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6

2007.07.31

국제선 저가항공에 날개 달아주면 안 되겠니

유럽에선 20% 시장점유 치열한 경쟁 국내 저가항공산업 육성 ‘발등의 불’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7-07-25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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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선 저가항공에 날개 달아주면 안 되겠니
    “런던에서 바르셀로나까지 단돈 10유로!”

    유럽의 대표적 저가항공사 ‘라이언에어(Ryanair)’가 7월17일부터 사흘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특별 할인판매한 런던~바르셀로나 항공권의 가격은 우리 돈으로 고작 1만3000원.

    11월부터 여행이 가능한 항공권을 4개월 일찍 예매하는 조건으로 이처럼 파격가의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서울~도쿄(1153km)와 비슷한 거리인 런던~바르셀로나(1146km)를 서울~대전 간 고속철도 요금보다 싸게 다녀올 수 있는 셈이다. 국제선 저가항공 경험이 전혀 없는 우리로선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유럽 저가항공사들의 일반판매 항공권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다. 인터넷을 통해 8월4일 출발해 일주일 머물다 돌아오는 왕복항공권을 기준으로 항공요금을 비교해봤다(유류할증료, 세금 불포함).

    대한항공의 서울~홍콩(2100km) 왕복 항공요금은 65만~90만원. 반면 라이언에어로 스톡홀름~로마(1984km)를 왕복할 경우에는 1800크로나(약 25만원)면 충분하다. 2~3배의 가격차다. 서울~도쿄도 비슷하다. 대한항공은 이 구간의 왕복요금을 49만~64만원대로 책정했지만, 런던~바르셀로나 이지젯(Easyjet)은 84파운드(약 15만5000원)면 오갈 수 있다. 가격차는 3~4배. 마지막으로 서울~상하이(872km) 노선의 경우 아시아나항공이 38만~62만원, 비슷한 거리인 파리~글래스고(900km) 간 라이언에어의 항공요금은 50유로(약 6만4000원)에 불과하다. 가격차가 무려 5~10배다.



    런던~바르셀로나 항공요금이 1만3000원

    이처럼 유럽과 한국 사이에 ‘항공 차별’이 생기는 이유는 유럽에는 50여 개에 이르는 저가항공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반면, 한국은 아직 저가항공사에 관한 한 ‘무풍지대’이기 때문이다. 유럽 및 미주는 저가항공사의 점유율이 20%일 정도로 저가항공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아일랜드의 라이언에어는 지난해 국제선 여객수송 실적 1위로 올라섰다. 2006년 라이언에어의 국제선 이용객이 약 4000만명으로 루프트한자 독일항공(3800만), 에어프랑스(3000만), 영국항공(2900만)을 제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저가항공을 표방하는 제주항공, 한성항공이 운항되고 있지만 제주 부산 양양 등 국내선에 그치는 실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언제까지나 국제선 저가항공 시장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2010년 경부고속철도가 완전 개통되면 국내선 항공 수요가 철도 쪽으로 대거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국내선 항공산업의 조정이 불가피하다. 또한 확대일로에 있는 오픈스카이(항공자유화)의 흐름에 의해 3~4년 안에 한국 일본 중국의 항공자유화가 구축되면 시장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국제선 저가항공산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는 국내 기업이 여럿 있다. 최근 대한항공은 자회사나 계열사를 통해 저가항공에 진출하겠다고 밝혔으며, 인천시도 올해 안에 법인을 설립하고 3~4년 내에 중국 일본 등에 정기선을 취항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제주 김해 양양에 취항하는 제주항공도 장기적으로는 국제선에 진출할 계획이다. 최근 들어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항공사는 한성항공. 청주공항에 기반을 둔 한성항공은 11월 일본 규슈 취항을 목표로, 올해 말까지 보유 항공기를 현재 4대에서 10대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저렴한 요금을 앞세운 해외 항공사들의 국내 취항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은 ‘밖으로부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국산’ 저가항공사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중국남방항공은 저가항공을 본격적으로 표방하진 않지만, 10만원대 상하이 왕복 항공권을 내놓고 있다. 4월부터 청주공항과 홍콩을 왕복하고 있는 홍콩에어라인도 기존 항공요금의 60~70% 가격으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건설교통부 항공안전본부장을 지내고 현재 서울대 기계항공학부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함대영 씨(‘저가항공사의 성공스토리’의 저자)는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저가항공사로 꼽히는 에어아시아(Air Asia)의 한국 진출이 거론되고 있는 시점”이라면서 “국내 저가항공사의 육성을 더는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제선 저가항공에 날개 달아주면 안 되겠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의 저비용 터미널(LCT)에서 내리고 있는 에어아시아 승객들(왼쪽).<br> 탑승교가 없는 LCT에서는 승객이 직접 걸어서 공항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나라 저가항공 전용 공항으로 거론되는 청주국제공항 청사 전경.

    저렴한 요금 해외항공사 국내 취항 급증

    기존 대형항공사(FSC·Full Service Carrier)에 비해 저가항공사(LCC·Low Cost Carrier)가 저렴한 항공권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인력 최소화 △온라인 및 전화 판매 △기내식 등 서비스 감축 △저렴한 소규모 공항 이용 등으로 비용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저가항공에 도전장을 내미는 국내 기업들도 이러한 공식을 따른다는 입장. 한성항공 이성주 부사장은 “비행기 1대당 인력이 150명인 대한항공에 비해 한성항공은 50명에 불과하다”며비용절감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저가항공산업이 육성되려면 항공사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공항시설 등 제반 조건이 충족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인프라는 저가항공산업 육성에 미비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불리한 여건은 수도권 인근에 인천공항을 보조할 제2의 공항이 없다는 점이다. 유럽의 저가항공사들은 보통 저렴한 소규모 공항을 이용해 비용을 절감한다. 영국 런던의 경우 장거리 항공편이 주로 취항하는 히드로(Heathrow) 공항이 중심 구실을 한다면, 런던 인근의 게트윅(Gatwick), 루튼(Luton), 스탠스테드(Stansted) 공항이 중·단거리 노선을 전담하며 저가항공사들의 거점 공항 구실을 한다. 특히 스탠스테드 공항은 취항 항공편의 90% 이상이 저가항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공항으로 건립된 청주공항이 유력한 저가항공 거점 공항으로 거론되지만, 서울 강남에서 140km나 떨어져 있고 주말 교통체증이 심각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김포공항. 인천공항이 문을 연 이후 텅 빈 국제선 노선을 저가항공으로 복원하자는 것이다.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의 민간 개방도 거론된다. 서울과 분당 사이에 자리한 서울공항의 입지조건이라면 서울 강남 및 경기 동남부 지역 인구를 유인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연구원 김연명 항공교통연구실장은 “인천공항도 저가항공사를 많이 유치해야 허브공항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처럼 유럽이나 미주에서 온 승객들이 인천공항에서 저가항공으로 갈아탄 뒤 중국 일본 등으로 가게 한다면 현재 12%에 불과한 인천공항의 환승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해외 공항들의 저비용 터미널(LCT·Low Cost Terminal) 건립이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의 메이저 공항들 중 저가항공을 적극 유치하는 곳으로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들 수 있다. 2006년 봄 두 나라는 저가항공사 유치를 위해 앞다퉈 LCT의 문을 열었다. LCT란 출발·도착 층이 구분돼 있지 않고, 탑승교도 없어 승객이 직접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 탑승해야 한다. 이처럼 시설 수준이 낮은 대신, 저가항공사는 공항비용을 줄일 수 있고 승객은 저렴한 요금이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최근 세계관광기구(WTO)는 올해 1~4월 전 세계 관광객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 증가(1500만명)한 2억5200만명을 기록했다고 밝히며, 그 이유로 가처분소득의 증가와 함께 저가항공의 꾸준한 발전을 꼽았다. 영국공항공단(BAA)도 “1977년 영국민 700만명이 해외여행을 했는데, 2006년에는 3800만명을 기록해 30년 만에 5배 이상 증가했다”면서 이를 저가항공의 성장 덕으로 돌린다.

    저가항공사 국제선 취항 아직 검토 중

    저가항공이 가져다준 변화는 단순히 관광산업의 증대뿐만은 아니다. 폴란드 도시 슈체친의 한 치과의사는 말한다. “영국 환자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지난주에 1명, 지지난 주에 2명 왔죠. 물론 라이언에어를 타고 온 사람들이에요. 무척 고마운 일이죠!” 이는 영국 ‘더 타임스’ 톰 체사이어 기자의 저서 ‘얼마나 싸게 갈 수 있지? : 1페니로 떠나는 유럽여행’에 나오는 일화다. 폴란드의 치과 치료비가 영국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에 많은 영국인들이 저가항공을 타고 슈체친으로 날아가 관광을 즐기고 덤으로 치과 치료까지 받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가항공은 개별 상품의 가격인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철도가 산업혁명을 가져왔듯, 국가간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저가항공이 가져올 파장은 심대할 것이다. 이런 세계적 변화를 한국만이 모른 척할 것인가. 건설교통부는 “국제선 취항은 무엇보다 안전성이 담보돼야 한다”며 “신생 항공사의 국제선 취항 적정 시기와 조건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한성항공 이성주 부사장

    “서울~도쿄 편도 5만원 충분히 가능”


    국제선 저가항공에 날개 달아주면 안 되겠니

    청주공항 내 한성항공 본사에서 만난 이성주 부사장.

    - 청주공항을 기반으로 한 국제선 저가항공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청주공항이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는가.


    “서울 강남에서 청주공항까지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성수기 때는 항공기 출발 2~3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는 인천공항과 달리, 청주공항에서는 30분이면 국제선 탑승까지 충분하다. 따라서 시간 면에서는 오히려 인천공항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 국제선 요금을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절반으로 내리겠다는 전략의 배경은?

    “항공요금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항공기 1대당 인력이 일본항공 190명, 대한항공 150명, 라이언에어와 이지젯이 40명이다. 한성항공은 50명이다.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또한 불필요한 비용을 없애기 위해 여행사 대행판매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과 전화로 직접 판매한다. 인천~후쿠오카 구간은 김포~제주와 거리가 비슷함에도 현재 항공료가 두 배가량 비싸다. 이는 국제선 항공요금에 거품이 끼여 있다는 방증이다. 한성항공은 그 거품을 뺄 것이다.”

    - 절반 가격이라면 서울~도쿄가 20만~30만원이 된다. 5만원 안팎의 항공권을 내놓는 라이언에어나 이지젯 등에 비하면 비싼 것 아닌가.

    “유럽 저가항공사들의 ‘얼리 버드(Early Bird)’ 제도를 도입한다면 서울~도쿄 편도 5만원이 가능하다. 단, 몇 개월 전에 구입해야 하고 환불이 안 되는 조건이 붙는다. 지금도 한성항공은 종종 특가상품으로 1만9900원짜리 제주행 티켓을 내놓고 있다.”

    - 항공산업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고객들이 과연 신생항공사의 안전을 확신할까.

    “건설교통부 항공안전본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국내 항공사에서 모두 27건의 안전 장애가 있었다. 그중 한성항공에 해당하는 항공안전 장애는 0건이다. 비행기 1대를 가지고 청주~제주를 매일 오가면서도 장애가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는 4대의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정비 인력은 7~8대 수준으로 갖추고 있다. 안전에 자신한다.”

    - 올 11월부터 국제선 취항을 계획하고 있지만 건교부는 신생 항공사의 국제선 취항 허가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법적 검토를 끝냈고, 필요하다면 행정소송까지 불사할 생각이다. 건교부가 신생 항공사의 안전 문제를 거론하면서 오히려 저가항공의 안전에 대한 불안을 야기하는인상이다. 우리나라보다 항공 안전 수준이 훨씬 떨어지는 캄보디아 항공사들도 현재 국내 취항하고 있다. 그들보다 항공기술 수준이 높은 우리는 왜 안 된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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