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4

2007.05.08

연금으로 연명하는 주민들 요절복통 백수 탈출 작전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7-05-02 1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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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으로 연명하는 주민들 요절복통 백수 탈출 작전
    세계 유명 관광지를 가보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이들이 유럽에서 온 은발의 노인 관광객들이다. 이들은 은퇴 전 평균소득의 절반 이상을 국민연금, 기업연금 등 각종 연금으로 받아 외국관광을 하며 노후를 보내는 이들이다. 풍족하고 우아한 ‘은퇴 후 생활’을 누리는 것이다.

    물론 최근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연금 지출이 늘어나면서 유럽 각국의 연금제도가 어려워지고는 있지만, 노인이 되면 초라한 신세가 되는 한국의 경우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늙기 때문에 노인이 됐을 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은 결국 모든 국민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것과 같다. 그래서 국민연금제도의 도입과 정착은 미래를 위해 중요한 투자다. 최근 국민연금법을 놓고 국회에서 논란이 일었던 것은 급속한 고령화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가 ‘최소한의 복지’를 갖추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진통을 보여준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는 ‘복지’ 하면 어떤 사회를 떠올릴까. 이건 복지에 대한 상상의 크기를 보여주는데,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는 캐나다 영화 한 편이 있다. ‘대단한 유혹’이라는 작품인데, 기발한 발상으로 끊임없이 폭소를 자아내는 코미디물로 약 120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캐나다의 외딴섬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직업을 잃은 지 오래다. 오랜 실업자 생활에 진저리가 난 주민들은 마을에 공장을 유치하려 한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떳떳한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공장을 지으려면 마을에 반드시 의사가 한 사람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의사를 붙잡아라’.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의사를 마을에 살게 하려고 갖은 ‘유혹’을 벌인다 해서 제목이 ‘대단한 유혹’이다.

    이 얘기가 노인복지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마을 사람들이 아무런 직업도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데는 2주에 한 번 나오는 실업연금이 있었다. 주민들은 월말이면 하나뿐인 우체국 앞에 길게 줄을 서는데, 누군가 이런 불평을 한다.



    “우리는 8년 동안 매달 실업연금이나 바라며 줄을 서왔어. 하지만 실업연금으로는 2주밖에 견딜 수 없어. 그 돈으로 한 달간 버티는 것은 지옥이야.”

    그러나 이 말은 우리에게는 불평은커녕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따지고 보면 ‘대단한 유혹’의 섬 주민들이 직업을 잃게 된 건 그들 잘못이 아니다. 이들은 환경의 변화로 어업이 쇠퇴한 데 따른 피해자들이다. 이들을 지원하고 보살피는 건 국가의 의무다. 하지만 주민들은 국가의 도움을 마냥 즐겁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자구책을 찾는 자정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복지국가의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복지’ 하면 나쁜 짓을 저지르다 들키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을 짓게 하니, 이걸 도덕적이라고 해야 하나.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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