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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제 와 없던 일로? 이란 핵합의

이란 온건·개혁파,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폐기 언급에 전전긍긍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이제 와 없던 일로? 이란 핵합의

이란의 온건·개혁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이후 핵합의를 깰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는 그동안 “이란과 핵합의는 재앙이자 최악의 거래”라면서 “대통령이 되면 이란 핵합의를 폐기하는 것을 정책 최우선순위에 두겠다”고 공언해왔다. 실제로 트럼프는 3월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협의회(AIPAC) 총회 연설에서 이란 핵합의 폐기를 강조한 바 있다. 트럼프는 또 9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선거(대선) 후보와 가진 첫 TV토론에서도 “당신이 국무장관 시절 이란 핵협상을 시작했다”면서 “이란은 10년이 지나면 핵을 갖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등 주요 6개국(P5+1)은 지난해 7월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했다. 그리고 양측은 올해 1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라는 핵합의를 발효시켰다. 당시 주요 6개국은 대(對)이란 제재조치를 해제했고, 이란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양측의 핵합의가 성사된 것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선 이란과 협상을 통해 핵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 따른 경제위기를 해결하려면 미국과 핵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다.



온건·개혁파, 핵협상 덕에 의회 권력 장악

특히 로하니 대통령과 온건·개혁파는 이란 정치체제 변화를 이끌고자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했다. 이란의 신정(神政)체제는 북한 수령체제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재체제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신정체제란 종교지도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제도를 말한다. 이란 국가최고지도자 겸 군 최고통수권자는 로하니 대통령이 아니라 최고 종교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다. 대통령 인준과 해임권을 가진 하메네이는 입법, 사법, 행정 등 국정 전반의 최후 의사결정권자다.

신정체제는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에서 비롯됐다. 호메이니는 당시 팔레비왕조를 붕괴시킨 후 이슬람 헌법을 제정했다. 호메이니는 자신이 주도한 이슬람 혁명과 신정체제를 지키고자 혁명수비대를 만들었다. 혁명수비대는 육·해·공군과 정보 및 특수부대, 미사일부대 등을 보유한 엘리트 조직이다. 혁명수비대는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에 중추적인 기능을 해왔다. 현재 이란 정치권력은 혁명수비대의 손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의원을 비롯해 주요 지방자치단체장 등 각종 요직도 혁명수비대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혁명수비대가 미국 등 서방국가와 핵합의에 강력하게 반대해온 이유도 자신들의 정치권력 약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란 온건·개혁파는 핵합의 덕에 2월 총선에서 의회(마즐리스) 전체 290석 가운데 절반이 넘는 158석을 차지해 혁명수비대 출신이 주축을 이룬 보수·강경파에게 압승했다. 이란 총선에서 온건·개혁파가 다수가 된 것은 2000년 이후 16년 만이다. 의회권력 지형이 역전된 셈이다. 게다가 총선과 동시에 실시한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선거에서도 온건·개혁파는 전체 88석 가운데 52석을 차지하면서 보수·강경파를 압도했다. 국가지도자운영회의는 이란 신정체제의 정점인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기관이다. 임기 8년인 위원들은 현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가 77세로 고령인 데다 전립샘암을 앓는 등 건강까지 좋지 않아 차기 최고지도자를 임명할 가능성이 높다. 당시 총선 결과에 따라 핵협상을 주도한 로하니 대통령은 그동안 보수·강경파의 견제로 지지부진하던 각종 개방·개혁정책을 적극 추진해왔다.

로하니 대통령이 앞으로도 개방·개혁정책에 박차를 가하려면 핵합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란은 내년 5월 19일 대선을 치른다. 재선을 노리는 로하니 대통령은 보수·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방과 핵협상을 타결한 만큼, 만약 트럼프가 이를 폐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정치적 입지가 크게 약화될 개연성이 높다. 로하니 대통령이 “미국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이란은 핵합의를 지킬 것”이라면서 “트럼프 당선인도 핵합의를 유지하기 바란다”고 밝힌 것도 보수·강경파의 득세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알리 악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청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기간 여러 말과 구호를 쏟아낼 수 있었지만,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현실적으로 제약받게 될 것”이라면서 “트럼프 당선인이 현실을 고려해 행동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란 핵협상 실무책임자인 살레히 청장은 로하니 대통령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부 장관 등과 함께 온건·개혁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란 차기 대선 승패 가를 변수

반면 이란 보수·강경파는 트럼프가 핵합의를 깨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보수·강경파가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 분노를 부추길 촉매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혁명수비대는 로하니 대통령과 온건·개혁파가 대선 승리의 카드라고 생각하는 핵합의가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이후 깨질 경우 자신들이 득세하리라 보고 있다.

하메네이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하메네이는 차남인 모즈타바 호세이니 하메네이(47)가 국가지도자운영회의에서 차기 최고지도자로 선출되기를 희망한다. 하메네이는 로하니 대통령이 재선할 경우 자신의 차남이 최고지도자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건·개혁파는 호메이니의 손자이자 개혁 성향을 보여온 하산 호메이니(43)를 차기 최고지도자로 미는 중이다. 이 때문에 하메네이는 최근 들어 미국을 자극하는 강경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하메네이는 “미국은 언제나 이란에 해로웠기 때문에 대선 결과를 판단할 이유가 없다”면서 “우리는 어떠한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메네이는 또 “차기 미국 대통령이 핵협상을 파기하면 이란은 거기에 불을 지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당선 이후 이란 핵합의 폐기 여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란 핵합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통과한 것으로 미국 혼자 폐기하거나 다시 협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발탁한 참모들의 면면을 보면 이란 핵합의 재협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한 마이크 플린 전 국방정보국(DIA) 국장과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발탁한 마이크 폼페오 하원의원은 이란에 대한 강경론자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이란 핵합의에 반대해왔다. 플린 전 국장은 공개적으로 “이란과 핵합의는 결함이 많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폼페오 하원의원은 “이란은 세계 최대 테러지원 국가”라면서 “재앙 같은 협상을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의회도 이란 핵합의를 마뜩찮게 보고 있다. 하원은 11월 15일 이란 제재법을 10년간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난 12월 1일 상원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란 제재법은 1996년 제정됐는데, 이란의 에너지 분야에 2000만 달러(약 233억7200만 원) 이상 투자한 외국기업을 미국 정부가 제재한다는 내용이다. 내년 출범하는 미국 새 의회는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해 이란 핵합의를 무력화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트럼프가 이란 핵합의를 깰 경우 자칫하면 미국과 이란이 다시 핵 문제를 놓고 정면 대결할 수도 있다. 






주간동아 2016.12.14 1067호 (p68~69)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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