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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에 펀치 날리는 ‘盧 파이터’

‘도전과 응전’으로 임기말 적극 대응 … “나를 밟지 마라” 대선주자들 강한 압박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레임덕에 펀치 날리는 ‘盧 파이터’

레임덕에 펀치 날리는 ‘盧 파이터’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말 레임덕 관리에 나섰다. 노 대통령의 레임덕 관리 스타일은 전임 대통령들과 사뭇 다른 것 같다. 김대중(DJ), 김영삼(YS) 두 전직 대통령은 아들들의 ‘탈선’과 대선주자들의 공세에 속수무책 당하다가 결국 당을 떠났다. 노 대통령은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던 전임 대통령의 처참한 말로를 생생히 지켜봤다. 노 대통령 측은 이런 정치문화를 혁파 대상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학습효과로 무장한 노 대통령과 참모들은 이런 말로를 피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고 마련했다는 후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논리다. 물론 원칙과 명분을 선점해야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다는 권력의 법칙도 동반한다. 우리당 친노 계열의 한 의원은 “청와대가 과거처럼 소극적인 레임덕 방지책으로 임기말을 맞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한 압박을 바탕으로 한 ‘도전과 응전’의 원리가 작동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 같은 레임덕 방지책은 정계개편 등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도 유용해보인다.

이 의원은 ‘도전과 응전’이란 레임덕 방지책의 첫 번째 희생양으로 고건 전 총리를 지목했다. 지난해 12월21일 ‘고 전 총리는 실패한 인사’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으로 촉발된 현직 대통령과 전직 총리의 대립과 갈등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노 대통령이 먼저 ‘공세’에 나선 듯하다.

전임들 보면서 오래전부터 준비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흐름이 잡힌다. 이 싸움은 고 전 총리가 시작했다는 게 청와대와 여권, 특히 친노 측 인사들의 설명이다. 대권 장정에 나선 고 전 총리가 갈수록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여 왔다는 것. 이를 놓고 청와대 측은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고 전 총리가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임기말에 접어드는 노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는 후문이다. 자신을 초대 총리로 발탁했던 대통령을 사실상 밟고 가려는 것으로, ‘분하다’는 표현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당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을 평가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고 전 총리는 항상 ‘초대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평가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이는 결국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그것도 지지도가 떨어진 최근에는 직설적 비판으로 바뀌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벌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대결이었다.”

결국 차별화를 준비해오던 고 전 총리가 지난해 12월21일 노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공세에 나섰다는 것.

그러나 고 전 총리 측이 청와대 측의 ‘준비’를 지나치게 가볍게 본 것이 불찰이었다. 고 전 총리의 한 참모는 “(노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모르고 들어갔다가 오히려 당했다”며 때늦은 후회를 했다.

레임덕에 펀치 날리는 ‘盧 파이터’

지난해 12월28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이 악수를 나누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 전 총리는 이 싸움으로 심한 내상을 입었다. 국민 지지도가 한자릿수로 떨어졌고,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범여권 대선후보 지지율 1위 자리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게 내주었다. 내상을 입은 고 전 총리 측은 “고 전 총리는 이념적, 사회적 분열을 치유하는 매개자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청와대의 비판이 “고건으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길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역대 대통령의 레임덕은 차기를 도모하는 대선주자들의 차별화 전략에 의해 가속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1997년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YS를 흔들었고, 2002년에는 이인제 후보가 DJ를 공격했다.

노 대통령 측도 이런 권력의 속성을 잘 안다. 그래서 김근태 당 의장이나 정동영 전 의장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대통령을 동네북처럼 두드리는’ 정치인 그룹에는 고 전 총리뿐 아니라 두 인사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 대통령과 한 번씩 갈등을 겪었고 앞으로도 대립이 불가피하다.

노 대통령은 이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2006년 12월21일 ‘경고’를 보냈다. “링컨 대통령처럼 그들을 포용했지만 결국 욕을 먹었다”며 실패한 인사임을 시사한 것. 노 대통령을 배제한 채 독자노선을 걸으려는 데 대한 점잖은 충고로,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논리를 다시금 생각게 하는 행동이었다.

이 경고 직후 두 인사는 공동으로 활로를 찾아나섰고, 결국 지난해 12월28일 통합신당 창당에 합의했다. ‘실용과 개혁’으로 나뉘어 수시로 충돌해온 숙명의 라이벌이 다급한 처지에 몰린 것이다. 이는 노 대통령의 공세가 그만큼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설정한 창당 로드맵은 노 대통령이 가고자 하는 길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두 사람이 만든 합의문에는 노 대통령의 개입을 차단하는 안전장치도 숨어 있다. 결국 이제 서로가 서로를 ‘밟고’ 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청와대 측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투다. 여권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고 전 총리와의 공방전을 통해 노 대통령은 역시 싸움에 능하다는 게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노 대통령은 상대가 공격해오면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치고 들어간다. 인파이터로 변신, 줄기차게 공격하는 기술이 탁월하다. 정계개편을 둘러싼 김 의장, 정 전 의장 등과의 주도권 경쟁에서도 노 대통령의 이런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노 대통령은 김 의장과 정 전 의장이 어떤 방법으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는 눈치다. 김 의장과 정 전 의장도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란 점을 잘 알 것이다.”

청와대 측은 대선주자들에 대한 강한 압박술로 레임덕은 물론, 정계개편의 주도권도 쥘 수 있다고 본다. 수성과 공격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작동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다. 여권 주변에서는 내년에 처리될 대형 정책 이슈들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3월까지 한미 FTA 협상 문제를 처리해야 하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도 매듭지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노 대통령 지지세력의 결집이 가능하다고 본다.

지지세력 결집 강한 청와대 지향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적지 않지만, 남북정상회담도 노 대통령이 꺼낼 수 있는 카드다. 이미 언급했던 임기 단축 문제도 메가톤급 이슈로서 노 대통령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노 대통령은 이런 이슈들을 대선을 앞두고 정치 세력을 재편할 때 최대한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 박기영 전 청와대 과학보좌관을 다시 청와대로 불렀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에게는 이미 오래전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장직을 맡겼다. 회전문 인사란 비판에도 노 대통령이 충성심으로 무장한 이들을 가까이에 두고 있는 것은 임기말 ‘강한 청와대’를 구축해 레임덕 방지는 물론, 정국 주도권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강한 압박이 현실정치에서 통할지는 미지수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 대통령의 정국 주도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지율은 하락하고 구심력보다 이탈하려는 원심력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을 지나 하산길에 접어든 지금, 시간도 노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 잘못하면 내부의 적을 만들어 고립무원의 처지에 몰릴 수 있다. 레임덕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노 대통령의 압박술은 그래서 양날의 칼로 평가받는다.



주간동아 2007.01.09 568호 (p14~15)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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