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9

2007.06.12

예술가 씨, 농담도 잘하셔!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7-06-07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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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용산의 가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진시우의 전시는 제목부터 재미있다.

    ‘미확인 순수예술 오브제’. 영어 제목 ‘Unidentified Fine art Object’의 첫 글자를 따면 U.F.O.다. 진시우는 가벼운 말장난이 섞인 농담으로 시작한다. 작품들은 다양하다. 사진, 일상적 오브제, 비디오 영상, 드로잉 등 장르 불문이며 소재 또한 천차만별이다.

    일단 이번에 그가 호명한 것들을 나열해보자. 백남준 박이소 김홍석 같은 현대 한국의 예술가, 중국(집)에서 온 각종 그릇 세트로 만들어진 오브제 사진(정말 U.F.O.처럼 생겼다), 셀프 라디오, 여러 공구 이미지, 바느질 매듭으로 그려진 단단하게 결속된 네 개의 손, 잠자리(정찰병) 드로잉, 지구본(지도) 오브제, 알 수 없는 어떤 지역에 불시착한 것 같은 물체(U.F.O.라고 하기엔 부실해 보이는 텐트 모양)와 드로잉, 청테이프를 붙여 만든 가면 사진, 작가 자신의 모습 드로잉 등이다.

    ‘컨셉트’란 제목의 드로잉 작품은 작가 자신을 암시한다. 그는 팬티만 입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그 얼굴은 가면이다. 여기에서 가면은 예술가의 컨셉트이자 현대예술 자체의 초상일 것이다. 그런데 컨셉트는 부끄럽고 예리하다. 동시에 위트가 있어서 어떤 상황을 희극적으로 만든다.

    예술가 씨, 농담도 잘하셔!

    <b>1</b>_ ‘Untitled’(From China) 컬러 인화, <b>2</b>_ ‘A Knot’천에 바느질, <b>3</b>_ ‘Concept’ 종이에 연필, <b>4</b>_ ‘Inter-View’ 나무, 버블랩, 한국 들잔디씨

    일종의 말장난·사물 뒤집어보기 등 위트 넘치는 작품세계



    진시우가 사용하는 어법은 그 자체가 현대미술의 한 양상이다. 일종의 말장난, 사물 뒤집어보기, 문장 재배열하기, 개인적이고 사소한(말 못할) 어떤 순간이나 감정 또는 트라우마까지도 살짝 건드리기, 한땀 한땀 바느질로 아우트라인 만들기, 얇은 핀으로 캔버스를 뚫어 선 형성하기, 그러면서 자신의 상황과 맥락을 스스로 참조하기 등 그의 어법은 예민하고 섬세하지만 가볍게 살짝 건드림으로써 피식 웃음을 유발한다.

    진시우의 작품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만 통하는 유머와 같다. 그 상황이란 예컨대 한국의 젊은 남자로서, 한 가정의 ‘아들’로서, 한국 미술의 젊은 작가로서 처한 현실이다. ‘미확인 순수예술 오브제’라는 것은 그 상황에 대한 작가의 수줍은 농담에서 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농담을 ‘비천하거나 일상적인 것을 예술을 통해 승화시키기’라 부를 수 있다. 현대의 승화는 아마도, 삶이라는 정체를 예민하게 관찰하도록 관객에게 요청하면서 구체적 상황을 희극적으로 무대화하는 것이 아닐까.

    U.F.O.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도달할 수 없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에 내재한 구체적인 어떤 것이다. 6월7일까지, 가갤러리. 02-792-8736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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