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2

2007.04.24

英 총리 찜한 브라운 장관 “웬 날벼락”

출신지인 스코틀랜드 총선 결과 따라 정치생명 타격 우려

  •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입력2007-04-18 17:5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5월3일로 다가온 스코틀랜드 총선을 앞두고 영국 정치권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운동이 분수령을 맞을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선거는 올 여름 블레어 총리 퇴임 이후 영국 총리 자리를 승계할 것이 확실시되는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하는 뇌관이 될지 모른다.

    민족주의 성향의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은 이미 총선에서 승리하면 3년 안에 분리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현재의 여론 판세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는 스코틀랜드 국민당에 기운 형국이다.

    英 총리 찜한 브라운 장관 “웬 날벼락”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왼쪽)과 스코틀랜드 국기를 들고 있는 스코틀랜드 소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운동 본격화 가능성 커

    최근 ‘더 타임스’가 보도한 선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월 선거에서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48석을 얻어 42석의 집권 노동당을 제치고 제1당에 오를 것으로 예측됐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벌써부터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분리독립 운동에 가장 먼저 불을 붙인 알렉스 샐먼드 당수는 집권 후 100일 계획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주민들 대부분이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략 스코틀랜드 주민 4명 중 1명이 분리독립에 찬성할 뿐이다. 독립론이 대세를 장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중년층으로 갈수록 독립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명배우 숀 코너리 같은 ‘올드보이’들은 “조국이 독립하기만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돌아오겠다”며 바람을 잡고 있다. 그는 지금 중미의 바하마 제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의 생각은 다르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일자리 걱정이 앞을 가로막는다. 스코틀랜드 주민만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7%가 ‘독립 이후 경제가 오히려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30%에 그쳤다.

    게다가 스코틀랜드 주민 중 250만명이 잉글랜드에서 태어났거나 잉글랜드에 친척을 두고 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한 지 올해로 300년. 두 지역 사이에 다시 국경을 그을 경우 불어닥칠 역풍 또한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이러한 여론 동향을 고려해보면 이번 총선의 열쇠는 분리독립 주장에는 찬성하지 않으면서도 스코틀랜드 국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이들 표심은 대부분 ‘노동당 이탈표’인 것으로 풀이된다. 상원의원 임명을 둘러싼 부패 스캔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과정에서 심화된 친미일변도 외교정책 등이 블레어 정부의 인기를 끌어내린 요인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에 자치의회를 구성한 웨일스와 비교해도 스코틀랜드는 실업률, 경제성장률 등에서 처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인기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노동당 내에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론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 동분서주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지역 출신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다. 브라운 장관이 스코틀랜드 문제에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우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브라운 장관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브라운 장관은 1999년 블레어 정부가 내세웠던 지방분권화 정책의 일환으로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자치의회를 구성할 때 핵심 역할을 맡았다. 당시 노동당 내 스코틀랜드 출신 젊은 의원들은 ‘스코틀랜드 문제는 스코틀랜드인 손으로’라는 모토를 내세워 광범위한 자치권 보장 입법을 주도했다. 이들이 만들어낸 청사진에 따라 스코틀랜드 의회는 보건, 교통, 주택정책 등에서 자치입법권을 갖게 됐다.

    그러나 채 10년도 되지 않아 상황은 정반대가 돼버렸다. 노동당의 인기는 급락했고, 블레어 정부의 2인자인 브라운 장관은 자치가 아니라 아예 독립을 요구하는 스코틀랜드 국민당 돌풍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블레어 총리 후임으로 10년 넘게 기다려왔는데…

    이대로 간다면 스코틀랜드 총선 사상 처음으로 노동당이 제1당을 내주게 될 판이다. 문제는 제1당을 내주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다수당이 바뀌는 순간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주도하는 스코틀랜드 의회와 영국 의회가 사사건건 대립할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올 여름 최초의 스코틀랜드 출신 총리를 꿈꾸는 브라운 장관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노동당의 차기 주자를 놓고 물밑 경쟁을 벌여오던 고든 브라운은 토니 블레어와의 정치적 담판을 통해 총리직을 양보하는 대신 차차기를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0년 넘게 기다린 끝에 블레어의 중도사퇴 선언 덕에 가까스로 다우닝가 총리 관저 입성을 앞두고 있는 그다. 영국 언론들이 자신의 정치적 고향으로부터 배신당한 브라운 장관의 처지를 빗대 ‘잔인한 역설’이라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총선에서 약진하고 있음에도 분리독립 운동이 실제로 성공할 가능성은 아직까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키워온 정치적 고향으로부터 ‘뭐 주고 뺨 맞은’ 브라운 장관이 입게 될 상처는 그의 정치적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