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7

2007.03.20

연예계 접수 완료… 다음 목표는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사들, 언론과 제휴 맺고 DMB 사업 등에 눈 돌려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7-03-14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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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계 접수 완료… 다음 목표는 미디어?
    “연예기획사의 권력화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쓰는 데 부담을 느낀다. 그들과 한번 척을 지면 좋은 소스(기삿거리)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몇몇 거대 기획사는 언론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어, 기자들이 기획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연예기획사(엔터테인먼트업체)의 권력화를 묻는 질문에 15년 넘게 연예 기사를 써온 한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과거 배우나 개그맨이 소속된 방송국이 파워를 가졌지만, 이젠 유명 연예인을 대거 거느린 대형 연예기획사가 ‘갑’의 위치에 섰다는 것. 그는 “대형 연예자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방송과 언론의 독립성을 위협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한다.

    종합 엔터테인먼트사의 권력화 논쟁이 가시화된 것은 3월2일 팬텀 엔터테인먼트그룹(이하 팬텀)이 자회사인 도너츠미디어(팝콘필름)를 통해 개그맨 신동엽이 이끄는 DY엔터테인먼트(이하 DY)를 인수하면서다. 지상파 3사 예능프로그램의 메인 MC를 휩쓸고 있는 DY와 스타군단으로 불리는 팬텀의 합병은 방송가에서 절대강자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스타들 거느리고 프로그램 제작에 큰 영향력

    DY는 유재석 김용만 이혁재 노홍철 송은이 강수정 등 잘나가는 MC들이 소속된 예능 MC 전문 기획사. SBS ‘헤이헤이헤이 2’ ‘TV종합병원’, M.net ‘톡킹 18금’ 등의 프로그램을 외주제작하면서 DY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강호동 김제동 윤종신 박경림 지상렬 신정환 등이 포진한 팬텀은 MBC ‘황금어장’,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을 외주제작하고 있다. 또한 김상경 신하균 김지영 남성진 등의 배우와 아이비, mc몽, 양파 등 유명 가수로 이뤄진 80여 명의 스타군단을 이끌며 음반·드라마·영화 제작은 물론 유통까지 담당하고 있다.

    DY와 합병한 팬텀은 방송 예능프로그램 외주제작 부문에서 시장점유율이 무려 90%에 이르는 ‘괴물’로 성장했다. 팬텀 소속 연예인들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지상파 3사 프로그램만 봐도 그 파워를 알 수 있다. MBC ‘무한도전’ ‘섹션TV 연예통신’ ‘일요일 일요일 밤에’ ‘황금어장’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말 달리자’, KBS ‘경제 비타민’ ‘상상플러스’ ‘스타 골든벨’ ‘스펀지’ ‘해피투게더 프렌즈’ ‘연예가중계’ ‘해피선데이’, SBS ‘진실게임’ ‘신동엽의 있다! 없다?’ ‘놀라운 대회 스타킹’ ‘결정! 맛대맛’ ‘동물농장’ ‘음악공간’ ‘헤이헤이헤이 2’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을 팬텀 소속 연예인이 독과점한 상태다.

    연예계 접수 완료… 다음 목표는 미디어?

    DY엔터테인먼트가 외주제작하는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이 프로그램 출연진인 유재석과 노홍철이 DY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3월6일에는 MBC 간판 김성주 아나운서를 이사로 영입하면서 팬텀은 “인기 방송인을 싹쓸이해간다”는 원성을 듣기도 했다. 김성주 강수정 유정현 등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을 대거 보유한 팬텀은 그 영향력을 시사 교양 스포츠 분야까지 확대할 전망이다.

    시청률 보증수표인 일부 인기스타에 의존하는 방송국의 프로그램 제작 방식은 연예기획사의 권력화를 불러왔다. 방송사 PD들은 회당 출연료가 800만~900만원에 이르는 유재석과 신동엽을 두고 서로 ‘모시기 전쟁’을 벌인다. “최고인 만큼 역시 몸값을 한다”는 게 이들에 대한 PD들의 평가다. 이렇듯 스타 유치 경쟁이 심화되고 스타의 몸값이 치솟으면서 제작비도 덩달아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거대 공룡’으로 거듭난 팬텀은 코스닥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3월5일 폭락장세를 보였음에도 팬텀이 DY를 인수했다는 소식에 팬텀의 주가가 가격제한폭까지 오른 것.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들의 거침없는 영역 확대에 방송가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SBS 정순영 예능부국장은 “인기 스타들을 모두 데려가는 연예기획사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도 출연자의 이미지와 취향을 고려해 작품 방향을 협상하는 게 흔한 일이라는 것. 그는 “신인들을 등장시키면 시청자들이 다른 채널로 돌려 결국 ‘스타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다른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MBC 예능국의 한 PD는 “현재 프로그램의 제작과 편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정도”라면서 “권력화됐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이들은 제작진과 호흡 맞추는 데 최선을 다하는 최고의 프로”라고 평가했다.

    일부 기획사와 언론사가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연예 저널리즘의 독립성을 위협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팬텀은 지난해 12월 일간스포츠와 함께 무선인터넷 및 DMB 채널 사업을 전개할 신규법인 ‘중앙 모바일브로드캐스팅(JMB)’을 설립했고, 1월에는 일간스포츠에 20억원을 투자했다. 또한 중앙일보는 팬텀 지분의 1%를 갖고 있다.

    국내 최대 매니지먼트사 싸이더스HQ의 지주회사인 IHQ는 YTN미디어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IHQ의 1대 주주인 SK텔레콤이 주축이 돼 2005년 연예 뉴스 및 코미디 전문 케이블TV인 YTN미디어를 인수한 것.

    이렇듯 바뀌는 취재 환경이 기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기자들이 알게 모르게 지분 보유자의 입김에 영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일간스포츠의 한 기자는 “동료들끼리 ‘앞으론 팬텀에 대해 안 좋은 얘긴 못 쓰겠다’고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지금껏 취재에서 특혜를 누리거나 보도에 제한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저널리즘 독립 위협” 우려 소리도

    한 중견 연예 기자는 “대기업의 전폭적인 투자를 받은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뉴미디어 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며 앞으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T는 지난해 IPTV(인터넷TV) 사업에 필요한 콘텐츠 확보를 위해 배우 최지우 신현준 오윤아의 소속사이며 드라마 ‘주몽’ ‘황진이’의 제작사인 올리브나인을 인수했다. 팬텀, IHQ, 올리브나인 등 거대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들은 방송사, 신문사, 케이블TV는 물론 뉴미디어까지 장악하는 태풍의 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현대원 교수는 연예기획사의 권력화 논쟁에 대해 “프로그램의 메인 콘텐츠인 유명 연예인을 많이 확보한 엔터테인먼트사가 힘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 원리에 따라 인기 연예인들이 자신의 경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줄 대형 기획사로 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현 교수는 “연예기획사의 권력화로 생기는 부작용을 막으려면 방송사와 기획사의 은밀한 출연계약 문화부터 양성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로 발굴된 인재를 두려워하는 방송사의 보신적인 제작관행이 스타 의존 현상의 발단이 됐다. 또한 방송사와 대형 연예기획사의 ‘비밀스런 커넥션’을 통해 연기자의 출연이 결정되는 음성적인 관행이 지금까지 존재해왔다. 연예인이 소속된 기획사가 힘이 있든 없든, 이들이 방송사와 평등한 구조로 프로페셔널한 계약을 맺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의 횡포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인터뷰/팬텀 엔터테인먼트그룹 조수봉 대표

    “독점적 지위 불가능…좋은 프로그램 제작·수출이 꿈”


    연예계 접수 완료… 다음 목표는 미디어?
    지난해 11월 취임한 팬텀 엔터테인먼트그룹 조수봉(46·사진) 대표는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을 진두지휘하며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인 조 대표는 대한항공을 거쳐 한국신용정보에서 19년간 기업체 신용평가 업무를 해온 전문경영인이다. 조 대표가 취임할 때만 해도 자회사가 4개에 불과했던 팬텀은 현재 매니지먼트, 드라마·영화·예능 프로그램 제작, 음반사업, 수출사업 등을 담당하는 11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연예기획사 권력화 논쟁의 중심에 선 팬텀의 조수봉 대표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 팬텀이 최근 DY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고 김성주 아나운서까지 이사로 영입하면서 ‘연예인들을 싹쓸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사의 가장 큰 자원은 바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연예인들이다. 우리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최근 인기 예능프로그램 작가들도 영입했다. 내실 있는 수익모델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모든 예능프로그램의 출연진을 독점하겠다는 의도는 없다. 팬텀은 올해 연기자, 가수, MC 공채 1기를 선발하는 등 좋은 신인을 발굴하는 데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가수 아이비, 배우 한효주 등도 팬텀에서 오랜 트레이닝을 거쳐 탄생한 스타다.”

    -최근 연예기획사의 권력화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연예기획사는 연예계에서 결코 독점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 다만 팬텀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며 예능프로그램의 한류를 주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가수·배우·MC 등 모든 분야의 연예인이 소속돼 있고, 제작 및 유통시스템까지 완벽하게 갖춘 엔터테인먼트사는 한국에서 팬텀이 유일하다. 팬텀이 보유한 좋은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 꿈이다.”

    -지난 1월 일간스포츠에 20억원을 투자했다.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인가.

    “팬텀이 언론의 편집권에 영향을 준 적은 결코 없다. 언론도 정도(正道)를 걸을 뿐이다. 일간스포츠와는 콘텐츠 생산이란 관심 분야가 일치했기에 전략적으로 공조했던 것이다.”

    -앞으로 계획은?

    “11개 자회사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단순히 돈을 버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산업의 첨병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데 앞장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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