간의 수명은 급속히 길어질 것이다.

예전에는 힘이 들 때면 어디 가서 나를 복제한 뒤, 복제인간은 사무실에 두고 나는 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폰서(실제 인간)에게 장기와 신체 부위를 제공할 목적으로 탄생한 복제인간이 스폰서를 살해하는 ‘아일랜드’라는 영화를 보고 깜짝 놀라서 “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다.

자본 증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던 과학문명에 대한 절망감과 합리적 이성에 대한 신뢰감의 붕괴로, 인간의 관심은 몸과 마음으로 옮겨왔다. 온몸으로 느끼는 감성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마음은 대중이 결핍을 느끼는 유일한 영역이다. 이런 시대에 알약 하나로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면서 너나없이 장수한다고 해서 인간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미각 하나만 상실해도 우리는 존재 이유 자체를 잃을 수 있다. 성장주의자들의 환경파괴가 인류의 종말을 걱정하게 만들 듯, 기술의 산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먼저 냉철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생명공학에서도 우리는 결국 ‘제조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는 않을까?



주간동아 604호 (p178~179)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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