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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현대인의 성공키워드 ‘전략적 아부’

21세기형 아부 실천 내겐 성공 발판이었네

전략적 아부도 능력이자 자산 … 아부 달인의 성공, 대인관계 다시 보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21세기형 아부 실천 내겐 성공 발판이었네

21세기형 아부 실천 내겐 성공 발판이었네
2005년 3월3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통상부 업무보고.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이 대통령의 면전에서 입에 발린 말을 했다.

“외교부의 역량이 미치지 못할 때 대통령께서 명쾌한 지침을 주심으로써 앞길을 일깨워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사석에서도 하기 어려운 찬사였다. 노 대통령도 반 장관의 언사가 민망한 듯 수줍게 웃었다.

찬사 덕분이었을까? 노 대통령은 이날 외교부를 ‘대(大)외교부’라고 칭하면서 외교부가 현안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의중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나라 안팎에 적(敵)이 거의 없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전략적 찬사’의 달인이다. 상대의 세로토닌(칭찬을 듣거나 인정을 받았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 샘을 자극하는 재주가 몸에 뱄다.



그럼에도 그를 아첨꾼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처세의 달인이라 비꼬는 사람도 없다. 아첨꾼이 그랬다면 비판받을 행동도 그가 하면 배려요 매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위아래로 한결같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적을 만들지 않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우리도 반 총장처럼 알게 모르게 아첨하며 산다. “인간은 원래부터 아첨하는 동물”(영국의 문예비평가 윌리엄 히즐릿)인 듯하다. 그럼에도 아첨꾼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분명 조롱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동물은 지도자에게 알랑거리다 보스가 늙어 힘이 빠지면 무리에서 쫓아내기도 하고 잡아먹기도 한다. 일은 게을리하면서 질 떨어지는 아부만 하는 저급한 아첨꾼이 바로 그렇다. 그러나 전략적 찬사가는 누구에게나 한결같다. 정성스러움으로 선배를 대하고, 온화함으로 후배를 다독거린 반 총장과 같이….

반 총장의 그것처럼 눈살 찌푸려지지 않는 지극한 배려, 즉 전략적 찬사는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요, ‘마주한 사람의 세로토닌 분비량을 늘려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무공해 웰빙 푸드’다.

그렇다고 해서 전략적 찬사가가 맑고 투명하기만 한 성인군자는 아니다. 전략적 찬사 또한 유리한 처지에 놓이기 위해 타인을 치켜세우는 일종의 조작이자, 미래의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상대에게 행하는 의도적인 거래이기 때문이다.

달인들에게서 발견되는 전략적 아부의 시작은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반 총장은 장관 시절 국회에서 연배가 낮은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할 때도 ‘의원님께서 하문하신’과 같은 극존대의 표현을 썼다. 차관 시절에도 그는 장관 승용차의 뒷문을 열어줬다고 한다.

“너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뜻의 ‘인사’(무릎을 꿇고 하는 절은 인사의 극단적 형태다)는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대표적 행동이다. 침팬지 집단의 보스는 하위계급의 침팬지가 제대로 인사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코지를 한다.

21세기형 아부 실천 내겐 성공 발판이었네

‘전략적 찬사’의 모범을 보이는 김희정 의원, 박수홍 라엘웨딩 대표, 이계안 의원, 이용훈 대법원장(왼쪽부터).

개그맨 박수홍(37) 씨는 ‘바른 인사는 100점짜리 찬사’라고 여긴다. 그는 지난해 ‘라엘웨딩’이라는 결혼 컬설팅 회사를 차리고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무모하게 일을 벌인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도와주는 이들이 많아’ 사업은 순항하고 있다고 한다.

“개그맨으로서의 순발력은 깔끔한 이미지에 비해 조금 떨어지지만,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을 만큼 예의가 바르다”는 한 PD의 말대로 그의 인사성은 유명하다. 그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인사로 시작해 인사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씨가 거친 연예계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는 데 인사는 적지 않은 구실을 했다. 방송에서 드러나는 이미지처럼 그는 언제나 예의 바르고 상냥하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먼저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라고 예의를 갖춰 인사한다.

전략적 찬사의 달인들은 예의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반 총장처럼 꼼꼼하게 윗사람을 배려한다. 당(黨)의 ‘어른’들한테 “사람이 참 바르다”는 얘기를 듣곤 하는 김희정 의원(한나라당)이 그런 경우다. 최근 아시아소사이어티 펠로로 선정되기도 한 김 의원과 관련된 일화 한 토막.

지난해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예상치 못한 생일선물을 원내 부대표단에게서 받고 입이 활짝 벌어졌다. 김 원내대표에게 깜짝 선물을 주자고 제안한 이가 바로 김 의원. 원내대표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당시 당직자들은 “71년생인 김 의원이 허투루 국회의원이 된 게 아니다”라며 웃었다.

상대방에게 예의 갖추는 게 첫 번째 조건

옥스퍼드 사전엔 아부(flattery)의 뜻이 10개나 적혀 있다. 이 사전은 아부에 대한 정의 중 열 번째 항목에서 ‘실수를 그럴듯하게 얼버무리고 완화해주는 것’ ‘아랫사람에게 대범하고 관대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옥스퍼드 사전의 설명처럼 달인들은 ‘아래로도’ 아부한다. 2001년 4월 외교부 차관직에서 물러났을 때 추규호 당시 아태국장이 눈물을 흘렸을 만큼 반 총장은 아랫사람에게도 신망이 두텁다.

김 의원의 한 보좌진은 부산으로 휴가를 떠난 뒤 숙소에 도착해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숙소 테이블에 김 의원이 보낸 과일바구니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OO호텔에 묵는다고 얘기했을 뿐인데….’ 과일바구니를 받은 가족들은 “참 좋은 분”이라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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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철 SK(주) 사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박지성 선수(왼쪽부터).

반 총장은 아랫사람이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면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 도와줬으며, 후배들이 잘못한 일이 있을 때도 스스로 깨닫게끔 부드럽게 질책했다고 한다. 외교부에 적이 없고 따르는 후배가 많았던 덕분에 그는 유엔 사무총장직에 도전할 수 있었다.

원숭이가 동료의 털을 골라주는 것은 ‘내가 가려운 곳을 긁어줄 테니, 너도 가려운 곳을 긁어달라’는 뜻이다. 미국식 아부의 대가로 꼽히는 데일 카네기는 사람도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잘하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회사를 나간 임원 가운데 지금도 명절 때마다 인사 가는 선배가 있다. 그 많은 직원들의 생일을 일일이 챙길 만큼 아랫사람한테 잘해줬던 분인데, 회사를 나간 뒤 거꾸로 후배들의 이런저런 도움을 받아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계시다. 그분을 보면 부하 직원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삼성의 한 임원)

달콤한 말이나 행동으로 부하 직원의 비위를 맞추는 게 거슬리는 성격이라면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아랫사람의 세로토닌 분비를 자극할 수 있다.

아부의 달인으로 꼽히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누군가 질문을 하면 손으로 마이크를 감싼 뒤 질문자를 향해 몸을 기울이면서 그윽한 눈길로 경청하는 태도를 보인다. 사법부의 수장인 이용훈 대법원장도 ‘듣는 데 귀신’이다. 그는 귀를 바짝 세워 후배들의 발언을 경청한다. 새까만 후배가 면전에서 쓴소리를 해도 표정 변화 없이 얘기를 듣는다.

신헌철 SK㈜ 사장은 “내가 도와줄 게 뭐 없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는 일에선 불도저를 연상케 하는 투철한 기업가이지만 한 번이라도 그를 만나본 사람은 ‘영원한 신헌철 맨’이 된다고 할 만큼 정감 넘치는 CEO이기도 하다.

“먼저 남을 배려하고 겸손을 통해 자만심과 적을 만들지 말라.”(신헌철 사장)

유능한 관리자는 아랫사람 의견 경청

신 사장은 ‘남(선배, 후배, 지인) 도와줄 시간을 내느라’ 남들보다 부지런하다. 신 사장의 이타주의처럼 타인의 혈액에 세로토닌을 흘러넘치게 만드는 것, 즉 타인을 배려함으로써 상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지상 최대의 스펙터클 아부’가 아닐까?

21세기형 아부 실천 내겐 성공 발판이었네

교활한 유인원의 혈통을 이어받은 인간은 면전에서 하는 아부는 잘 신뢰하지 않는다.

자부심을 콕 찍어 긁어주는 상대방의 칭찬은 달콤하다. “아부(칭찬)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부란 자신의 비위를 다른 사람이 맞춰야 할 정도로 자기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미국 시인 랠프 에머슨)

상사에 대한 찬사는 ‘전략적 아부꾼’이 손에 쥔 전가의 보도다. 에머슨의 말처럼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칭찬에 대한 욕구는 남녀노소, 직급의 고하를 막론하지 않는다. “칭찬은 우리의 허영심을 향해 날아와 꽂히는 열 추적 미사일과 같다.”(시사주간지 ‘타임’의 전 편집장 리처드 스텐젤)

여기서 잠시, 스텐젤이 권하는 ‘칭찬의 황금률’을 들여다보자.

1. 팩트(fact·사실)로 아부하라.

중앙일간지 Y 기자가 2년 전 미국행 비행기에서 겪은 일이다. Y 기자는 비행기 안에서 황우석 전 서울대 석좌교수를 만났다. Y 기자는 초면이었음에도 황 교수에게 알은척을 하면서 “OO일보의 아무개인데요”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황 전 교수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Y 기자님, 오랜만입니다. 인물이 전보다 더 훤해지셨네요.”

Y 기자는 황 전 교수의 이런 사탕발림을 듣고 오히려 불쾌했다고 한다.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아부는 역효과가 날 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부아를 뒤틀리게 한다. 상사가 만든 형편없는 보고서를 놓고 근거 없이 칭찬하는 건 모리배(謀利輩)의 행동이다.

(모두에 언급한 노 대통령에 대한 반 총장의 찬사도 팩트에 근거한 것으로, 독도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의 갈등을 우려한 외교부가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노 대통령이 여론과 언론의 지지를 받는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2.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그를 치켜세우라.

교활한 영장류의 혈통을 이어받아 진화해온 인간은 면전에서 알랑거리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삼자를 통해 ‘누가 당신이 쓴 보고서가 대단하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으면 하늘 위를 걷는 듯 우쭐해지게 마련이다.

3. 누구나 아는 사실은 칭찬하지 말라.

골프는 비즈니스의 연장이다. 사업가들은 라운딩하면서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애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연구한’ 골프장 아부법 중 하나.

“얼굴이 예쁜 파트너에게는 얼굴이 예쁘다는 칭찬보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같은 아부를 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옷차림, 점수, 스윙, 골프클럽 등을 분석해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칭찬을 해야 한다.”

4. 칭찬할 땐 미흡한 부분도 함께 언급하라.

아부의 달인들은 상사의 의견에 동조하는 척하면서도 잘못된 부분을 고치게끔 기술적으로 설득한다. 대기업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J 부장은 영업본부의 지점장 시절, 고집 세기로 악명 높은 C 본부장과의 갈등을 ‘A-1 권법’으로 풀어냈다.

C 본부장은 영업본부로 자리를 옮겨온 뒤 현장 실정에 맞지 않는 전략을 강요했다. 이에 J 부장은 어이가 없었음에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본부장님 말씀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현장 여건상 이러한 점을 보충하면 더 좋겠습니다.”

고집 센 상사가 A를 요구하면 B를 주장하며 반발할 게 아니라, A-1을 제시해 충돌을 피하면서 자기 뜻을 관철하는 게 상사에게 ‘찍히지’ 않으면서도 업무 성과를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J 부장은 후배들에게 충고한다.

5. 상사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사소한 부탁을 하라.

사람은 호의를 베풀거나 부탁을 들어주면 우쭐해지게 마련이다(이때도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6. 아랫사람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말라. 부하를 칭찬할 때는 공개적으로 하라.

허점만 보이는 아랫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부분을 애써 찾아야 한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 외부의 인맥관리보다 더 중요하다. 내가 잘 봐준 사람들의 인맥은 자연스레 내 것이 된다. 그릇된 행동에 대해선 간결하고 명확하게 지적하면서 장점을 발휘하도록 아랫사람을 지원해야 한다.

아랫사람 칭찬의 달인으로 꼽히는 이 가운데 프로야구 한화의 김인식 감독이 있다. 그는 소문난 덕장(德將)이다. 외국인 선수들도 그의 리더십에 혀를 내두른다. 김응룡 삼성 사장이 개발시대 CEO를 대변한다면, 그는 무한경쟁으로 피폐해진 포스트모던 사회를 보듬는 지도자다.

미팅이나 언론 통해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김인식 감독

김 감독은 면전에서 칭찬하는 일이 없다. 한화 선수 가운데 개인적으로 칭찬을 받았다는 선수가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해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류현진 선수도 “야구선수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질책만 받았다고 한다.

김 감독은 대신 선수단 미팅이나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선수들을 칭찬한다. 그는 어중간한 수준의 선수, 즉 칭찬의 맛을 모르고 살았던 선수를 ‘모두가 듣게’ 칭찬해 사기를 북돋는다. 그는 아랫사람을 향한 ‘아부의 기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전략적 아부의 달인들은 위아래로의 칭찬뿐 아니라 ‘팔로어십(followership)’도 뛰어나다. 팔로어십은 리더십에 대응되는 개념, 즉 리더의 비위를 맞추면서 ‘잘 따르는’ 능력을 말한다. 팔로어(follower)는 예스맨 혹은 아첨꾼이 아니다. 상사의 참모이자 야전사령관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의 박지성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팔로어십의 전형을 보여준다. 박 선수는 감독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플레이어다. 그는 팀 동료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홀로 돋보이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팀을 위해 헌신할 뿐이다.

“박지성은 감독에게 절대로 알랑거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감독이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다. 감독에 대한 로열티(충성심)가 박지성만큼 강한 선수는 없다. 비유컨대 박지성은 나무에 기어오르라는 감독의 지시가 ‘옳다고 여겨지면’ 물불 안 가리고 나무를 탈 사람이다.”(축구전문기자 노주환)

내로라하는 아부 기술자들은 ‘좋든 싫든’ 박지성만큼이나 자신의 상사(혹은 조직)에 대한 로열티가 강하다. 지구의 대표격인 유엔을 이끄는 반 총장도 전략적 아부의 달인답게 팔로어십의 대가다. 외교부 관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반 총장의 일화 한 토막.

2002년 10월 이한동 당시 국무총리의 러시아 방문 때의 일이다. 이 전 총리의 수행원으로 비행기에 오른 반 총장은 다른 수행원들이 잠잘 때 홀로 자료를 읽고 있었다. 이 전 총리가 자신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총리의 질문에 답할 자료를 정리한 것. 반 총장이 눈을 붙인 건 아랫사람을 시켜 이 전 총리가 잠든 걸 확인한 뒤다.

“근무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회사일과 관련해 상사가 물어볼 만한 숙제를 스스로 내 풀곤 했죠. 상사가 필요로 할 것 같은 자료를 지시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놓았고요.”

40대 후반에 현대자동차 사장, 현대카드 회장을 지낸 이계안 의원(무소속)도 시간을 쪼개 쓰면서 상사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려고 노심초사한 팔로어십의 달인이다. 그는 직장 초년병 시절 오전 6시15분에 회사에 출근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당시엔 흔하지 않던 신문 스크랩을 한 것.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신문기사, 텔렉스, 팩스 등을 정리해 매일 아침 상사가 출근하자마자 제출했죠.”

지원부서나 협력업체에 아부는 ‘기본 중 기본’

전략적 아부의 대가들은 입에 발린 말(혹은 행동)을 해도 크게 도움 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에게도 아첨한다. 핵심 업무와 동떨어진 지원부서나 ‘을(乙)’의 위치에 있는 협력업체 등에 대한 아부는 달인들에게 기본이다.

“내가 아는 한 뛰어난 비즈니스맨은 허드렛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복사센터와의 밀접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야식으로 피자 여섯 판을 주문하면 그중 두 판을 복사센터로 보냈다. 왜 그랬을까? 데드라인에 쫓겨 그 비즈니스맨이 똥오줌 못 가릴 때 복사센터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세계적 투자기업인 루프킨 · 젠리트에서 일한 미국의 컨설턴트 피터 두룹)

요컨대 전략적 아부의 달인은 세상을 ‘둥글게’ 사는 사람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처리도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것. 이들은 상사나 동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어지간하면 하지 않는다. 둥글게 살아가려면 부지런해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가 경멸해온 아부는 대인관계의 기술로 진화했으며, “21세기형 아부는 사회적 능력이자 자본이다.”(동아일보 ‘횡설수설’에서 홍권희 논설위원) 누가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서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아부꾼을 경멸하겠는가!

그러나 둥글면서도 부지런한, 탁월한 아부꾼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끝으로 외교부 관료들에게 회자되는 조어(造語) 두 토막. 반반(潘半), 즉 반 총장의 반만 따라해도 성공한다는 뜻이다. 반반(反潘), 그를 흉내내다가는 이것저것 챙기느라 고생해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



주간동아 576호 (p10~14)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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