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7

2007.03.20

한국인은 왜 명품에 사족 못 쓰나

  •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입력2007-03-14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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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왜 명품에 사족 못 쓰나
    사치가 삶의 질과 무관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고, 인간의 고귀함이 ‘명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모두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콩나물 값은 100원이라도 깎으면서 100만원짜리 고급 핸드백은 거침없이 구매한다. 이러한 역설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비싸게 팔아야 잘 팔린다’는 말이 있다. 잘 안 팔리는 제품을 값을 엄청나게 올려 시장에 내놨더니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14만원짜리 구찌 지우개, 100만원대 유모차, 40만원짜리 슬리퍼 등 서민들은 생각하기조차 힘든 놀라운 가격의 제품들이 잘 팔리고 있다. 왜 그럴까? 대한민국 사람들은 사치품을 왜 그리도 좋아하는 것일까?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가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사치의 나라 대한민국을 분석한 보고서 ‘럭셔리 코리아’를 통해서….

    김 교수는 사치 소비자의 심리 분석은 물론, 사치품의 가격구조 형성 과정, 사치 소비의 유형, 사치품 마케팅 등 사치품과 관련한 모든 것을 망라했다. 특히 명품 소비성향이 강한 12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한 뒤 그 내용을 토대로 분석함으로써 이 책의 논리와 주장에 신뢰감을 더했다.

    김 교수가 꼽은 사치품의 주소비층은 ‘신흥 부자’와 ‘가짜 부자’다. 자수성가형의 전통 부자들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사치품 소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사치품 소비를 조장하는 네 가지 감정적 요인으로 김 교수는 과시, 질시, 환상, 동조를 들었다. 과시형은 소비행위를 통해 자신의 부나 지위를 과시하려는 동기가 내재돼 있다. 질시형은 많이 가진 자들을 모방하려는 사람들로,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공존한다. 환상형은 사치품을 소유함으로써 지금보다 더 근사한 모습으로의 변신을 꿈꾸는 사람들이며, 마지막 동조형은 이른바 유행족으로 소비행위에서도 남에게 뒤처지거나 따돌림당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이 가운데 과시형은 주로 신흥 부자들로, 소비를 추구할 만한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다. 김 교수는 연예인, 벤처사업가, 전통 부자의 2세 등을 과시형으로 꼽았는데, 이들의 사치품 소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어찌 보면 이들의 사치품 구매는 소비시장의 윤활유 구실을 한다. 문제는 질시형, 환상형, 동조형의 이른바 가짜 부자들이다. 능력도 벅차면서 사치품 구매를 일삼는 이들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를 닮았다. 심지어 명품을 사기 위해 유흥업소에 나가거나 명품을 훔치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있다. 사치품 소비의 심각한 부작용이 아닐 수 없다.



    허영심에 들뜬 일부 소비자도 문제지만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김 교수는 사치품 소비를 조장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기업들의 사치품 마케팅, 그리고 사치품 마케팅에 주로 이용되는 대중매체를 꼽았다. 이 밖에 신용카드도 사치품 소비의 주범으로 몰렸다. 신용카드를 통한 ‘선소비 후지불’의 소비 패러다임은 일단 생성된 현재의 욕망을 즉각적으로 충족시킨다. 그러나 이는 실제 구매력과 관계없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심각한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오죽하면 일단 질러보자는 ‘지름신’까지 생겨났을까.

    지난해 가짜 명품시계 ‘빈센트 엔 코’ 사건이 화제였다. 사치품에 목매는 대한민국 소비자의 그릇된 소비행태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제2, 제3의 ‘빈센트 엔 코’ 사건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사치품에 환장(?)하는 ‘된장녀’와 ‘된장남’들이 줄어들지 않는 한….

    김난도 지음/ 미래의창 펴냄/ 264쪽/ 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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