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3

2007.02.13

‘고수익 미끼’ 유사수신 상품권의 덫

주부·실직 가장들 구입했다 업체 도산으로 휴지조각 전락 ‘피해 속출’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7-02-07 14: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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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수익 미끼’ 유사수신 상품권의 덫
    ‘생활비를 공짜로 댈 수 있는 방법.’

    가정주부에게 이보다 더 달콤한 유혹이 있을까. 1월 말 서울 용산의 H상품권 판매점의 모 지점장은 손수 화이트보드에 숫자를 적어가며 그 ‘비법’을 설명했다. 요지는 이렇다.

    “가령 1억원의 상품권을 구입하면 3000만원의 상품권을 더 준다. 이런 혜택을 받는 대신 상품권 사용은 5개월 미뤄야 한다. 추가로 지급하는 3000만원어치의 상품권은 두 달에 걸쳐 여러 번에 나눠서 준다. 원금 1억원에 해당하는 상품권도 구입 후 3·4·5개월 되는 때 각각 3000만원, 3000만원, 4000만원씩 순차적으로 준다. 총 1억3000만원어치 상품권의 5%에 해당하는 650만원 상당의 상품권은 증정용이다. 환매가 안 되니 가맹점에서 사용해야 한다. 나머지 1억2350만원의 상품권은 별도의 상품권 매매소를 통해 모두 환매할 수 있다. 다만 수수료 10%는 별도다.”

    “생활비 공짜로 벌 수 있다” 유혹

    이 지점장의 말대로 증정용을 제외한 나머지 상품권을 모두 환불할 경우, 1억원이 5개월 만에 1억1115만원이 된다. 이것을 은행 금리로 계산하면 연리 25% 내외의 예금을 든 셈이 된다. 시중 은행금리가 연 4~5%인 점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수익률이다. 이 지점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구체적 활용방법을 통해 이 상품권의 장점을 강조한다.



    “1억원을 내면 상품권을 1억3000만원어치 받잖아요. 그럼 5개월 동안 2000만원어치 상품권으로 생활을 하세요. 우리 상품권 가맹점인 인터넷쇼핑몰에서 장을 보고 가맹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거죠. 이렇게 생활비를 써도 1억1000만원이 남아요. 이걸 모두 환매하면 수수료를 떼고도 9900만원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어요. 원금 1억원을 고스란히 되찾는 셈이죠. 참 좋지요?”

    옆에서 듣고 있던 중년 여성도 거든다.

    ‘고수익 미끼’ 유사수신 상품권의 덫

    서민고통신문고 노규수 대표(왼쪽)는 유사수신 혐의 상품권 업체들이 40여 개에 달한다고 전한다.

    “요새 이 상품권을 잘 활용해 애들을 공짜로 유학 보내는 엄마들이 참 많아요. 생활비는 상품권으로 해결하고 남은 생활비를 애들에게 보내주는 거죠. 한 번에 몇억 원씩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매일 저녁마다 열린다는 H상품권 본사의 설명회. 기자가 참석한 이날은 50여 명의 중년 여성과 남성들로 사무실이 꽉 찼다. 이 회사의 여성 간부는 “우리 회사와 가맹을 맺은 자동차 판매 대리점에서 우리 상품권으로 그랜저를 뽑았다”고 자랑했다. 그는 또 “고객들이 직접 다니면서 동네 슈퍼마켓, 애들 학원에 우리 상품권에 가맹하도록 권유한 다음 우리 상품권으로 물건 값을 치르고 학원비를 내라”며 돈이 되는 상품권 가입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수십 %의 ‘이자 상품권’을 주는 식으로 고객을 모으는 상품권 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불법 다단계 및 유사수신 행위 감독을 펼치고 있는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는 현재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40여 개가 영업 중인 것으로 추산한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이들 업체가 투자금 상당의 상품권을 지급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 상품권을 환매하는 방식으로 ‘상품권 판매를 가장한 유사수신 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사수신이란 원금의 전액 혹은 이를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 돈을 투자받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행위는 ‘유사수신 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법을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지난해 금감원이 경찰청에 통보한 유사수신 혐의 상품권 업체는 10여 곳. 이 가운데 경기 성남시 분당에 본사를 두고 K상품권을 발행했던 K캐피탈 대표는 1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밖에도 상품권 발행업체 관계자들이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지만 많은 유사수신업체들은 지금도 법망을 피해 영업 중이다.

    1월 말 오후 2시경, 서울 서초동에 자리한 또 다른 상품권 발행업체인 I사. 지방에서 올라온 150여 명의 상품권 판매대리인들로 사무실이 북적인다. 이 회사의 본부장이 설명하는 I사의 상품권은 H상품권보다 조건이 좋다.

    “유명 배우 영화에 투자” 거짓 홍보도

    “상품권 구입단위가 100만~1000만원이면 원금의 130%, 1100만~5000만원이면 135%, 5100만원 이상이면 140%의 상품권을 준다. 환매 불가한 상품권을 주는 ‘규칙’도 없고 환매수수료도 6%다.”

    1억원어치 상품권을 산 뒤 이 조건대로 환매하면 5개월 만에 1억3160만원으로 ‘뻥튀기’를 할 수 있는 것.

    이 남자 직원은 “사실 고객들이 상품권을 (가맹점에서) 사용하기보다 돈이 되니까 재테크 차원에서 사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회사가 수익 차원에서 여유자금으로 경기 고양시 원당에 140억짜리 빌딩을 구입했을 뿐 아니라, 영화배우 신현준 주연의 영화에 공동제작사로 투자했다”고 자랑했다. 사무실 곳곳에는 곧 개봉한다는 영화 ‘태양을 찾아서’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포스터에서 배우 신현준은 선글라스를 끼고 꽁지머리를 한 모습. 포스터 하단에는 ‘2007년 태양을 품은 그가 온다’라고 써 있다. 투자상담을 받고 사무실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이 업체를 믿고 투자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과연 관계자의 설명대로 이 업체는 미다스의 손일까.

    ‘고수익 미끼’ 유사수신 상품권의 덫

    상품권 업체는 영화배우 신현준이 주연을 맡은 영화 제작에 투자했다며 ‘가짜 포스터’를 게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간동아’가 파악한 실상은 정반대다. 이 업체는 현재 상품권 판매를 가장한 유사수신 행위와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압수수색영장이 집행됐고 대표는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2006년 4월 영업을 개시한 이 업체는 고객 1인당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까지 투자를 받아 모두 200억원의 상품권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현재 회사의 은행통장에는 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영화에 투자했다는 것도 의문스럽다. ‘주간동아’의 확인 요청을 받은 신씨 소속사 올리브나인 측은 이 영화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밝혔다. ‘중국과 합작한 중국 올 로케 촬영영화’라는 회사 측 설명과 달리 신씨는 최근 중국으로 출국한 적도 없다고 한다. 포스터에 쓰인 사진은 1997년 개봉한 영화 ‘K.K. 훼미리 리스트’의 한 장면이었다. 올리브나인 측은 “초상권 및 성명권 침해에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유사수신 혐의 상품권 업체들은 여러 가맹점을 갖추고 정상적으로 상품권을 판매하는 것처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상품권은 명목에 불과하다. 경찰에 따르면 I사의 경우 가맹점으로 유통된 상품권은 10억원어치가 채 못 된다. K캐피탈의 경우도 200여 명의 고객에게 314억원어치의 상품권을 팔았지만, 실제 소비된 상품권은 3억원어치도 채 안 된다.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U상품권 발행업체 U사의 경우 300억원어치의 상품권을 팔았지만 실제 가맹점에서 쓰인 상품권은 1억원어치 안팎에 불과했다. 나머지 상품권은 모두 약정한 5개월을 채우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다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이에 U상품권 구입자 126명은 공동으로 이 업체 대표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배’는 이미 떠난 상태. 피해자대책위원회 소속 모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회사에 남아 있는 돈이 거의 없어 돈을 돌려받을 길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위의 U사와 I사 등 유사수신 혐의 상품권 업체 여러 곳을 수사한 서울 노원서 서영열 경위(지능3팀장)는 “이들 업체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으로 영업하다가 결국 몇 개월 못 가 망하고 만다”고 설명했다. 신규 고객이 낸 돈으로 기존 고객에게 상품권을 환매하는 식으로 운영하다 신규 고객이 유입되지 않으면 자금 흐름이 중단되어 도산하고 만다는 것. 서 팀장은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실제 피해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많은 서민들이 ‘상품권 재테크’에 호도되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불법 다단계의 최신 트렌드

    유사수신 혐의를 받는 상품권 업체들은 불법다단계의 ‘최신 트렌드’인 것으로 보인다. 서민고통신문고의 노규수 대표는 “불법다단계 업자들이 그 수단을 재화에서 상품권으로 바꾼 것뿐”이라며 “제이유네트워크에서 ‘프린스’ 계급이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상품권 업체에 흘러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 대표에 따르면 대부분의 상품권 업체들은 방문판매업으로 신고해놓고 불법 다단계식 영업을 벌이고 있다. 또 다른 U모 업체의 경우 상품권 판매 실적에 따라 팀장→부장→국장→본부장→영업이사의 직급을 설정해 각종 수당을 지급하다 현재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보호원에는 앞서 언급한 H상품권의 ‘정체’를 문의하는 소비자 상담이 11건이나 접수됐다.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업체의 말을 믿어도 되느냐’는 것이 주된 상담 내용. 이 상품권 발행업체 윤모 대표는 “우리는 다단계 영업 방식이 아니며 실제 상품권이 가맹점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면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금감원 유사금융조사반 안웅환 반장은 “유사수신 행위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고 전제하면서 “다만 상품권 업체가 단기간에 고수익을 거둬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이익금을 나눠주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므로 그러한 업체에 투자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단계 및 유사수신 업체 피해자를 구제하는 소송에 여러 번 참가한 모 변호사 또한 “현재는 자금유통이 원활해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상품권이라 해도 언젠가는 도산하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상품권 업체가 지속적으로 고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상품권 판매대금에 의존해 운영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신규 고객의 유입이 중단되면 자금 순환이 중단되고 결과적으로 상품권은 종잇조각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변호사는 “그래서 어느 순간 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피해가 대규모라는 점이다”라고 충고했다.

    1월 말 U업체의 서울 방배동 옛 본사 건물. 1층에 자리잡은 직영 ‘U마트’는 간판만 걸린 채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지난해 추석 연휴를 전후해 업체 관계자들이 야반도주하듯 철수한 뒤 사무실도 텅 비었다. 상품권에 투자했다 돈을 날린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와 망연자실한 모습을 연출한다. 이를 지켜보는 동네 주민들의 속도 편치 않다. 동네 주민 문모(부동산업자) 씨의 말이다.

    “피해자의 대부분이 세상 물정 모르는 50대 전후의 가정주부나 실직 가장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상품권으로 돈 벌어보겠다며 싼 사글셋방을 찾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다 망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래도 사기친 ×들이 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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