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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男의 새 취미 “블로그는 즐거워”

젊은 층 비해 다양하고 깊이 있는 콘텐츠 사업 실패담 등 진솔한 삶의 이야기 가득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중년男의 새 취미 “블로그는 즐거워”

중년男의 새 취미 “블로그는 즐거워”

영국산 접이식 자전거에 빠져 동호회 활동을 하다 인기 블로거가 된 임대일 씨와 그의 블로그(왼쪽).

‘나이·외모 무관, 재산 유무 상관없음, 성별·학벌·인종 차별 없음, 장애 구별 안 함.’

블로그 세상의 주민을 뽑는다면 자격요건 항목에 이런 것이 오르지 않을까.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금세 친해지고, 낯선 사람에게 호기심을 보이면서 말걸기를 시도해도 구박받지 않는 세상이 바로 블로그다. 블로거들은 트랙백을 통해 그물망처럼 촘촘한 인연을 맺고 그들만의 광장에서 즐겁게 소통한다.

GM대우 디자이너 임대일(45) 씨는 네이버(http://blog.naver.com/pacelim)에서 ‘엄마재(쟤)봐’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블로거다. 원래 사진 찍기가 취미였지만, 디자인이 독특하고 세련된 스트라이다(영국산 접이식 자전거)에 반해 동호회에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하루에도 수 차례씩 블로그를 드나들며 안부 게시판을 통해 동호회원들과 소식을 나누는 그는 “직장생활 20년이 지나니까 생활이 단조롭고 매일 마주치는 사람만 보게 돼 답답했다. 하지만 블로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나이를 초월해 친구가 될 수 있다”면서 “소설가, 엔지니어, 학생, 주부 등 직업과 취미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화제가 풍부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기러기 아빠인 임씨는 블로그 운영과 운동으로 자기관리를 하며 활기찬 일상을 즐긴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가족에게 보상받지 못하는 중년남성 특유의 외로움’이 있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온·오프라인에서 만나 ‘수다 떨기’로 위안을 삼는다.

인터넷 주사용층은 20대 이하 젊은 사람들이지만 40, 50대 누리꾼(네티즌)이 늘면서 중년남성 블로거도 해마다 늘고 있다. 조인스는 전체 블로그 중 남녀를 통틀어 40, 5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65.7%에 이른다. 이 가운데 남성 블로거는 70~80%. 파란 블로그에서 중년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2~15%다.



중년으로 갈수록 여성보다 남성 블로거 수가 훨씬 많다. 중년남성 블로거는 블로그 문패에 ‘벽화를 그리는 중년 남자’ ‘산과 헬스를 즐기는 보통의 중년 남자’처럼 당당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온라인에서 뿜어내는 활력은 구닥다리 아저씨가 아닌 피 끓는 청춘이다.

야후코리아 PR팀 박선희 대리에 따르면, 중년남성 블로거는 연륜과 노하우가 쌓인 만큼 아는 것도 많아 젊은 층에 비해 블로그 내 폴더 수가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박 대리는 “블로그를 개설해놓고 방치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중년남성들은 굉장히 열성적”이라면서 “야후 중년남성 블로거 2명 중 1명은 열혈 중년으로 자부심이 강한 편”이라고 분석했다.

10, 20대 일부가 무차별한 ‘펌질’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반면, 중년남성 블로거 중에는 ‘펌질꾼’이 많지 않다. 자신이 직접 만든 자료로 블로그를 꾸미기 위해 포토샵을 배우고 카메라 사용법을 익히는 데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중년남성 블로거들은 정성 들여 블로그를 꾸미면서 낯선 세계에 도전하는 설렘과 즐거움을 얻는다.

1년6개월 된 블로거 신희상(49) 씨의 블로그(http://kr.blog.yahoo.com/shinanda)는 국내는 물론 미국 캐나다 에콰도르 등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관심사는 음악, 창작, 평론, 교육 분야. 블로그를 개설하게 된 데는 뼈아픈 사연이 있다. 사업을 하다 친구에게 빌려준 돈이 잘못돼 신용불량자가 된 신씨는 한동안 방황하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위안을 얻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 평소 써둔 글이 많던 그는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한곳에 모아 정리했다.

중년男의 새 취미 “블로그는 즐거워”

누리꾼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중년남성 블로그들.

조인스 블로그 중 중년 비율 65.7%

신씨는 “예전엔 정보검색 정도만 할 수 있었는데 블로그를 하면서 컴퓨터 실력이 많이 늘었다. 덕분에 포토샵도 배울 수 있었다. 또 외국 사람들이 찾아와 감사 쪽지를 남기는 등 전혀 상상도 못하던 일이 벌어졌다”며 흐뭇해했다. 블로그를 꾸미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동안 마음의 여유가 생긴 그는 요즘 사업 구상에 한창이다.

인생의 절반 고개를 넘긴 중년남성 블로거들은 그 나이가 갖는 역할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조인스 M커뮤니티팀 김진 씨는 “부모로서의 자기 모습, 사회에서의 역할, 노부모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도리 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글들에서 많이 엿볼 수 있다”고 귀띔한다. 얼마 전 한 출판사가 신간 서적에 대한 추천의 글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응모자들을 분석한 결과 중년 누리꾼이 추천한 20여 권의 신간 가운데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책은 ‘나이듦의 즐거움’이다.

50대 초반인 ‘청산’(닉네임)은 조인스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블로거다. 3년간 조회 건수가 166만 건을 훌쩍 넘은 그의 블로그(http://blog.joins.com/js3491) 대문에는 뭉게구름 가득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묵묵히 세월을 견뎌낸 노송의 사진이 올라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소나무는 귀밑머리 희끗한 중년남자를 닮았다. 블로그는 정치에서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와 해외를 조망한 시사 정보, 건강 정보 등 광범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만화방. 주로 신문 연재만화들을 모아뒀는데, 훈훈한 가족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삶에 대한 단상을 올린 글도 눈에 띈다.

포털사이트의 블로그 담당자들에 따르면 중년남성은 취미나 직업과 관련한 자신의 전문분야보다 일상사나 삶의 연륜에서 우러나는 깨달음을 블로그에 풀어놓는 경우가 많다. 젊은 블로거들의 경우 자동차, 인라인 스케이트, 바이크 등에 관심이 많고 마니아 기질이 두드러지는 반면, 중년남성 블로거들은 등산과 낚시를 적당히 즐기는 여유가 있다고. 중년 블로거들은 ‘(I)~’로 시작되는, 개인 신변잡기에 관심이 많다는 특징도 갖는다.

콘텐츠를 생산, 판매하는 나비콘텐츠플래닝 이영근(48) 대표는 3년 경력의 블로거로 블로그(http://blog.naver.com/ichek007)를 2개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와 관련한 것 외에도 개성 강한 블로그를 따로 만든 것이다. 그의 말이다.

“신변잡기를 올리는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데, 나를 돌아보고 스스로 정돈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다. 또 책과 소설을 쓰는 게 꿈이라 블로그를 습작노트 삼아 열심히 글도 올린다. 블로그를 하는 이유의 절반은 내 글을 누군가가 읽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국내외 맛집과 숨겨진 여행지에 대한 글을 많이 올려놨는데, ‘좋은 정보를 받아간다’는 쪽지가 남겨져 있을 때면 흐뭇하다. 그런데 열심히 써서 올린 글에 댓글이 하나도 없을 땐 맥이 빠진다.”

김효창(44) 씨의 블로그(http://blog.joins. com/0312k)는 콘텐츠가 아기자기하면서 다채롭다. 추운 겨울날 퇴근길에서 우연히 만난 행상 할머니에 대한 단상을 풀어놓은 수필도 읽기에 그만이고, ‘나이 들어 해보자’에 올려놓은 글들에서는 필요한 지혜를 빌릴 수도 있다. 북한 우표, 담배 포장지, 군사무기 역사 콘텐츠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자료들이 올라 있다. ‘살림살이 지혜’와 ‘내사랑 마노(누)라’에서는 성실하고 행복한 가장의 모습이 그려진다.

중년男의 새 취미 “블로그는 즐거워”

여행이 취미인 인기 중년남성 블로거 이영근 씨(왼쪽).

문화 지식에 밝은 중년남성 블로거 많아

중년남성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누리꾼들에게 많은 배려를 하고 신경을 쓴다. 이웃 블로거와의 커뮤니티도 중요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공통의 관심사가 있거나 마음이 통할 경우에는 친목 모임도 갖는다. 그러나 이는 가까운 이웃과의 소모임으로 한정된다. 젊은 블로거들과 달리 인터넷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하려는 욕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편 방문자의 연령에 관계없이 인기를 끄는 중년남성 블로그들은 트렌드에 밝고 콘텐츠가 다양하며 새로운 자료가 발빠르게 업데이트된다. 새로운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많을수록 블로거들의 눈길을 끌게 마련이다.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블로그는 방문자들이 알아서 자신의 블로그에 ‘즐겨찾기’로 올려놓기도 한다. 야후코리아 박선희 대리는 “요즘은 문화 분야에 밝고 세련된 중년남성 블로거가 많다”고 말한다.

인터넷에서의 지적재산권과 저작권이 민감한 문제로 부상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즐기려는 중년남성 블로거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희상 씨는 “관심 분야가 음악, 미술, 사진인데 마음에 드는 자료를 구해도 함부로 블로그에 올릴 수 없다. 다른 데서 마음대로 퍼오기도 어렵다. 나는 물론이고, 누가 잘못 퍼갔다가 그 사람까지 피해를 볼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 가요는 피하고 클래식 음악이나 고전 명화, 오래된 팝송을 주로 올린다”며 아쉬워했다.

‘맨날 떠나고 싶은’이라는 블로그를 가진 이영근 대표는 여행이 취미이고, 사업상 국내외 출장도 잦다. 바쁠 때는 블로그가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글만 쓰면 편한데 이미지도 함께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사람들이 내 블로그를 방문한다고 생각하니 볼거리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사진을 계속 찍어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바쁠 때 4시간씩 블로그를 붙잡고 있다 보면 지금 뭐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도 중년인 그에게 블로그는 ‘사생활과 일상을 정돈하기에 좋은 도구’다

젊은 층과 동시대 첨단문화를 함께 누리고 소통하면서 자신의 삶을 향기롭게 가꾸는 열혈 중년남성 블로거들이 펼치는 블로그 세상은 각양각색의 취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날로그 세대가 아니다.



주간동아 585호 (p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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