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1

2007.09.04

美 서브프라임 후폭풍 대미 수출 발목 잡을라

실물경제 전이 땐 내수시장 위축 불가피…한국 수출 감소·경제성장 둔화 우려

  •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경제실 수석연구원 soojong.kwak@samsung.com

    입력2007-08-29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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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서브프라임 후폭풍 대미 수출 발목 잡을라

    이자는 올라가고 집값은 떨어지면서 미국에서 팔리지 않는 주택이 급증하고 있다.

    3월 미국 상원의 ‘은행, 주택 및 도시위원회(Banking, Housing and Urban Affairs)’가 주최한 공청회에 방청객으로 참석했다. 분위기는 자못 심각했다. 연체율과 가압류가 날로 증가하는 현상을 놓고 원인이 무엇이며 미국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지, 크리스토퍼 도드 위원장과 상임위원들이 모기지 정책당국에 따져 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 위원회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부실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다. 그러나 갈수록 문제는 심각해지는 분위기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이토록 문제가 심각해질 때까지 방관만 해온 정책당국에 대한 성토와 모기지업체 규제방안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미 의회가 가졌던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국의 위안화 절상 문제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관련한 피해내용, 예상규모, 정부 대응책 등이다. 물론 당시 한국은 이 두 가지 이슈에 무관심했다.

    #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 이해하기

    그렇다면 요새 자주 언급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무엇인가. 흔히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결과론적 표현일 뿐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우선 모기지 시장과 모기지 대출상품을 구별해보자.



    모기지 시장은 크게 △프라임(prime conforming conventional mortgage) △프라임 점보(prime jumbo) △알트에이(Alt-A) △서브프라임(subprime mortgage) 시장으로 나뉜다. 시장을 구분하는 기준은 대출금 규모다. 대출금이 40만 달러(약 3억8000만원)를 넘어가면 프라임 시장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30만~40만 달러면 알트에이, 30만 달러 미만이면 서브프라임 시장의 주택으로 보면 무리가 없다.

    다음으로 모기지 대출상품을 살펴보자. 구입하려는 주택가격이 30만 달러라고 가정했을 때 주택구입자는 6만 달러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다. 일반적인 대출 프로그램이 ‘연리 6.5%, 30년 상환으로 24만 달러 대출’인 덕분이다. 대출금리는 변동금리나 고정금리 중 선택할 수 있다.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기준금리가 1%대였고 시중금리도 그리 높지 않아 대부분 고정금리를 선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경우를 예시했다. 모기지 대출상품은 수백 종류가 넘지만 크게 세 가지로 축약된다. △피기백(Piggyback) △이자율(Interest Only 혹은 Negative Amorti-zation) △무서류(Low/No Documentation) 대출이 그것이다. 피기백 대출은 주택구입자나 판매자가 가장 많이 애용하는 상품이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 때 소개돼 2004, 2005년 큰 붐을 이뤘다.

    美 서브프라임 후폭풍 대미 수출 발목 잡을라

    인천항에 선적된 국내의 수출 컨테이너. 서브프라임 부실문제가 얼마나 빠르게 조정 되느냐에 따라 대미 수출 기상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남의 돈으로 집 사는 것은 위험

    피기백은 집을 살 때 준비해야 할 20%의 선불금(downpayment)을 10%나 아예 0%로 줄여주는 상품이다. 이처럼 파격 조건이 가능한 이유는 이렇다. IT(정보기술) 버블 붕괴 이후 갈 곳을 찾던 유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네바다, 플로리다, 뉴욕, 버지니아 등 미 서부와 북동부 지역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집값이 오르면 실수요자들의 마음이 조급해지게 마련이다. 이 틈을 타 부동산업자들과 모기지 대출업체들이 실수요자를 상대로 피기백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주택경기가 활황일 때는 집을 계약하는 동시에 집의 자산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모기지 대출업체가 집값이 상승한 것으로 가정해 다시 5~10%를 더 대출해주는 것이다.

    집값은 올라가고 내야 할 돈은 줄어드니 소비자 처지에서는 ‘꿩 먹고 알 먹고’인 셈이다. 나쁠 게 없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이다. 피기백 상품은 보통 2년 후 대출금액과 금리를 재정리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주택 구입 당시 2년간 고정금리 6.5%로 대출계약을 하되 2년 후 만료시점에서 고정금리를 변동금리로 바꾼다. 또한 자산가치 변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대출금액과 금리를 조정한다. 즉 2004~2006년 상반기에 막차를 탄 주택구입자들은 2007~ 2008년 변동금리를 재조정해야 한다. 2006년 현재 전체 주택구입자 중 60%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이자율 대출은 피기백과 거의 유사하다. 다만 초기 2년 동안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게 하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2년 후에는 그동안 내지 않았던 원금의 2년치와 나머지 원금, 이자율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피기백과 똑같다.

    2006년 현재 이런 이자율 대출로 주택을 구입한 사람이 전체 모기지 고객의 23%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알트에이 모기지 시장 고객 중 62%가 이 상품을 택했다고 파악된다. 서브프라임뿐 아니라 알트에이 시장도 위험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근거가 바로 여기 있다.

    마지막으로 무서류 대출은 말 그대로 집을 사려고 돈을 빌릴 때 서류를 구비할 필요가 없고, 대출심사도 받지 않는 상품을 말한다. 보통의 경우 주택구입자의 신용정보, 신상정보, 소득수준, 기타 자산소유 현황 등을 파악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상품은 고객이 서류에 ‘내 소득은 얼마’라고 기입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돈을 빌려준다. 무서류 대출은 정확한 소득을 공개하기 꺼리는 자영업자들이 선호했다. 이들은 자신의 실제 소득보다 50% 이상 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 돈 빌려준 전 세계 투자펀드 잠 못 이루는 밤

    그렇다면 왜 부실문제가 일어났는가? 그 규모는 얼마인가? 그리고 한국 주택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먼저 부실의 실마리는 금리상승과 이자상환 부담의 가중에서 비롯됐다. 이미 기준금리가 4.25%포인트 올랐고 여기에 최근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다 보니 장기금리도 급상승하고 있다. 변동금리는 최고 15%까지 올랐다. 이처럼 매달 내야 하는 원리금 납입액이 크게 오른 반면 집값은 더 떨어지고 있어 팔기도 곤란한 상황이 됐다.

    결국 많은 이들이 90일간 연체가 지속돼 가압류 절차를 받게 되고, 주택 재고량이 많아지면서 가격도 하락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모기지 대출업체와 이들 업체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까지 일파만파 영향을 끼쳐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2007년 8월 현재 서브프라임 대출 1조3000억 달러, 알트에이 대출 7500억 달러, 프라임 대출 6조3700억 달러, 기타 1조7200억 달러로 총 10조1400억 달러(약 9500조원)다. 여기서 서브프라임과 알트에이 시장에서 각각 10%, 20%의 대출이 부실대출이라고 가정하면 부실 규모가 3000억 달러(약 28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엄청난 부실 규모도 문제지만 돈을 빌려준 투자펀드(헤지펀드, 투자은행, 사모펀드 등)들이 보유한 담보부채권 가격이 50% 수준으로 곤두박질친다는 점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즉, 모기지 대출업체에 돈을 빌려주고 받은 증권의 가치가 하루하루 잘려나가면서 손실이 더 커지기 전 남은 부분이라도 회수하려 해도 현재로서는 매수하려는 사람도 기관도 없다. 따라서 지난번 BNP파리바 은행처럼 개인투자자들이 투자금액을 환수하려 할 경우 충분한 자금이 없어 환매금지 조치를 단행하게 되는 것이다.

    주요 국가별 예상 손실규모를 보면 영국이 79억~220억 달러로 가장 크다. 다음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이다. 다행히 한국 금융기관의 손실규모는 1억~4억 달러로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나타난다. 버뮤다, 케이만 군도, 권시, 저지 등 돈세탁이 가능한 제3지역을 통과한 자본의 손실규모가 이미 밝혀진 국가별 손실 예상 규모의 합(총 1200억 달러)보다 1000억 달러 가까이 많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에서 서브프라임 부실의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불확실성과 불투명성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 서브프라임 부실이 실물경제로 전이될지가 관건

    이번 서브프라임 부실문제는 사실 과거 두 차례에 걸친 미국 내외의 금융시장 불안과 흡사하다. 1980년대 말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2.3%인 1530억 달러의 부동산 대출 부실로 발생한 ‘저축대부조합파산(S·LA)’과 1998년 러시아 부실국채 매입 및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에 따른 1000억 달러 규모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이 그것이다.

    하지만 두 사례의 파급 효과는 서로 달랐다. LTCM의 파산은 금융시장 문제로 제한됨으로써 미국 실물경제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경제는 1999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4.5%로 전해보다 0.3%포인트 상승했다. 그러나 80년대 말 S·LA 부실문제는 이와 사뭇 달랐다. 89년 경제성장률이 3.5%에서 90년 1.9%, 91년 -0.2%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서브프라임 부실문제는 실물경제로 전이될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면 주택모기지 대출 부실과 주택시장 둔화는 실물경제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일 것 같다.

    그렇다면 미국 내수시장의 위축 정도에 따라 향후 대미(對美) 수출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보아야 옳다. 그 정확한 규모를 현재로서는 파악할 수 없으나 원화 환율이 상승함에 따라 수출단가가 올라가고 기업의 수출 채산성이 증가한다면 이를 통해 상쇄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모기지 부실문제가 실물경제로 빠르고 깊게 전이될 경우 대미수출 물량은 감소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미 주택시장의 부실문제가 얼마나 빠르게 조정되느냐에 한국경제의 성장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 성장의 70%가 수출에 의존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다. 만약 원-달러와 원-엔 환율이 오른다면 앞서 언급한 대로 수출감소 효과를 상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반드시 한국경제가 나빠진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만일 미 달러에 대한 위안화 절상이 동시에 진행된다면 한국 수출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더욱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미국 달러에 대한 위안화 절상이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다. 위안화 절상으로 중국의 대미 수출 경쟁력이 줄어드는 틈을 타 한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과의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 점에서도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미국 실물경제와 내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가 관건이라 하겠다.

    # 시한폭탄 ‘엔 캐리 트레이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문제 이면에는 ‘엔 캐리 트레이드’라는 복병이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저리(低利)의 엔화가 헤지펀드, 사모펀드, 투자은행의 투자펀드 등의 형태로 일정 부분 주택저당증권(MBS)과 부채담보부채권(CDO) 매입에 나섰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엔 캐리 트레이드 문제는 지난 2월부터 시장에 조정신호가 나왔다. 이어 열린 G7 재무장관 회담에서 미국이 일본 편을 드는 바람에 엔화 저평가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못했다. 유럽연합(EU)과 중국의 목만 아픈 셈이 됐다.

    이머징 마켓을 주요 타깃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을 돌아다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글로벌 유동성 위축으로 빠르게 청산과정을 밟을 경우 국내 부동산, 증시 등 자산투자 시장에 잠복한 엔화 자산도 압박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원-엔 환율이 올라갈 것이고, 일본의 금리인상이 내년부터 본격화되면 엔화를 차입해 자산을 구매한 많은 기관과 개인들은 환율상승과 금리인상이라는 이중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과연 한국 금융시장은 서브프라임 부실과 엔 캐리 트레이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한국경제가 2007년 하반기에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 이 점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스템이 80년대 이후 급속히 진화한 것은 사실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발전과 함께 한국 금융시장도 비슷한 로드맵을 따라 발전해왔는지, 정부와 민간금융 부문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되도록 외풍을 차단하면서 환율과 금리, 통화에 대한 주도면밀한 정책 수립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금융시장은 실물경제와 달리 정책 타이밍, 스피드, 심리 등 경제 외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막차는 불리한 법이다. 엔 캐리 차입금 규모에 대한 ‘커밍아웃’도 해야 한다. 숨기고 혼자 해결하려다가는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 자본주의의 원칙은 이처럼 간단하면서도 명쾌하다.

    또한 시장의 신호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외국인 매도세가 연초부터 시작됐고 서브프라임 사태가 본격화되기 3주 전부터는 대대적인 매도세가 있었다. 조지 소로스는 “금융시장은 중간에 조정을 거치면서 다시 시장 균형으로 가기보다는, 끝까지 불균형으로 가고 난 다음에야 균형을 찾아간다”고 말한 바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이제는 과거와 다른 시스템과 운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한국 금융시장과 정책 당국도 이런 글로벌 금융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이제 시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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