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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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의 ‘정보 제왕’ 속살 들여다보기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7-08-22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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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안의 ‘정보 제왕’ 속살 들여다보기

    <b>휴대전화, 철학과<br> 통화하다</b><br> 고현범 지음/ 책세상<br> 펴냄/ 226쪽/ 5900원

    2004년 한 대학원에서 ‘휴대전화는 책 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주제로 강의한 적이 있다. 그때 이미 휴대전화는 정보 송수신의 제왕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한때 전자책 열풍을 일으켰던 마이크로소프트의 ‘MS리더’를 비롯한 모든 전자책 단말기가 참패하다시피 한 반면, 휴대전화를 통한 ‘책 읽기’는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 대중은 휴대전화로 만화나 소설 등을 읽는다.

    쓰기는 어떤가? 이제 인간은 시간 날 때마다 휴대전화 자판을 엄지손가락으로 열심히 누른다. ‘테크니컬 라이터’들은 여행을 하다 본 광경을 휴대전화로 찍은 뒤 사진에 설명을 붙여 자신의 블로그에 전송한다. 이런 일이 늘어나면서 텍스트 자체의 질이 달라지고 있다.

    어디 읽기와 쓰기뿐이겠는가? 카메라, 뱅크온, 전자사전, 포토 스튜디오, MP3, DMB, SMS, LCD, PMP, PIP, DJing 등 날로 늘어가는 기능과 함께 이제 휴대전화는 생활의 중심이 됐다. 지난해 우리나라 휴대전화 가입자가 4000만명을 넘어섰으니 전체 인구 4800만명 가운데 어린이 등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휴대전화는 모든 행동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것은 매체(미디어), 상점, 판매채널, 만남의 공간 등 인간의 행위를 이끄는 기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금까지 휴대전화는 산업적 성장이나 기술적 발전에 국한돼 논의됐다. ‘매트릭스’라는 영화 한 편을 다룬 철학적 분석서가 쏟아져나온 것을 생각하면 매체철학의 틀을 빌려 휴대전화에 대한 첫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 ‘휴대전화, 철학과 통화하다’는 출간만으로도 의의가 크다 하겠다.

    휴대전화는 인간의 감각을 확장한다. 인간은 상대방과 음성, 문자, 그림으로 소통한다. 글쓰기의 도구가 된 휴대전화는 이미 인간의 사고과정에까지 가담한다. 이런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저자는 20세기의 대표적 장치인 축음기, 영화, 타자기와 비교해 설명한다.



    19세기 말은 사진기술로 상징되는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를 통해 근원적 매체의 분화가 이뤄진 시기다. 이때 “영혼 혹은 정신이 추방되고, 그 자리를 기술매체가 대신”했으며 “고전주의·낭만주의 시대의 영혼이나 정신이 자신의 본모습을 기술매체로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를 특징짓는 결정적인 매체가 바로 축음기, 영화, 타자기다. 이 매체들은 근원적 매체로 자크 라캉이 분석한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를 대표한다. 이들은 새 기술로 말미암아 분화가 진행됐다.

    휴대전화는 이들 모두를 다시 통합한다. 따라서 디지털과 네트워크를 핵심으로 하는 현재 휴대전화는 우리 시대 담론 네트워크의 중심매체이자, 디지털화된 여러 기술매체를 수렴하는 종합매체다. 휴대전화는 ‘탁월한 이동성을 내세워 이런 수렴, 즉 컨버전스’ 경향을 주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MP3폰이 그려내는 소리 풍경은 낯선 공공장소를 친근한 사적 공간으로 구획하려는 심리적 동기와 연관된다. 따라서 MP3폰이 연출하는 공간은 부르주아적 가정이 아니라 혼자 있는 방이다. 그 방에서 나는 공간을 지배하는 군주다. 10대들은 어른들의 잔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MP3폰을 즐겨 찾는다.

    DMB폰은 텔레비전이 놓인 움직이는 안방을 구현한다. DMB는 고유한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는 난점이 있지만 그 매체적 특성으로 인해 5~10분의 짤막한 동영상이 제작될 것이고, 이는 인터넷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같은 새로운 형식의 엔터테인먼트가 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확산되고 있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와 프로그램은 관련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암시한다.

    휴대전화는 인간관계를 무한정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교류를 강화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따라서 “국지적 장소를 지구적인 부단한 흐름과 연결하는 휴대전화는 네트워크 사회를 유지하는 실질적 도구이자 상징적인 아이콘”이다. 휴대전화는 초시간적 시간을 지향하는 시간매체이기도 하다. 시간적 간격을 극소화해서 자본의 순환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에 부합하는 모바일 뱅킹이나 인터넷 뱅킹의 활용을 통해 우리는 초시간적 시간을 추구하는 네트워크의 일원임을 스스로 확인한다.

    휴대전화가 만들어내는 소통은 진리라는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는 대화가 아니라 대화 상대방인 ‘너’가 관심인 소통일 뿐이다. 따라서 종종 노무현 정권의 탄생, 민주화 시위 추동(필리핀), 반세계화 시위 추동(시애틀, 런던) 같은 정치적 행위에 활용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한 UCC(손수제작물)가 올해 대선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휴대전화 같은 신기술이 바람직한 삶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확신에 대한 검토를 요구한다. 휴대전화가 매개하는 지구적 환경과 국지적 경험 사이의 갈등은 이미 문화적 충돌이나 지역 기반의 저항, 세계화 이데올로기에 대항한 전 지구적 연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구체적인 맥락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바로 매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기에 사용자들이 매체의 잠재력을 비판적 맥락에서 사용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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