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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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 시아버지가 쓰는 ‘사랑의 가계부’

이용하 옹, 며느리 월급통장 관리하며 20년 가까이 입출내역 기록

  • 곽희자 자유기고가 fwheej@hanmail.net

    입력2007-04-18 1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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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세 시아버지가 쓰는 ‘사랑의 가계부’

    이용하 옹(왼쪽)과 며느리 김정선 교장.

    요즘은 부부 사이에도 네 돈 내 돈 따지며 각자 통장관리를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서울신가초등학교 김정선(58) 교장은 20년 가까이 시아버지인 이용하(92) 옹에게 월급통장을 맡기고 있다. 김 교장이 시아버지에게 통장을 맡기기 시작한 것은 월급봉투로 나오던 급여가 통장에 입금되면서부터.

    “은행 업무를 봐야 하는데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아버님께 부탁을 했어요. ‘돈을 찾아 어디에 얼마 송금해주세요’ 하고 부탁하면 제 날짜에 정확히 송금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믿고 부탁했다가 얼마 후 아예 통장을 맡겼어요.”

    김 교장은 이옹에게 돈을 맡기며 마음대로 쓰시라고 했다. 며느리가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월급통장을 맡기자 이옹은 돈 사용처를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생각해 가계부를 썼다. 가계부는 똑같은 내용으로 두 장을 썼다. 한 장은 집안 보관용으로, 한 장은 며느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며느리는 이를 크게 눈여겨보지 않는다. 시아버지가 허튼 데 돈을 쓰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돈 마음대로 쓰라 해도 허튼 데 쓸 수 있나”



    현재까지 쓰고 있는 가계부는 1993년부터 기록돼 있었다. 누렇게 바랜 16절지에는 반으로 줄이 그어져 날짜별로 사용품목과 액수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가계부에는 찬거리 구입에서부터 아이들 준비물비, 전기세·수도세, 친척들 경조비까지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가계부 중간중간 ‘형주 -3000원, 전기세 -2만5100원’ 식으로 숫자 앞에 ‘-(마이너스)’ 표시가 돼 있었다. 이것은 미처 은행에서 찾아온 돈이 없을 때 이옹 자신의 돈을 쓰고 표시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이런 돈은 월말에 며느리 통장에서 모두 돌려받는단다.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한 것이다.

    이를테면 친척집 축의금은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니 며느리 통장에서 지출하고, 이옹의 친구와 관련된 축의금은 자신의 통장에서 지출하는 식이다. 이렇게 공과 사를 분명히 하고 돈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으니 김 교장이 통장을 맡기고도 불안하지 않다. 그러나 가끔은 통장 맡긴 것이 부담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가까운 친구가 돈이 급히 필요하다고 해서 현금카드로 인출해 부쳤는데 아버님께서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을 보시고 “어미야! 통장에서 돈이 많이 빠져나갔구나” 하시더라고요. 특별히 다른 말씀은 하시지 않았는데도 괜히 내 돈 쓰면서 눈치를 봐야 하나 부담스러웠어요”

    그런 일이 있고 며칠 뒤 이옹은 친목회에 다녀오던 중 밤길에 두 번이나 넘어져 앞니가 부러졌다. 그 충격으로 몸져누워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같은 말을 되풀이해 김 교장은 시아버지에게 통장을 맡기는 것이 불안했다. 그래서 “아버님, 아무래도 은행 가시는 일이 힘드실 것 같아요. 이제 통장은 제가 관리할게요”라고 했다. 그러자 이옹은 정색을 하고 펄쩍 뛰며 “아니다! 무슨 말이냐, 내가 할 수 있다” 하시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식사를 하시더니 며칠 후 활기를 찾으셨다.

    김 교장은 직접 은행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뱅킹이나 텔레뱅킹으로 은행 일을 쉽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통장관리며 가계부 쓰는 일이 시아버지 생활에 활력을 주는 일 중 하나여서 지금도 맡기고 있다.

    인터뷰 중 이옹은 며느리 자랑을 늘어놓았다. “요즘 사람들 시집오면 딴 주머니 차는데 우리 며느리는 통장째 다 내놓지, 돈 잘 벌지, 자기주장 안 펴고 뭐든 하자는 대로 하지. 우리 며느리 정말 착해. 효부야, 효부!” 이옹은 이런 며느리를 몇 년 전 문중에 추천해 효부상을 받게 했다. 안방 벽에는 김 교장이 교감 때 받은 임명장부터 문중에서 받은 효부상, 손자들 사진까지 액자가 즐비하게 걸려 있다.

    시아버지의 자랑에 김 교장은 자신이 교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시부모님의 보살핌 덕분이었다며 오히려 어른들 노고에 감사를 표시했다. 인천교육대학을 나와 교직에 들어선 김 교장이 결혼 후에도 대학과 대학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가사 부담을 덜어주었고 두 아이도 잘 건사해주었다. 김 교장은 이 같은 시부모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교장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92세 시아버지가 쓰는 ‘사랑의 가계부’

    16절지에 깨알같이 쓴 이용하 옹의 가계부(원 안).<br> 서울신가초등학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교정을 걷고 있는 김정선 교장.

    아침에 며느리 깨워주고 세차까지 도맡아

    2005년, 김 교장은 교직에 몸담은 지 35년 만에 교장으로 승진해 신가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이때 이옹을 자신의 자리에 앉히고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10년 전 뇌졸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 그 기쁨을 함께할 수 없었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이옹은 틀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김 교장의 남편은 아내가 자기보다 시아버지와 더 잘 맞는다며 한 번도 시아버지 말에 “아니요”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김 교장은 7남매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시아버지와 32년을 동고동락하고 있다. 한때는 11명 대가족이 함께 살아 쌀 한 가마로 한 달 먹기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아래층엔 이옹이, 2층엔 김 교장 내외가 적적하리만큼 고요하게 산다.

    80세까지 용돈을 스스로 벌어서 썼던 이옹은 유난히 금실이 좋았던 아내와 이별을 하고도 부지런한 탓에 외로울 틈이 없었다. 지금도 새벽 4시30분이면 일어나 30분 정도 맨손체조를 한 뒤 10분 거리에 있는 올림픽공원에 나가 한 시간씩 산책을 한다. 집에 돌아와 6시면 인터폰으로 며느리를 깨워 출근 준비를 하게 하고 7시가 되면 식사하러 내려오라고 또다시 인터폰을 누른다.

    그리고 출근하는 며느리 차가 더러우면 안 된다며 손수 차를 닦아놓는다. “힘드신데 며느리 차까지 닦아주시냐?”고 묻자 “힘들 게 뭐 있어, 며느리는 시간 없고 나는 시간이 있으니까 닦는 거지” 하며 환하게 웃었다.

    20년 가까이 써온 이옹의 가계부는 식구들이 점차 빠져나가면서 지출도 단출해졌다. 빛바랜 가계부에선 생활의 변천과정과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오늘도 이옹의 가계부에선 김 교장에 대한 시아버지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미 떡 3000원, 바나나 2000원, 요구르트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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