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5

2007.03.06

섬세함과 진지함 부족한 한미 FTA

  • 김기홍 부산대 교수·경제학

    입력2007-03-05 13: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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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세함과 진지함 부족한 한미 FTA
    “한미 양측은 협상의 적기 타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상호 확인했다.”(A)

    “이제까지 협상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협상이었다.”(B)

    2월 워싱턴에서 진행된 제7차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마친 뒤 두 나라 협상대표가 한 말이다. 짐작한 대로 A는 한국 측 대표, B는 미국 측 대표다.

    무엇을 느끼는가? 미국보다는 한국이 협상의 진전을 위해 뭔가 양보하는 듯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지 않은가. 기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말에는 자신의 본색(本色)이 드러나는 법.

    한미 FTA는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늦어도 2~3개월 안에 한미 FTA가 타결되더라도 조금도 놀랄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06년 상반기 전국을 달궜던 한미 FTA 논쟁이 왜 그 기세가 꺾였는가? 왜 한미 FTA 하면 모두들 식상한 표정으로 ‘또 그 이야기야’라고 말하는가?



    거듭 강조하지만 한미 FTA 자체는 ‘악마와의 키스’(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아니다. 타결될 한미 FTA의 내용에 따라, 그 내용에 대한 우리의 대응에 따라 역겨운 키스가 될 수도, 광활한 고속도로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이 될지는 한미 FTA에 대한 우리 협상전략의 섬세함, 협상타결에 대한 대응전략의 진지함에 달려 있다.

    과연 우리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가.

    먼저 섬세함. 한미 FTA 대외비 문서유출을 둘러싼 최근의 국회 소동은 우리에게 섬세한 협상전략이 없음을 보여준다. 왜 우리는 ‘고의적인’ 대외비 문서유출을 기획하는 마인드가 없는가? 일부러 정보를 흘려 미국의 반응을 떠보는 전략은 왜 기획하지 못하나? 그렇지 않다면 구두로 우리 입장을 보고해야 마땅하다. 한미 FTA는 국회의 비준을 거쳐야 종결되지만 이해단체의 반대 등으로 그 앞길은 험난하다.

    하지만 미국이 신속무역협상권한(TPA)의 시한을 들어 우리를 압박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국회 비준을 협상력 제고를 위해 사용할 수는 없는가? 우리 국회의원과 협상팀에는 그런 것을 기획할 수 있는, 그런 마인드를 가진 전략가가 없는가. 또 한미 FTA의 구체적 타결 내용은 정치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에 대비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북한 핵, 미군기지 이전, 독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대응해 전체적인 큰 그림을 과연 준비하고 있는가? 그런 점에서 정부는 섬세하지 못하다.

    올 봄 어느 때보다 시끄러울 수도

    다음은 진지함. 쌀, 중요하다. 하지만 개성공단 문제, 금융시장 및 통신시장 개방, 무역구제 문제, 미국 기업의 한국 정부 직접 제소권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개성공단 상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는 통일을 향한 교두보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미국에 어느 정도 금융시장을 개방할지는 향후 우리 금융부문의 경쟁력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무역구제는 우리의 대미수출을 좌우할 아킬레스건이다. 미국 기업의 한국 정부 직접제소 문제는 우리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지금쯤이면 이 모든 문제들이 국내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어 부문별 대응방안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능한 한 세부적 협상정보를 알리지 않으려는(협상에 방해가 될까봐) 정부의 태도는 이런 준비를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진지하지 못하다.

    곧 봄이다. 하지만 2007년 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할 화려한 봄일지, 가두시위와 각종 단체의 반대로 얼룩지는 눈물의 봄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협상과 정책에 대한 섬세함, 진지함이 없다면 그 봄은 한미 FTA로 또 한 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 협상팀과 정부는 과거의 협상 경험으로부터 왜 배우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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