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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300’

유럽과 이란, 2500년 전 대결

  • 이명재 자유기고가

유럽과 이란, 2500년 전 대결

유럽과 이란, 2500년 전 대결
세계화 시대에도 ‘섬’처럼 고립된 나라가 몇 개 있다. 이란도 분명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이란이 요즘 외부에 알려지는 것은 두 가지 방식을 통해서다. 첫 번째는 영화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비롯해 깜짝 등장한 이란 영화는 세계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며 이란 사회의 속살을 드러냈다.

또 하나는 이른바 ‘불량국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다.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유난히 엄격한 신정체제, 투철한 반(反)서구적 노선, 여기에 핵개발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이란은 서구세계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실 역사적 뿌리가 있다. 바로 유럽과 옛 이란 간의 구원(舊怨)이다. 이란은 과거 강대한 페르시아 제국이었으며, 당시 유럽에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있었다. 유라시아의 이 두 강자는 서로 충돌했다. ‘페르시아 전쟁’이라고 불리는 양 진영의 대결은 서구 고대사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패권을 다투는 양웅의 대결이 아닌 강대한 페르시아 군대가 단단하지만 작은 그리스 국가들을 거듭 침공한 것이었다.

개봉을 앞둔 ‘300’이라는 영화는 바로 이 페르시아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BC 480년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싸운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이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선전 문구에는 페르시아군이 100만명이라고 돼 있지만, 이건 당시 인구를 생각해도 과장 같다. 16만명이었다는 역사 기록이 있는데, 아마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6만명이라고 해도 그 대군에 300명이 맞섰다면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당연히 전투는 패배로 끝나지만 그 패배는 전쟁의 향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단 페르시아군의 진군을 지연시켰고, 스파르타군의 이 영웅담이 그리스군의 결사항전 의지를 고무시켰다. 결국 그리스군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퇴한다.



페르시아 전쟁이 양 진영 간 대결 1라운드였다면 150년 뒤에 그 복수극이 펼쳐진다. 주인공은 알렉산더 대왕, 상대는 다리우스 3세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대군을 무찌르고 페르시아 제국까지 무너뜨리는데, 당시 유럽인들이 이 복수극을 통해 느꼈을 통쾌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3년 전 올리버 스톤의 영화 ‘알렉산더’에서 두 사람은 대조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겁쟁이인 페르시아의 제왕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대패를 당하고 가족까지 내팽개친 채 도망쳤다가 부하에게 죽음을 당한다. 반면 알렉산더는 그를 존중해 장사를 후히 치러주는 영웅다운 관대함을 보여준다.

페르시아는 서구세계에 일종의 원형질적인 적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최근 서구의 이란에 대한 ‘불량국가’ 지목이나 공세는 과거 역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300’의 소재가 된 테르모필레 전투가 영화적 소재로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란을 둘러싼 최근 상황을 생각하는 관객들에겐 순수하게 영화 자체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을 혹시 2500년 전의 그것과 대비해보지는 않을까. 단 ‘300대 16만’이라는 그 공방의 우열은 뒤바뀐 채로.

‘300’



주간동아 2007.03.20 577호 (p69~69)

이명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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