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3

2007.02.13

辛이 내린 KBO ‘속 빈 강정 1년’

신상우 총재 낙하산 취임 후 관중수 제자리, 산적 현안도 그대로

  • 김성원 중앙일보 JES 기자 rough1975@jesnews.co.kr

    입력2007-02-07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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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辛이 내린 KBO ‘속 빈 강정 1년’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1월1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야구계의 비수기 중에서도 비수기인 1월 모처럼 야구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신상우(69)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신 총재는 프로야구의 현안인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문제 조속 해결과 돔구장 건설 문제 등에 대해 기자들과 의견을 나눴다. 아니, 의견을 나눴다기보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다.

    이날 신 총재는 1월 안에 반드시 현대 연고지 문제(수원 잔류 또는 제3의 지역 이동)를 해결하겠다면서 돔구장 터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야구위원회 총재가 자청해 잡은 것은 이례적이었다(이런 식이라면 매년 결산 인터뷰 등을 해야 한다). 비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을 두고 전시용 행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현대 유니콘스 해프닝에도 책임

    기자회견 며칠 후 농협중앙회가 현대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나왔고, 농협의 서울 입성(목동구장 사용)과 전면 드래트프 실시 등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되면서 야구계의 숙원 중 몇 가지가 물꼬를 트는 듯싶었다. 신 총재가 힘주어 말한 현대 문제 해결은 결국 물밑에서 논의된 농협의 현대 인수로 결말이 나는 듯했다. 그러나 농협 노조와 농림부의 반대로 5일 만에 농협의 프로야구 진출은 없던 일이 됐다.

    일주일도 채 안 걸린 농협의 현대 인수 포기는 프로야구 역사에서 매우 보기 드문 해프닝이다. 신 총재의 최근 행태는 ‘취임 후 1년간 해놓은 일이 거의 없다’는 여론의 지적이 옳았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성급하게 접근한 뒤 사안이 무르익기 전에 터뜨렸다가 농협이 지레 겁먹고 포기한 게 이번 해프닝의 큰 줄거리다. 이 와중에 프로야구단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야구계 수장이 가치를 떨어뜨리는 거래를 급하게 시도하다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것이다.



    이번 사태로 현대는 구단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쑤셔지고 발가벗겨졌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농협·하이닉스·한국야구위원회가 합심해 야구단을 죽인 셈이 됐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구단 인수에는 200억원 이상의 큰돈이 오간다. 인수절차가 철저하게 비밀이 지켜지는 가운데 진행돼야 하는데 사안이 밖으로 드러나면서 일이 묘하게 흘러간 것. 이런 과정에서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고, 직원들은 아직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속 빈 강정이라는 비판을 듣는 신 총재의 KBO 운영은 1년여 전 낙하산 인사에서 비롯됐다는 한 야구인의 지적이 새삼 와닿는다. “취임식 때를 생각해보라. 은퇴한 정치인이 모처럼 야구계의 한 자리를 얻자 얼마나 많은 동료 정치인들이 축하하러 왔는지를. 야구계 행사라기보다는 열린우리당의 정치인 모임을 연상케 하지 않았는가.”

    행동보다 말 … 아직도 정치인?

    정치인이 대부분 그렇듯 신 총재는 행동보다 말이 앞섰다. 성과보다는 언론에 자신을 노출하고, 주인공이 되는 데 신경을 쓴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협의 현대 인수가 무산된 뒤 열린 8개 구단 사장 긴급 간담회에서 신 총재는 “정치보다 언론이 더 어렵다. (현대의) 매각을 준비할 때는 부정적으로 쓰다가 무산되니까 개탄조로 쓰더라”면서 언짢아하기도 했다.

    신 총재는 어떻게 KBO 총재가 됐는가. 알려진 대로 신 총재의 선임은 노무현 정부의 코드 인사 중 한 사례로 꼽힌다. 부산상고 출신 인맥의 도움으로 총재에 추대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신 총재는 취임을 전후해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호되게 받아야 했다. 당시 KBO의 한 관계자는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허탈해하기도 했다.

    신 총재는 취임 전 “알고 보면 나도 야구인”이라며 “발로 뛰는 총재가 되겠다”고 강조했지만 지난 1년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1년 동안의 성과를 그나마 꼽으라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에 오른 대표팀 선수들의 병역문제를 해결해준 것이다. 그러나 신 총재는 일본에서 치러진 WBC 아시아 예선 때 급하게 병역문제를 언급해 병무청 등 관계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신 총재의 ‘역동적인 선언’과 ‘말’은 차고 넘치게 떠다닌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1년간 프로야구 관중 수는 제자리에 머물렀고 산적한 과제도 그대로다. 대통령의 동문이자 측근이 총재를 맡으면 야구계의 숙원사업이 손쉽게 이뤄지지 않겠냐며 ‘낙하산 총재’를 두둔하던 일부 야구인들마저도 실망한 표정이다.

    KBO는 정치인 놀이터

    역대 총재 대부분 낙하산


    역대 KBO 총재는 군 출신이나 정치인 등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주로 맡았다. 초대 KBO 총재는 국방부 장관과 반공연맹 이사장을 지낸 서종철 씨. 서씨는 전두환로 전 대통령이 중령 시절 별을 달고 있었던 군 선배다. 서씨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는 5공 대변인을 맡았던 이웅희 전 문화공보부 장관이었다.

    군사정변으 집권해 정통성 시비가 있는 정권이든 민주화 이후의 문민정권이든, KBO 총재는 야구와 무관한 인사들이 잠시 쉬어가는 자리이거나 재기 또는 도약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감투로 이용됐다.

    총재 재임 중 구설에 휘말려 야구판을 머쓱하게 만들고 떠난 사람도 적지 않다.

    11대 총재인 정대철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재임 4개월 만에 경성그룹 특혜대출 의혹과 관련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홍재형 9, 10대 총재도 1998년 5월 종금사 인·허가와 관련한 특혜 시비로 구설에 올라 물러났다. 군 출신인 5대 이상훈 총재도 율곡 비리에 연루됐다.

    잠시 쉬어간 인사로는 20일 남짓 일하고 교통부 장관으로 영전한 6대 오명 총재(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와 7대 권영해 총재가 있다. 권 총재는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총장을 지낸 김기춘 8대 총재는 금배지를 달기 전 징검다리로 잠시 KBO 총재를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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