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1

2007.09.04

가시밭길 ‘검증공세’그것이 문제로다

필승 대 필패 최대 분수령 … ‘당 개조’ 성공 여부도 빅카드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7-08-29 10:3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가시밭길 ‘검증공세’그것이 문제로다

    8월20일 전당대회장에서 이명박 후보(왼쪽)가 박근혜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다. 특히 ‘여의도식’ 정치를 낯설어한다. ‘생산성이 낮다’는 경제논리가 이런 시각을 만들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패거리, 형식주의, 관료적 발상 등 부정적인 정치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다. 이 후보는 이런 인식을 은연중에 노출한 적이 많다.

    1996년 이 후보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은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때 그의 아파트에서 ‘식객’ 노릇을 했던 홍준표 의원은 “그쪽(여의도)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고 회고했다. 지난해 3월에는 “(한나라당 인사들은) 해변에 놀러 온 사람 같다”는 독설을 입에 올렸다. 지난 5월 여의도에 사무실을 낸 이 후보는 출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측근이 그 이유를 묻자 “정치를 바꿀 구상을 끝낸 뒤에 출근하겠다”고 대답했다.

    기존 정치문화에 거부감 크고 쇄신 의지 각별

    8월21일 이 후보가 ‘당 개조론’을 언급한 것은 이런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감에서 비롯됐다 볼 수 있다.

    당 개조론의 원칙은 알려진 대로 ‘탕평’에서 출발한다. 탕평을 통해 ‘해변에 놀러 온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재배치하자는 것이다. 측근들에 따르면 당 개조를 위한 밑그림은 오래전에 그려놨다. 그 배경에 일을 중시하는 최고경영자(CEO) 출신 이 후보의 철학이 녹아 있다. 한 측근의 설명이다.



    “이 후보는 일과 현장을 중시한다. 실적으로 능력을 검증하고, 소통을 위해서는 상하관계를 버릴 때도 많다. 중요 회의 때는 여직원들도 테이블에 불러 앉힌다. 캠프 문턱도 다른 후보 진영보다 훨씬 낮다. 파벌이나 학벌도 중도 실용노선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이런 사고는 그대로 여의도로 수평 이동해 ‘이명박 당’의 근간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이 후보는 선수(選數)에 대한 개념이 기존 정치권과 다르다. 한 측근은 “사무총장에 초선 의원을 앉힐 수도 있다”고 말한다. “경선 과정에서 눈여겨본 의원이 여럿 있을 것”이라는 뒷말도 흘러나온다. 대상은 이명박 캠프의 참모만이 아니다. 자신을 무차별 공격했던 박근혜 캠프의 핵심 참모도 곁눈질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한 측근은 “이 후보는 박 전 대표의 핵심 참모에게 공격당해 화를 내다가도 ‘그 친구 참 잘 싸운다’는 평가를 내리더라”고 말했다. 탕평에 충실한다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후보의 새 파트너가 될 것이다.

    ‘당 개조론’은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된 이 후보의 첫 번째 필승 카드다. 이 후보는 당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안팎의 지적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본인도 동의했다.

    관건은 당 개조가 반발 없는 탕평하에서 진행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당 개조와 탕평은 일견 상호보완적으로 보이지만, 조금만 각도를 틀면 대치 개념으로 성격이 바뀐다. 경우에 따라 필승론의 발판이 되지만, 필패론의 함정도 도사리고 있다.

    가시밭길 ‘검증공세’그것이 문제로다

    8월20일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탕평과 ‘당 개조론’의 끝자락에 ‘박근혜’가 있다. 박 전 대표와의 연대는 대선 승리의 필수조건이다. 박 전 대표가 중책을 맡아야 시너지 효과가 난다. 유권자를 끌어모으는 박 전 대표의 능력은 현역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 수준임을 이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확인했다. 흐트러지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이 후보 측은 “적이지만 훌륭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경선 후 이 후보는 ‘박 전 대표를 끌어안으라’는 안팎의 요청에 직면했다. 한 참모는 ‘이명박-박근혜’ 투 트랙의 가동이 필승론의 요체임을 설명하는 장문의 보고서를 받았다.

    이 후보 측은 원칙주의자인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의 정권창출이라는 대의명분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후보 주변에서는 “(대선)후보 자리 빼고 다 줄 수 있다”는 말이 돈다. 그만큼 대선정국에서 박 전 대표의 위상은 강고했고, 앞으로의 구실도 클 것임을 예상케 한다. 정치 컨설턴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명박-박근혜’ 러닝메이트가 파괴력이 가장 크다고 분석한다. 윤여준 의원은 “이 후보와 박 전 대표가 손을 잡으면 90% 이상 대선에서 이긴다”고 확언한다. 이 후보 측 한 관계자도 “필승론의 출발점은 박근혜”라고 말한다.

    가시밭길 ‘검증공세’그것이 문제로다

    7월5일 박근혜 전 대표 측 유승민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이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러닝메이트 파괴력 막강

    그러나 이견도 고개를 든다. “박 전 대표가 사랑채 정도에서 생활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다. 아직은 미풍이지만, 논공행상 과정에 터져나올 이 같은 승자의 오만은 언제든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안방과 사랑채 논쟁이 격화되면 파열음은 불가피하다. 당 개조와 탕평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후보 측도 이 점을 우려한다. 당초 이 후보 측이 준비했던 ‘개혁 드라이브’의 수위는 고강도였다. ‘당명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자’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압승이 아닌 신승(辛勝)이 악재로 작용했다. 당심은 박 전 대표를 선호했고, 이 후보 측은 그런 박 전 대표의 당내 위상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후보 측은 이 문제를 부드럽게 풀지 못하면 필승론이 허상이 되리란 사실을 잘 안다. 또 그 틈을 타고 필패론이 고개를 들 것이라는 정치적 속성도 잘 안다. 이 후보의 필패론은 ‘한 방이면 끝난다’는 이른바 ‘한방론’과도 맥이 닿아 있다. 불과 3~5%의 국민지지율을 갖고 있는 범여권 주자들이지만 60%대 지지율을 확보한 이 후보에 대해 모두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그들의 자신감은 검증론에서 출발한다.

    ‘도곡동 땅’ 문제 등 이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이 의혹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 이 후보는 10% 이상의 국민지지율을 까먹었다. 국민이 갖고 있는 의문 가운데 상당 부분은 지금도 풀리지 않았다. 여권 주자들은 이 틈을 노리고 ‘진짜 검증은 이제부터’라고 압박한다.

    그들의 공세가 한나라당 경선처럼 단선으로 흐르리라 보는 것은 안이한 자세다. 여권은 지난 5년간 각종 조직과 정보를 취합하는 유리한 입장에 서 있었다. 검찰과 언론 등 전방위적인 검증작업도 예상된다. 선거판에서는 무엇이 진실이냐가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가 많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에 대한 의혹은 진실과 상관없이 투표에 나선 유권자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이 때문에 두 차례나 선거에서 패했다.

    그렇지만 이 후보 진영의 감은 다르다. ‘검증은 끝났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 본인도 같은 생각이다. 8월21일 아침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 후보는 ‘도곡동 땅’에 대해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내 땅이 아니다”라고 했던 발언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여론은 다르다. 좀더 구체적인 해명을 듣고 싶어한다. BBK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후보 측은 ‘아니다’는 주장에 악센트를 찍지만, 해명의 근거는 빈약하다. 이런 문제 제기에 이 후보 측은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이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데 정직하게 말하라 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 구체적인 근거를 내놔야 한다.”

    쓸데없는 논쟁이라는 주장이다. 그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 후보는 8월20일 저녁 방송 인터뷰에서 낙승을 예상했던 경선이 신승으로 끝난 데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양보하다 보니 경선 제도가 불리하게 됐다. 국민선거인단에 젊은 세대가 많이 포함되지 않았다.”

    정치인, 정치지도자는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경우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일단 ‘부덕의 소치’라며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듣는 사람과 유권자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안긴다. 그 뒤 해명을 하는 것이 여의도식 예법이고 매너다. 그러나 이 후보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한 번도 자신의 책임문제를 논하지 않은 것이 불리한 경선 제도 때문인지, 아니면 경직된 자세 때문인지는 방송을 시청한 유권자들이 판단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이 후보의 도덕성에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지만 그의 지지도는 35~40%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정도라면 덮고 갈 수 있지 않느냐’는 흐름도 엿보였다. 대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일종의 거래다.

    인물 검증 자신감 … 새 의혹 터진다면?

    문제는 이 거래가 언제,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더 이상의 의혹이 없다면 이런 거래는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의혹’이 터져나온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경우 국민의 포용력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지난 경선에서 이미 유사한 사례를 경험했다. 바로 이 지점이 임계점이다. 이 임계점을 넘으면 이 후보 주변에 필패론이 등장할 것이다. 정형근 의원은 “앞으로 100명의 김대업이 더 나올 것”이라며 이런 가능성을 경고했다.

    대선은 이제 4개월여 남았다. 한국 정치에서 4개월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어떤 변수가 어떻게 닥칠지 모른다. 국민지지율 60%를 오가지만, 이 후보는 지금 필승 후보가 아니다. 그렇다고 필패 후보도 아니다. 이 후보 앞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있다. 문제는 그가 어떤 자세로 유권자 앞에 서느냐 하는 것이다. ‘경부운하를 재고하라’는 사회 각계의 요구에 직면한 이 후보의 다음 한 수가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