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3

2007.02.13

차별에 우는 아랍계 이스라엘인

실업률 50%에 취업자 상당수도 3D 업종 … 최근 첫 장관 배출 ‘권리 증진 기대’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7-02-07 1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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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에 우는 아랍계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위해 보안장벽 앞에 줄을 선 아랍인들. 보안장벽 혹은 분리장벽은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을 더욱 곤궁하게 하고 있다.

    올해 서른다섯 살인 마이크. 세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오늘은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호수 지역을 출발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침 7시에 출발해 저녁 7시에 호텔에 도착하는 12시간의 긴 여정이다.

    마이크는 관광객을 운송하는 버스 운전기사다. 그의 본명은 무함마드. 손님 대부분이 기독교 성지 순례객이기 때문에 예언자 무함마드라는 이름이 자칫 손님들에게 거부감을 줄까봐 늘 마이크라는 별칭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마이크는 ‘아랍 이스라엘리’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시민권자인 아랍인이다. 예루살렘에 자리한 아랍 버스회사에 소속된 그에게 1~2월은 대목이다. 성지 순례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시기이기 때문. 짧게는 3박4일, 길게는 일주일가량 되는 일정이 계속 이어진다. 하루 10~12시간의 업무는 기본이고 새벽에 공항으로 손님을 실어 나른 즉시 남쪽 이집트 국경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태우기 위해 4~5시간 운전하는 일도 잦다.

    “1~2월에는 일이 많다. 일이 있을 때 최대한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마이크. 그러나 그에게 월급은 없다. 손님들이 주는 팁이나, 버스에서 판매하는 생수 또는 성지안내책자 판매대금 등이 수입의 전부다. 그럼에도 마이크처럼 버스 기사를 하겠다는 아랍인들이 줄을 선다.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실업률이 50%에 육박하기 때문에 월급을 못 받아도 관광버스 기사라는 안정된 직장이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상 군 복무 어려워 사회진출 걸림돌



    만일 마이크가 유대인이었다면? 법이 정하는 월급을 받고,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은 거부할 수 있으며, 8시간 이상 일한 것에 대해서는 추가 수당을 받는다. 그러나 마이크 같은 아랍계 이스라엘인에게 이러한 근로조건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차별에 우는 아랍계 이스라엘인

    아랍계 이스라엘인으로는 최초로 장관에 오른 랄레브 마자델레.

    지금 하는 일마저도 이스라엘 정세가 불안해지면 당장 끊기고 만다. 2000년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 발발 후 폭탄테러가 잇따르자,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겨 마이크는 몇 년간 힘든 시기를 보냈다. 작년에는 레바논 전쟁으로 여름에 3개월간 일을 하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어놓아야 하는 것이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형편이다.

    2007년 벽두에 이스라엘 통계청이 발표한 이스라엘 인구는 710만명이며 그중 20%가 아랍인이다. 이스라엘에는 두 부류의 아랍인이 있다. 하나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주민이고, 다른 하나는 마이크처럼 이스라엘 시민권자로 이스라엘의 국민에 포함되는 아랍인이다. 710만명이라는 인구통계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의 아랍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아랍계 이스라엘인만 포함된 수치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과 동시에 발발한 1차 중동전쟁 당시, 피난 가지 않고 이스라엘에 남았거나, 피난을 갔다가 1952년 이전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온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시민권 내지 영주권을 받았는데 이들이 바로 오늘날 ‘아랍 이스라엘리’의 기원이다. 이때 인접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랍인들이 이른바 팔레스타인 난민이다. 당시 각각 요르단과 이집트의 통치 지역이었던 웨스트뱅크(요르단강 서안지역)와 가자지구에 살거나, 피난 갔다가 이 지역으로 돌아온 아랍인들은 후에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주민으로 편입됐다.

    아랍인들에게 비극이라 할 수 있는 현대사는 하나였던 아랍인을 셋으로 갈라놓았다. 오늘날에도 일가족 중 일부는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또 다른 일부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주민으로, 나머지는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으로 살고 있는 이산가족이 흔하다.

    헌법이 없는 이스라엘은 기본법이 헌법을 대신한다. 이 기본법은 ‘이스라엘 국민은 인종, 종교,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가임을 천명하고 있다. 때문에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에서 소수 아랍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경제적 측면만 따져보아도 이 같은 사실은 확연히 드러난다.

    이스라엘의 이른바 ‘3D 업종’은 거의 아랍계 이스라엘인들 몫이다. 경제수준이 낮다 보니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유대인들이 기피하는 고된 일뿐인 까닭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90년대 이후 구소련이나 에티오피아 출신의 유대 이민자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많이 잠식당했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불안한 정세는 이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최대 적이다. 2000년 2차 인티파다 발발 이후 이스라엘은 보안조치의 일환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고립시키기 위한 보안장벽(팔레스타인 측에서는 분리장벽이라 부른다)을 건설 중이다. 아랍계 이스라엘인 중 상당수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거주하고 있고, 이들 대부분이 이스라엘 지역으로 나와 일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장벽의 존재는 이들의 삶을 더욱 곤경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안장벽은 삶의 장애물

    이스라엘 방위군(IDF) 복무 문제도 아랍계 이스라엘인에게는 ‘차별 아닌 차별’ 요인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국방의 의무를 진다. 그러나 아랍계에게는 군 복무가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다. IDF의 주적이 주변 아랍국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 무장단체인 상황에서 아랍인이 이스라엘 군대에 복무하는 것은 IDF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IDF에 자원 입대하는 아랍계의 숫자는 극히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반대로 아랍계가 사회에 진출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처럼 법적으로는 평등권을 보장받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마치 식민지배하의 피지배자처럼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현실이다.

    차별에 우는 아랍계 이스라엘인

    한 아랍인이 이스라엘 경찰에게 신분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러한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에게 최근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1월29일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아랍인 장관이 탄생한 것. 올해 54세의 랄레브 마자델레가 그 주인공으로 노동당 소속 의원이다. 이스라엘 건국의회에는 1948년부터 아랍인 국회의원이 있어왔고, 현 의회에도 12명의 아랍인 의원이 활동 중이다. 그러나 아랍인이 내각 장관으로 임명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대인이 아닌 인물로는 2001년 드루즈족 출신의 살라흐 타리프 장관 이후 두 번째. 마자델레는 현재 무임소 장관이지만 곧 공석인 문화체육부 장관직을 맡을 예정이다.

    마자델레가 장관이 된 데는 노동당 당수이자 현 국방장관인 아미르 페레츠의 적극 추천이 큰 힘이 됐다. 페레츠는 입각이 거절될 경우 연정탈퇴까지 불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는데, 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비판의 근원지는 누구보다도 아랍인의 입각을 환영했을 법한 아랍계 의원들. 아랍 정당 소속인 이들이 “이번 입각은 아랍인의 권리 증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5월에 예정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아랍계 표를 모으려는 당리당략에 의한 임명”이라며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마자델레 신임 장관은 “국회의원석에 앉아 있으면 아랍인 권리 증진을 위한 것이고, 내각에 들어가면 당리당략을 위한 것이냐”고 맞받아치며 “최초의 아랍계 장관답게 아랍계 이슬람인의 권리 증진에 힘쓸 것”이라고 취임 일성을 밝혔다.

    숨은 의도야 어떻든 첫 아랍인 장관이 나왔다는 것은 140만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유대인 통치하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아랍인들의 권리가 증진되고, 나아가 아랍-유대인 간의 평화로운 공존이 정착되는 초석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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