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8

2007.01.09

중국 현대미술 ‘예술과 상술’ 사이

세계시장서 각광받으며 자본주의 따라잡기 … 갑작스런 성장에 ‘괴물’로 평가받기도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7-01-03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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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현대미술 ‘예술과 상술’ 사이

    쑨푸롱, ‘NIBBLE’. 권위를 상징하는 남자옷을 가위로 찢어놓은 여성 작가의 설치작으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중국 현대미술 ‘예술과 상술’ 사이
    ”중국의 슈퍼스타급 작가 10여 명은 세계 최고가 컬렉터와 뮤지엄 시장에 진입할 것이다”윤재갑, 베이징 아라리오 대표

    “중국 미술품 가격엔 거품이 없습니다.”(청신동, 중국 청신동갤러리 대표)

    “중국 예술인들이 미술이 상품화되는 것을 왜 반성해야 합니까? 상류사회에서 현대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것은 시대적 풍토입니다.”(우홍, 중국 최대 미술 포털사이트 운영자)

    중국 현대미술 ‘예술과 상술’ 사이

    우쩐, ‘Commercialized Icon’. 재산을 모은 중국 중산계층의 전형을 번쩍거리는 조각으로 만든 연작.

    “서방에서 보기엔 중국에서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져 낯설지 모릅니다. 하지만 중국 작가들은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중국 예술가들이 잘나가고 있는 게 왜 문제가 됩니까?”(빅토리아 루, 중국 상하이 MoCA 디렉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에서 ‘차이나게이트’전(1월31일까지)의 일환으로 열린 ‘중국 현대미술을 보는 시점, 그 관점의 교정’ 세미나에 참석한 중국 측 참석자들의 발언이다. ‘중국 현대미술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각광을 받으며 급속히 상업화되고 있는 데 대해 어떤 반성적 흐름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중국 측 미술 관계자와 작가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중국 젊은 작가들은 동의의 박수를 쳤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선전’이었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상품’의 운명을 타고난다. 역설적이지만 예술작품의 매력은 그러한 조건과 굴레에 저항하고 탈출하려는 데서 더 커진다.

    그러나 중국 현대미술(중국인들 표현으로는 ‘당대미술’)이 2003년부터 세계 미술시장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수직 상승’한 이후 중국 미술은 자본주의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관계’를 맺게 됐다. 하기야 ‘헬리콥터’를 보낸 쪽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미술관과 화상들이었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중국 현대미술 ‘예술과 상술’ 사이
    ”2006년 가을 경매가 하락으로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중국 미술품에 거품은 없다. 청신동, 중국 청신동갤러리 대표

    중국 현대미술 ‘예술과 상술’ 사이

    왕닝더, ‘Some days’ 연작. 역사와 개인적 기억 사이의 관계를 다룬 사진작품(위).<br>창신, ‘신분 전환’ 연작(아래).

    1세대 작가들, 정부와의 정치적 갈등도 사라져

    중국 당대미술 1세대인 ‘포스트89’(1989년 톈안먼 사태를 기점으로 한다) 초기 작가들이 중국 정부와 빚었던 정치적 갈등도 사라졌다. 당시 중국 정부로부터 탄압받아 프랑스와 미국 등지로 도피한 작가들은 모국으로 돌아와 돈과 명예를 움켜쥐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암시하는 ‘국적(國籍)’에서 벗어나려는 서방 예술가들과 달리, 중국 당대미술가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를 작품 속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베이징 최대 화랑 ‘베이징 아라리오’ 윤재갑 대표의 말처럼 “현재 세계에서 중국의 경제·정치·문화적 위상이 베이징과 상하이를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만든 힘”이라는 사실을 중국 당대예술가들부터 잘 알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중국 미술가들은 ‘5000년의 전통문화에서 문화대혁명까지 중국 문화의 드러나지 않은 학문과 기술’을 일종의 ‘서술 자원으로 이용’(펑보이, 독립기획자)하고자 한다.

    “중국 미술인들은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중국 발언자가 한 ‘피(被)선택’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중국이 미술품을 팔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중국은 가만히 있는데 세계가 중국 당대미술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작품이나 경향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다가도 ‘중국은 원래 그렇다’고 결론 내릴 때가 많다.”(최금수, 네오룩 대표)

    중국 현대미술 ‘예술과 상술’ 사이

    언마스크, ‘Translucency’ 연작. 현대인들의 비개인화한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중국음식 체인점을 운영하는 장란이라는 여성 기업가가 젊은 작가 리우샤오펑의 작품을 경매시장에서 300만 달러(약 28억원)에 낙찰받아 베이징에 새로 문을 연 초대형 식당에 내건 일이 화제가 됐다. 3년 전 비슷한 리우샤오펑 작품의 화랑 거래가격은 12만 달러(약 1억1000만원)였다고 한다. 투자처를 찾지 못해 경매로 몰리는 뭉칫돈들, 경매가와 화랑가의 차이를 만드는 미술시장의 돌출적이고 불안정한 요소들, 고액 미술작품 낙찰사건을 음식점 마케팅에 활용하는 상술 등이 중국 당대미술에 ‘로켓’를 달아주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지금’ 중국 당대미술의 진정한 매력은 예술의 상품화와 자본주의, 정치사회적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한 자본주의를 따라잡는 놀라운 속도감에 있다. 우리에게 ‘중국 현대미술을 보는 어떤 시점’에 교정이 필요하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중국 현대미술 ‘예술과 상술’ 사이
    ”중국 미술이 스타 작가에 집중되고, 많은 작가들이 인민복과 마오 이미지를 반복 생산한다면 나쁜 상황이 올 수 있다” 최금수, 네오룩 대표

    중국 현대미술 ‘예술과 상술’ 사이

    라우쩡, '돈' 연작.

    ‘차이나게이트展’ 당대미술의 가능성과 위험성 공존

    ‘차이나게이트전’은 이 같은 중국 당대미술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함께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참여 작가들은 70~80년대 태어나 중국의 개방화와 소비주의를 체험한 세대다. 마오쩌둥과 문화혁명, 톈안먼 사태를 경험한 1세대 작가들과 달리 이들은 자신의 생활, 몸,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가운데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고 즐거운 전망을 공유한다. 작가 리우쩡의 경우 싸구려 구슬로 거대한 돈을 만들지만, 그것은 인간을 조건짓는 족쇄가 아니라 자유의 상징이다.

    “모든 것이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돈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내가 돈을 직접 만들면 안 될 이유도 없지 않은가?”(리우쩡, 작가)

    퍼포먼스 작가인 창신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복장을 바꾼 사진들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은 여러 현대미술가들이 이미 시도했던 것이지만, 진심으로 서구인이나 다른 사람이 되려 한다기보다 중국 예술가인 자신의 문화적 기억과 정체성을 즐긴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총 11인의 참여 작가들은 중국 현지 기획자들과 화상들의 추천으로 선정됐다. 질문은 ‘3세대 미술작가들이 포스트89 작가들처럼 세계 미술시장에서 선택받을 것인가’다.

    불길한 조짐은 중국 화랑과 경매시장이 지극히 불안정하며 중국 당대미술품에 몰렸던 돈 중 상당 부분이 새 투자처를 찾을 경우 즉시 떠나리라는 점, 2006년 한 해에 중국 스타 작가들의 작품들이 ‘싹쓸이’식으로 팔려나가 환매시점이 되는 2008년 무렵에는 동시에 시장에 나오리라는 점, 이미 2006년 가을 경매에서 가격이 하락한 작품과 다수의 유찰이 나왔다는 점 등이다. 또한 스타 작가들의 이미지, 홍위병과 마오쩌둥, 중국 전통에 팝아트를 혼성한 중국 당대미술품이 ‘관광상품’ 혹은 벤처기업의 주식처럼 마구 찍혀 나오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2008년 무렵 시장에 환매 집중될 수도

    낙관적인 전망은 중국의 정치·경제적 지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가운데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리라는 예상, 초고가 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는 극소수의 세계적 컬렉터들이 드디어 중국 당대미술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 등이다.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 중 한 명인 영국의 찰스 사치 경이 2006년 10월 슈퍼스타 장샤오강의 작품을 구입했는데, 사치 경이 후원할 대형 중국현대미술전을 기회로 스타급 작가의 작품값이 다시 한 번 수직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현대미술 ‘예술과 상술’ 사이
    ”중국 당대미술이 자본과 너무 밀접해지는 것에 대한 비판은 한창 토론중이다.” 펑보이, 중국 독립기획자

    “중국 현대미술 작품가격이 심하게 불안한 것은 서구의 대형 미술관들이 지금까지 컬렉션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술관에서 구입하는 가격과 소장 여부가 작품의 가치를 안정시키는 구실을 하거든요. 사치경의 컬렉션이 미술관의 소장 여부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거품’은 중국 미술이 아니라 전 지구적 시장의 거품입니다.”(윤재갑 대표)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6년 12월25일자에 ‘The Great China Sale’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국 당대미술 현상을 분석했다. 이 기사에서 중국의 유력한 컬렉터 구안이는 “중국 현대미술은 ‘괴물’이 됐다. 사람들의 관심은 미술이 아니라 미술품으로 주식처럼 얼마를 버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작가 겸 기획자인 자오강은 “막 미술시장에 나온 젊은 작가들이 선배 스타작가들의 이미지들을 ‘도구’로 이용해 그림을 공산품처럼 생산한다”고 비판하면서도 “이 정도 가격에 이들을 욕할 수도 없다”고 곤혹스러워한다. 중국은 현대 미술시장에 또 하나의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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