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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 되는 소보원 커졌다 세졌다

설립 20년 만에 年 상담 29만건 ‘70배 늘어’ … 제조물책임법 제정, 에스크로제 도입에도 공헌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성년 되는 소보원 커졌다 세졌다

성년 되는 소보원 커졌다 세졌다

서울 서초구 염곡동에 자리한 소보원 사옥.

‘고객이 왕’인 시대라지만 소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억울한 일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부당요금을 청구받았거나 환불을 거절당했을 때, 이미 값을 지불한 회사가 ‘잠적’해버렸을 때 소비자가 부랴부랴 찾게 되는 곳이 바로 한국소비자보호원(이하 소보원)이다.

1987년 설립된 소보원이 올해 만 스무 살의 성인이 된다. 이에 맞춰 소보원의 위상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오는 3월 ‘한국소비자원’으로 간판을 바꿔달며, 소비자보호법이 소비자기본법으로 개정된다. 소비자가 ‘보호’의 대상에서 시장에서 선택권을 가진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서민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소보원의 20년 이야기를 짚어본다.

8063 vs 31만6402

소보원이 개원 첫해인 1987년 처리한 소비자 보호 업무량은 상담 4173건, 피해구제 3890건으로 총 8063건이었다. 그러나 19년이 흐른 2005년, 소보원의 업무량은 무려 38배나 상승했다. 상담이 29만4574건으로 70배 늘었고, 피해구제는 2만1828건으로 5배 증가했다. 과거에는 전화 상담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 들어 인터넷 상담 비중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요즘에는 3건 중 1건이 인터넷 상담이다.

성년 되는 소보원 커졌다 세졌다

1층에 마련된 홍보관에서 이승신 원장(앞줄 가운데)이 직원들과 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한복 오염 사건 vs 인터넷쇼핑몰 폐쇄 사건



1987년 8월 서울 강동구 주민 이내순 씨는 소보원에 “한복 오염의 원인을 밝혀달라”며 찾아왔다. 세탁소에 맡긴 23만원짜리 한복 치마에 군데군데 얼룩과 줄무늬가 생겼기 때문. 세탁소 주인은 “원단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변상을 거부했다. 이에 소보원은 3가지 과학적 실험을 동원, ‘세탁소 취급 부주의’로 결론을 내렸다.

‘세탁소 분쟁’은 지금도 소보원의 단골 상담 분야다. 그러나 요즘에는 한복 때문에 분쟁이 불거진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양복 세탁 분쟁이다. 최근 들어 소보원에서 문전성시를 이루는 소비자 피해상담은 인터넷 서비스 분야다. 인터넷으로 물건 대금을 결제받은 뒤 사이트를 폐쇄하는 수법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에는 인터넷쇼핑몰 ‘리치투유’ 피해자 630명이 소보원을 통해 피해구제를 받았다. 이 쇼핑몰은 에어컨,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을 싼값에 판다고 광고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대금을 결제한 직후 사이트가 갑자기 폐쇄됐다. 이에 소보원은 각 카드사와 결제대행업체 등에 연락을 취해 630명 전원에 대한 카드매출을 취소하도록 했다. 할부로 구입해 1회차 대금을 이미 지불한 피해자들은 환불을 받았다.

성년 되는 소보원 커졌다 세졌다

소보원 전화상담실은 하루 600여 건의 상담을 처리한다.

가전제품→학습교재→건강식품→이동전화 서비스

시대 변화에 따라 소보원에 접수되는 상담 품목도 변화했다. 1987~90년에는 가전제품과 기계공구, 출판·문구·완구류 등이 주요 상담 품목. 특히 가전제품의 품질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았다. 소보원이 1988년부터 매달 발행한 ‘소비자시대’는 가전제품 품질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예방하기 위해 각 회사별 가전제품의 장단점과 성능 비교, 주의사항 등에 대한 정보를 실었다. 당시 주로 다뤄진 가전제품은 선풍기, 전기다리미, 보온도시락 그리고 200ℓ짜리 ‘투 도어(two-door)’ 냉장고 등이었다.

1991~95년에는 학습교재 피해상담이 봇물을 이뤘다. 이 기간에 무려 8만9000여 건의 학습교재 피해상담이 이뤄졌다. 학습교재는 주로 방문판매로 이뤄졌는데 △관공서나 공공기관 사칭 △카탈로그와 배달 물건이 다름 △임시 접수를 완전 계약으로 처리 △학습지도를 조건으로 계약했음에도 이행하지 않음 △구입할 때까지 앉아서 떼쓰거나 공갈 협박 등이 주요 피해 내용이었다.

1996~2000년에는 여전히 피해가 빈번한 학습교재의 뒤를 이어 건강식품과 부동산임대차가 주요 피해상담 품목으로 등장했다. 집주인이 임대계약 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임대 관련 제도를 잘 몰라서 서민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부동산임대차 관련 소비자 피해는 많이 줄었다. 그러나 건강식품은 여전히 소보원의 골칫거리. 판매사원의 집요한 요구 때문에 반강제로 구입했다가 후회하거나 이미 개봉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환불받지 못하는 경우,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부작용이 생기는 등의 피해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2001~05년에 새롭게 1위로 ‘등극’한 소비자 피해상담 품목은 이동전화 서비스다. 이동전화 서비스 가입자 4000만명 시대가 되면서 날로 치열해진 사업자 간 경쟁 탓에 애꿎은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 2003년 522건에 불과하던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2005년 1109건으로 두 배나 껑충 뛰었다. 주요 피해 유형은 △부당요금 청구 △명의 도용 △통화품질 불만 △미성년자 계약 등이다.

제조물책임법, 에스크로 등 도입에 기여

1994년에는 일명 ‘녹즙기 쇳가루 파동’이 일어나 소보원이 시끄러웠다. “녹즙기에서 쇳가루가 나온다”는 소비자 피해상담이 급증했던 것. 정밀검사 결과 일부 녹즙기 제품에서 니켈, 크롬 등의 중금속이 검출됐다. 녹즙기의 주요 부품인 기어가 서로 닿아 마찰이 생김으로써 쇳가루가 떨어져 나온 것.

이 사건은 ‘제조물책임법’ 제정의 계기가 됐다. 제조물책임법은 소비자들이 민사소송 등을 통해 제조업자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하지 않고도 제품의 결함이 발견되면 반품이나 환불, 신체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 미국, 일본, 필리핀 등 세계 27개국에서 이미 시행 중인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부터 실시됐다.

소보원은 최근 온라인 에스크로 제도(결제대금 예치제도)를 도입하는 공을 세웠다. 에스크로란 신뢰성 있는 제삼자에게 대금결제와 상품 인도를 보증하도록 한 거래보호 서비스로, 2006년 4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는 인터넷 상거래가 활발해진 한편으로 물건대금을 받고 잠적하는 악덕 업자들도 늘어나 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에스크로 제도 도입에는 2002~03년 발생한 ‘하프플라자 사건’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9만6000명, 피해액이 31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사건이었다.

컴퓨터, 가전제품, 잡화 등을 판매하는 인터넷쇼핑몰 하프플라자는 ‘모든 제품을 반값에 판매한다’며 회원을 모집, 상품을 판매했다. 그러나 2002년 11월 이후 이 업체가 제품 발송을 하지 않고 연락도 끊기자 수많은 피해자들이 소보원으로 몰려왔다. 이에 소보원은 검찰에 하프플라자 수사를 요청하고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이 업체 대표이사 등 6명이 검찰에 구속기소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소보원의 하프플라자 사건 대응은 감사원의 2004년 감사 결과 모범 사례로 꼽히는 영예도 안았다.

‘무대뽀’ ‘스토커’ ‘No 매너’ 소비자 미워요

인터넷 상담 비중이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절반가량의 소비자 피해상담이 전화로 이뤄지고 있다. 모두 23명의 여성 상담원들이 하루 처리하는 상담 건수는 무려 600여 건. 가지각색의 소비자들을 대응하다 보니 상담원들을 곤란하게 하는 이들도 많다. 상담원들이 꼽는 ‘미운’ 소비자는 △해외파형(선진국의 법을 들먹이면서 우리나라 현실 비난) △무대뽀형(‘수리’는 수용하지 않고 ‘제품 교환’ ‘환불’만 고집) △일확천금형(이물질로 신체 일부를 다쳤다고 주장하면서 과다한 피해보상 요구) △No매너형(반말하거나 상사를 바꾸라고 요구) △작업형(‘목소리가 예쁘다’ ‘나이가 몇이냐’ 등의 질문을 하며 상담에는 관심 없음) 등이다. 상담지원팀의 김정옥 부장은 “얼마 전에는 화장품 때문에 신장에 이상이 생겼다고 주장하면서, 입증이고 뭐고 모두 소보원이 알아서 하라며 ‘일확천금형’으로 나오는 소비자가 있어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소보원 전화상담실은 하루 600여 건의 상담을 처리한다.

인터뷰 이승신 소비자보호원 원장

“새해부터는 소비자 주권 찾기에 주력할 터”


성년 되는 소보원 커졌다 세졌다
2004년 9월 공모를 통해 취임한 이승신(51) 원장은 한국소비자보호원 최초의 여성 원장. 그는 ‘스킨십 경영’으로 소보원의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상당 부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초기 경기 용인의 자택으로 250여 명의 직원들을 모두 초대하는가 하면, 직원들의 이름과 신상을 외우고 폭탄주도 배우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함께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꺼리던 직원들이 요즘은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며 활짝 웃었다. -오는 3월 소비자보호법이 소비자기본법으로 바뀌고 한국소비자보호원도 한국소비자원으로 변경되는데….“기존 업무를 그대로 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체감하는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 ‘주권 확립’에 좀더 매진할 계획이다. 소비자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 예방 활동에 주력하겠다. 또한 안전 확보에 힘쓸 것이다. 위해물질 정보 수집과 제도 마련으로 소비자가 안전한 상품을 선택하고 기업이 안전한 상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소보원 관할권이 재정경제부에서 공정거래위원회로 이관됨으로써 나타나는 변화는 무엇인가.“공정위가 기업의 소비자 보호 측면을 좀더 고려하게 되면서 기업이 이전보다 소비자 지향적이 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공정위의 조사권과 제재 권한을 신속하게 활용하게 되어 소비자 보호 업무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한다.”-새로 도입되는 소비자단체 소송제도가 손해배상 청구는 금지하고 있어 아쉽다.“한 번에 모든 것을 도입할 수 없다는 점을 소비자들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대신 일괄분쟁조정이 도입되므로 소비자들은 좀더 편리하고 신속하게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비자 보호의 제도적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제조물책임법 등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적 제도는 충분히 마련돼 있다. 다만 이러한 제도가 소비자에게 실제 혜택을 주고 있는지는 검증해봐야 할 사안이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자발적으로 소비자 피해구제에 나서야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앞으로는 ‘사후 만족’까지 세심하게 관리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될 것이다.”-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권리의식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날로 향상될 뿐 아니라 요구사항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 권리를 적극 주장하는 연령층도 낮아지는 추세다. 방학 때마다 상담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기업의 서비스를 악용하는 소비자들도 많지만, 여전히 소비자는 약자다. 다양해지고 날로 발전하는 상술만큼 소비자의 정보 취사선택 능력도 향상되어야 한다.”




주간동아 2007.01.09 568호 (p48~49)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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