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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운영 투명하게” 입주민들의 작은 혁명

서울 독산한신 아파트 … 공사비리 사건이 발단, 새 대표 뽑아 개혁 시동 1년 만에 변화 실감

  • 정경진 아시아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아파트 운영 투명하게” 입주민들의 작은 혁명

“아파트 운영 투명하게” 입주민들의 작은 혁명
9월7일 오후 3시 대법원 1호 법정. 서울 금천구 독산한신 아파트 주민 12명은 초조하게 재판장의 판결을 기다렸다. 다른 소송 당사자들이 판결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주민들의 긴장감은 커져만 갔다. 드디어 최종선고의 순간.

“사건번호 2007다21986, 원고 독산한신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피고 ·#52059;·#52059;기계설비 주식회사.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판결이 내려지자 주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일부 주민은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소송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얻어낸 값진 결과였다.

2004년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와 공사업체가 결탁해 발생한 비리사건으로 시작된 재판은 대법원까지 가는 지루한 법정다툼 끝에 당시 공사계약이 무효라는 최종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 재판은 단순히 한 아파트 주민들만의 승리가 아니었다. 한번 잘못 뽑은 입주자대표의 전횡이 전체 주민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실감케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5년 현재 우리나라 아파트 거주 가구 수가 전체의 40%에 이르고 신도시의 경우 80%를 넘는 실정. 그러나 입주자의 무관심과 주민 대표들의 불투명한 운영으로 대다수 아파트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게 된 우리 현실에서 독산한신 아파트 사례는 ‘주민 권리찾기’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인터넷 카페 통해 민원 제기하고 신속 처리

1991년 입주한 독산한신 아파트는 171㎡(52평) 288가구와 115㎡(35평) 712가구 등 총 1000가구로 이뤄진 비교적 큰 단지다. 한 해 관리예산은 35억~40억원으로 웬만한 중소기업 매출규모와 맞먹는다. 그러나 아파트 관리나 운영방식은 주먹구구식이었다.

2004년 7월, 48억원에 이르는 열병합 발전설비 및 배관교체 공사를 하면서 당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일부 동대표, 공사업체가 결탁한 비리사건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같은 해 11월 입주자대표회의를 해산하고 공사계약이 무효라며 해당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후 소송을 당한 업체가 아파트 주민 수백명을 상대로 60여 건에 이르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혼탁한 법정다툼이 시작됐다.

당시 주민들이 들고일어난 것은 일차적으론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통을 이어받은 입주자대표도 입주민이 원하는 것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여전히 비공개로 이뤄졌고 회의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주민들에게 매달 배포되는 관리비 부과 명세는 수입과 지출 외에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관리사무소는 민원을 늑장 처리하는 게 다반사인 데다 불친절한 직원들 때문에 전화하기조차 꺼려질 정도였다.

입주자대표회의와 주민 사이의 반목이 심화되던 지난해 10월 한 주민이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만든 게 변화의 발단이 됐다. 이후 카페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던 10여 명의 주민이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 참석자들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비롯한 구성원을 교체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 지난해 말 동대표 선출에서 총 13명 가운데 9명이 새 인물로 바뀌었다. 올 1월부터 입주자대표회의를 맡은 박순원 회장도 당시 모임에 참석한 주민 중 한 사람.

박 회장은 “원해서 맡은 자리는 아니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과거에 회사를 경영해본 경험을 살려 아파트 규약에 따라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우선 아파트의 행정기구라고 할 수 있는 관리사무소 직원을 대거 교체했다. 관리소장을 포함해 15명 가운데 7명이 바뀌었다. 또한 전 직원 연봉제를 실시하고, 신규 직원은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평가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담당 업무별로 팀장 책임관리제도 도입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입주민이라면 누구나 방청할 수 있도록 공개했고, 인터넷 주민카페를 통해 각종 민원이 신속히 처리될 수 있게 했다. 20억원이 넘는 공사를 하기 위해 주민동의를 받을 때는 반드시 인감날인과 인감증명서를 첨부하게 하고 공개경쟁 입찰을 준수하도록 하는 등 아파트 관리규약도 크게 강화했다.

여기에다 다른 아파트에서는 보기 드문 주민투표위원회와 지킴이위원회, 소송담당위원회, 기술자문위원회 등 주민자치 조직을 만들었다.

각종 주민자치조직 만들어 활발한 활동

“아파트 운영 투명하게” 입주민들의 작은 혁명

금천구 독산한신 아파트에 승소를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주민투표위원회는 아파트 현안을 결정하기 위한 주민동의서 배포에서부터 작성, 수거, 집계, 소유주 확인까지 모든 과정을 공정하고 신속히 처리했다. 지킴이위원회는 경비 현황과 환경미화에 대한 평가·감독을 하면서,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쉬는 공휴일에 더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입주자들의 불법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예방하기 위해 200만원의 보증금 규정까지 만들었다. 아파트에 CCTV 등을 설치하는 공사를 할 때는 전문지식이 있는 자문위원들이 그 과정을 꼼꼼히 체크했다.

특히 소송담당위원회는 2004년 발생한 아파트 내 비리사건의 소송과정에서 50여 차례에 걸쳐 법원에 소명자료를 제출하는 등 적극 활동한 결과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이 같은 개혁의 효과는 높은 주민참여율로 나타났다. 수십명에 불과하던 인터넷 카페 회원이 390여 명으로 늘었고, 주민투표위원회와 지킴이위원회에도 15명씩 참여하는 등 호응이 높아졌다.

박 회장은 “무엇보다 아파트의 모든 운영 과정을 입주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의혹이 생기지 않게 했다”며 “각 위원회의 활동은 게시판과 홈페이지(인터넷 카페)는 물론 매달 발행하는 아파트 소식지를 통해 이중삼중으로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또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확산되기 시작한 게 20년이 넘었는데 관련 법규는 여전히 주택법 등 상위법에 의존한다”며 “입주자대표단체가 규약을 제대로 실천하는지를 규제할 구체적인 법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독산한신 아파트의 변화는 투명하지 못한 우리나라 아파트 관리 문화에서 작은 혁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독산한신 아파트의 개혁을 벤치마킹하려는 아파트도 하나 둘씩 늘어났고, 아파트 정화운동이 계속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국아파트연합회 최병선 사무총장은 “주택법은 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때 이를 조정하기 위한 분쟁조정위원회를 각 지자체에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지자체장들이 입주민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안에 끼어들기를 꺼려해 실제로는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입주자대표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을 규정을 만들어 감독해야 한다”며 “아파트 운영은 주민 이익과 직결된 만큼 입주민이 적극 참여하는 정화운동이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주간동아 604호 (p56~58)

정경진 아시아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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