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8

2007.01.09

프랑스 중산층 ‘라 붐’의 위기

인구 절반 “사회·경제적 지위 불안정” … 정부 정책은 희생만 요구, 극우 성향 지지

  • 파리=홍용진 통신원 hadrianus@hanmail.net

    입력2007-01-03 1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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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중산층 ‘라 붐’의 위기
    13세 소녀 소피 마르소를 일약 스타로 만든 프랑스 영화 ‘라 붐’(La Boum, 1980)을 기억하는가. 이 영화에는 명문 앙리4세 고등학교를 다니는 여학생 ‘빅’과 치과의사인 아버지, 만화가인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라 붐’이 바로 당시 프랑스의 전형적인 상위 중산층 가정을 모델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중산층 가정의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프랑스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요즘 프랑스 중산층의 ‘라 붐’은 끝나가는 듯하다. 크게 주목할 만한 사건이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중산층의 위기는 현재 프랑스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인정되고 있을 뿐 아니라 프랑스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는 비단 경제적 위기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중산층이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느끼는 심리적 위기감을 동반하고 있다.

    프랑스의 한 사회학자에 따르면, 6300만명의 프랑스 인구 중 절반가량이 넓은 의미의 중산층 범위에 포함된다. 이 중산층은 다시 하위, 중간, 상위 중산층으로 나뉜다(표 참조). ‘중산층 위기’란 다시 말해 프랑스 인구의 절반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불안정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유로화 개혁 이후 경제부담 가중

    이들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었음을 토로한다. 2000년 유로화 개혁 이후 오르기 시작한 물가는 악화되는 프랑스 경제와 맞물려 계속 오르고 있다. 이에 프랑스인들의 구매력은 현저히 낮아졌고, 이는 프랑스 내수산업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심각하게 상승하고 있는 것은 월세다. 지난 10여 년 동안 월세가 무려 2배나 상승했다. 반면 국가의 주택보조금 상승률은 이에 못 미쳤다. 파리시 주변 주택가의 경우 13평짜리 아파트 월세가 보통 900유로(약 111만원)인데 주택보조금은 270유로에 불과하다.

    또한 프랑스 중산층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큰 심적 부담을 갖고 있다. 프랑스는 첨단산업에서 이렇다 할 세계 1등 품목을 보유하지 못했다. 저렴하고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세계화의 물결 앞에서 살아남을 만한 프랑스 산업이 명품산업과 관광산업 외에는 없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은 프랑스 전체의 문제임에도 유독 중산층만이 ‘위기’라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부유층은 세계화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명품의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부유층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국경을 넘어 부를 창출할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이미 이들만의 사교모임에서는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서민층이나 소외층은 정착된 사회복지 체계 덕분에 세계화 피해를 최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월급 외에도 여러 명목의 보조금과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종사하는 분야가 세계화와 무관한 경우가 많고, 세계화에 대한 정보나 인식 부족으로 불안감을 키울 정도는 아니다.

    세계화 물결로 지위 낮아질까 걱정

    그러나 프랑스의 중산층은 자신의 직업에서나 소비시장에서 세계화에 따른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복지제도 유지를 위한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경제를 되살리려는 정부 정책이 대부분 중산층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6년 3월에 있었던 최초고용계약 법안 반대 시위였다. 이 시위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바로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이었다. 이들은 자신과 자기 자식들의 경제·사회적 지위가 부모 세대보다 더 낮아질 것을 걱정한다.

    이러한 중산층의 위기는 프랑스의 ‘정치 위기’와 맞물리고 있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감과 복지 혜택을 받는 이민자 출신의 소외계층에 대한 질시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중산층의 ‘소외감’은 극우적 성향의 지지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프랑스 극우파 국민전선의 당수 장 마리 르펜의 인기 상승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1920~30년대 경제대공황은 독일 중산층을 파국으로 이끌었다. 코너에 몰린 독일 중산층이 선택한 것은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즘이었다. 물론 현재 프랑스의 상황이 당시처럼 극단적인 것도 아니고 프랑스적 전통이 그러한 선택을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심리 차원에서의 중산층의 몰락과 극우정치 성향의 성장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고려할 때 프랑스 중산층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계층별 구조
    사회계층 비율(%) 월수입(1유로=1240원) 주요 직업
    소회층 13 666유로 이하 -
    서민층 34 1143유로 이하 건축업, 소매업, 운송업 등
    중산층 하위 24 1524유로 이하 일반사무원, 일반공무원, 전문기술자 등
    중간 18 2286유로 이하 전문교육자, 의료계 종사자, 대학교수, 기술영업 등
    상위 8 3429유로 이하 중소기업 대표, 일반가정의 등
    부유층 3 3429유로 이상 전문의, 대기업 대표, 변호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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