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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밤 사랑이 배부른 만찬

美, 요리 통해 노숙자 자활 돕는 ‘페어스타트’… 참가자들 이웃돕기 천사로 특별한 경험

  • 시애틀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목요일 밤 사랑이 배부른 만찬

목요일 밤 사랑이 배부른 만찬

시애틀 도심 7번가에 자리한 페어스타트 레스토랑(위)과 6월14일 ‘초청 요리사의 밤’ 주메뉴로 나온 연어구이(사진 아래).

미국 시애틀의 레스토랑 ‘페어스타트(Farestart)’에서는 목요일 저녁마다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이른바 ‘초청 요리사의 밤(Guest Chef Night)’으로, 초청받은 시애틀 내 유명 레스토랑 요리사가 세 가지 코스의 특별메뉴를 선보이는 행사다. 가격은 1인당 24.95달러(약 2만2000원). 고급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즐기는 것치고는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고급요리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페어스타트의 목요일 밤이 특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행사가 진정 특별한 이유는 초청받은 요리사와 손님들을 포함해, 목요일 밤 페어스타트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불우 이웃을 돕는 천사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페어스타트는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노숙자, 알코올중독자, 실직자 등 어려운 이웃에게 요리를 가르쳐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레스토랑은 페어스타트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의 장이자 페어스타트 ‘학생’들의 실습 장소다.

‘초청 요리사의 밤’은 다목적 행사다. 이날 수익금은 전부 페어스타트 요리학교 운영비로 쓰인다(지금까지 14억원을 모았다). 멋진 레스토랑에서 훌륭한 음식을 즐기는 일이 자연스럽게 기부로 연결되는 것이다. 초청 요리사의 진두지휘 아래 음식을 만드는 스태프들은 다름 아닌 페어스타트 학생들. 목요일 밤마다 유명강사를 초청해 실습을 하는 셈이다. 또한 시애틀 지역의 여러 단체가 자원봉사자로 나서 이날 밤 서빙을 도맡는다. 마을잔치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지역 주민들이 한데 모이는 것이다.

역시 목요일이던 6월14일 저녁 페어스타트를 찾았다. 이날만큼은 예약이 필수인데, 늦게 예약하는 바람에 마지막 식사시간인 7시30분에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날의 초청 요리사는 해산물 요리로 유명한 매코믹(McCormick) 레스토랑의 주방장 크리스텔라 코너. 서빙은 ‘샤토 은퇴자모임’이 맡았다.



지역 주민들 모이는 마을잔치

레스토랑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손님도 있었고,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 커플이나 회사원들도 보였다. 부드러운 색감의 나무자재와 검정 톤으로 꾸며진 레스토랑은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레스토랑의 디자인을 맡은 사람은 스타벅스 임원 대런 메디나. 역시 자원봉사로, 자기 시간을 쪼개 작업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의 서빙을 담당한 샤토은퇴자모임 소속의 샘은 “여러분 뒤쪽 테이블에 계신 손님들은 페어스타트 요리학교의 졸업생들”이라고 귀띔해줬다.

페어스타트는 요리사 데이비드 리가 1992년 설립했다. 데이비드 리는 88년부터 시애틀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사업을 했는데, 이들에게 싼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아예 요리를 가르침으로써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리하여 16주 과정의 요리학교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1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페어스타트의 ‘요리 실험’은 과연 성공했을까. 지금까지의 성적표로 보면 매우 성공적이다. 졸업생의 85%가 졸업 3개월 내에 직장을 구하고, 이들 중 84%가 3개월 후에도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코올이나 마약에 찌들어 거리를 배회하던 노숙자들, 출소 후 갈 곳 없던 전과자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목요일 밤 사랑이 배부른 만찬

목요일 저녁마다 레스토랑은 손님들로 꽉 찬다(왼쪽). 페어스타트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기업들.

페어스타트가 가르치는 것은 요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치유하는 상담과 인생을 관리하는 기술에 관한 수업, 그리고 이력서 작성법, 면접 요령 등 홀로서기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정보, 지원을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2003년 페어스타트는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바리스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청소년이 ‘커피의 도시’ 시애틀의 여러 유명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페어스타트 요리학교 졸업생들이 모두 요리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페어스타트 요리학교의 목적은 ‘요리사 만들기’가 아니라 ‘자립에 성공하기’다. 요리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모티프일 따름이다. 2005년 7월 페어스타트 요리학교를 졸업한 세드릭은 현재 기계제조업체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페어스타트 요리학교에서 보낸 시간과 노력을 결코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리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은 빵집이었어요. 첫 직장 덕에 집을 마련할 수 있었고, 기계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장비를 구입할 수 있었죠.”

‘초청 요리사의 밤’은 페어스타트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최고 요리사 가까이에서 일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노숙자 학생들은 유명 요리사와 한 팀이 돼 일하면서 전에는 경험한 적 없는 성취감과 진한 동료애를 갖게 된다. 게다가 목요일 밤 행사를 통해 유명 레스토랑으로부터 취직 제안을 받는 학생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이는 페어스타트와 레스토랑 모두에 득이 되는 일이죠.” 시애틀 그랜드하얏트 호텔의 존 페인 수석 요리사의 말이다. 레스토랑은 늘 부족한 요리사를 구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페어스타트의 이런 사회활동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는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1층의 한쪽 벽면 전체는 이런 지역사회의 ‘하나 됨’을 웅변하고 있다. 목요일 밤 행사에 초청된 요리사들의 사진과 페어스타트에 기부한 개인, 기업, 단체 이름이 새겨진 색색의 접시들이 걸려 있는 것.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시애틀에 기반을 둔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보잉사가 눈에 띄었다.

요리학교 학생들이 직접 요리

이날의 메뉴는 차가운 아보카도 수프와 시애틀의 특산물인 연어구이, 그리고 바나나가 곁들여진 아이스크림 디저트였다. 차례로 서빙되는 음식들은 눈으로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고 맛도 좋았다. 특히 연어구이에 곁들여진 감자는 양념으로 무엇이 쓰였는지 알아내고 싶을 만큼 맛이 뛰어났다.

‘훌륭한 음식, 더 나은 삶(Great Food, Better Lives)’. 페어스타트의 캐치프레이즈는 요리로 자립을 꿈꾸는 노숙자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닌 듯하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된다는 특별한 경험이, 페어스타트 손님들에게도 더 나은 삶을 살도록 기운을 북돋워주기 때문이다. 목요일 밤, 시애틀에 머물 예정이라면 페어스타트를 찾아가보자. 7번가 버지니아 스트리트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이다.



주간동아 2007.07.31 596호 (p68~69)

시애틀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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