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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휴대폰 문화인류학

휴대전화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휴대전화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휴대전화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미국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3월18일자는 ‘그들은 어떤 점에서 나은가(How They Do It Better)’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국내총생산(GDP)을 자랑하고 노벨상 수상자도 가장 많이 배출했지만 다른 나라들에게 배울 점이 여전히 많다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부탄은 흡연율이 가장 낮고, 독일과 네덜란드는 치안이 잘 정립돼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손님을 극진히 접대한다. 또한 싱가포르에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없고, 덴마크는 풍력발전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 기사는 이런 식으로 여러 국가의 장점을 나열했다.

그 안에 한국도 들어갔을까? 다행히 그렇다. 휴대전화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 면에서 일본과 함께 최고 수준이고, 미국의 광대역통신망보다 빠른 속도로 휴대전화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나라로 한국이 꼽힌 것이다. 우리에게는 별것 아닌 휴대전화 기능이 외국에서는 신기한 첨단장치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그것을 확인해준 일화가 하나 있다. 한국의 어느 연예인이 이탈리아 공항에서 겪은 일이다. 아무리 달래도 아이가 막무가내로 울면서 떼를 쓰자 이 연예인은 휴대전화를 활용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버튼을 조작해 여러 가지 신호음과 음악소리가 나오게 한 뒤 휴대전화를 보여주었더니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더라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어 연예인의 휴대전화를 구경했다고 한다. 100여 년 전 유럽인이 가지고 온 문명의 이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조선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한국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2006년 11월 4000만명을 돌파했다. 1996년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할 당시 가입자가 300만명이 조금 넘었으니 10년 만에 13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실로 폭발적인 성장이라 하겠다. 이제 거의 전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서로에게 접속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것이 불러일으킨 삶과 사회의 변화는 엄청나다.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대부분의 일이 돌아간다. 어쩌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나오면 종일 불안하고 업무에도 차질이 생긴다. 어느덧 휴대전화 없이는 일상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그야말로 휴대전화가 ‘생활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일 어떤 사람이 10년 전 감옥에 들어가 세상과 두절돼 있다가 갓 석방됐다. 이 사람은 주변에서 흔히 주고받는 대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문자 보냈는데, 그 사람이 그냥 씹어버리더라” “폰카 찍어서 날려줄래?” “나 디엠비(DMB)폰으로 바꿨어”….

공공장소에서 보게 된 낯선 풍경도 많다. 지하철에 앉아 휴대전화 버튼을 하염없이 눌러대는 청소년, 그 옆에서 조그만 모니터를 보며 깔깔대는 아가씨,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길을 걸으며 혼자서 소리 지르는 아저씨, 휴대전화를 얼굴 앞으로 놓고 포즈 취하며 사진 찍는 아베크족…. 이 모든 모습들 앞에서 그는 외계인이다. 우리의 삶은 그렇듯 엄청나게 달라진 것이다.

한국 문명사에서 휴대전화는 각별한 위상을 갖는다. 어떤 물건도 이처럼 빠른 속도로 보급되지 않았다. 소비자가 기종을 교체하는 속도도 가장 빠르다. 또한 어떤 전자제품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전 국민의 필수품이 된 적이 없다. 개인용 컴퓨터(PC)의 경우 대부분 가족이 공유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퍼스널(personal)’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에 비해 휴대전화는 철저하게 개인 소유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휴대전화는 재산목록 1호로 꼽힌다. 이 보물단지는 거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를 가리켜 ‘인간의 확장’이라고 했지만, 휴대전화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그 개념을 구현하면서 신체 일부로 자리잡았다.

일찍이 전화가 타인과의 소통에서 물리적 장벽을 허물어뜨렸지만, 서로에게 접속하기 위해서는 전화기에 붙어 있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휴대전화는 그 제약마저 해체했다. 덕분에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편리함이 주어졌다. 휴대전화의 쓰임새를 들여다보자.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친구와 합류할 때 탑승구 위치를 알려줄 수 있다거나,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을 때 친구에게 부탁해 가져오도록 한다거나, 누나가 옆방에서 전화하기에 가보았더니 누워서 하는 말이 ‘거기 전기 스위치 좀 내려줄래?’라고 해 황당했다거나….

모바일 시대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는가. 휴대전화에 관한 담론은 산업과 기술, 디자인 쪽으로 치우치며 피상적인 문명예찬으로 흐르기 일쑤다. 다른 한편으로 전자파 공해, 공공장소에서의 매너, 기업의 횡포, 소비자 권리 등 ‘문제’가 거론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이렇듯 급변하는 일상 자체의 해석과 성찰이 아닐까. 산업화와 민주화가 서구에서 오래전부터 진행돼온 것을 뒤늦게 따라잡는 것이었다면, 정보화는 거의 동시적으로 또는 우리가 한발 앞서 통과하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의 경험은 인간과 문명의 코드를 읽어내는 소중한 텍스트다.

우리에게 휴대전화는 과연 무엇인가. 이 자그마한 물건이 불러일으키는 생활의 혁명과 마음의 신화는 무엇인가. 언제든 누구든 접속할 수 있는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의 자의식과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용되고 있는가. 몸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무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정보환경은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빚어내고 있는가. 앞으로 연재될 ‘김찬호의 휴대폰 문화인류학’은 이런 물음을 가지고 출발한다. 사소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스쳐 지나가는 경험들을 다각적으로 낯설게 조명하는 이야기 마당에서 이 시대의 자화상을 함께 그려보자.

휴대전화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김찬호 교수
는 연세대 사회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대 객원연구원,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을 지냈다. 현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에서 강의하며 대학 밖에서 청소년 교육과 문화, 마을 만들기, 지구촌 시대와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등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를 보는 논리’ ‘도시는 미디어다’ ‘문화의 발견, KTX에서 찜질방까지’ 등이 있다.




주간동아 2007.09.04 601호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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