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7

2016.12.14

커버스토리

포스트 박근혜는 야당 몫? 착각이야!

촛불정국서 새누리당 직격탄…민심 뒤따라간 야당도 내상 입어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12-09 17: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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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등 무자격 민간인의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황들이 보도된 이후 대한민국 국정은 사실상 멈춰 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5일, 11월 4일과 29일 등 세 차례에 걸쳐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과’했지만 분노한 민심은 ‘즉각 하야’를 요구했다.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그 주변을 가득 메운, 100만 명 넘는 ‘촛불’을 든 국민은 저마다 ‘박근혜 퇴진’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며 ‘박근혜 대통령을 더는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당은 대통령과 공동운명체

    ‘즉각 물러나라’는 국민의 요구에 박 대통령은 11월 8일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회가 추천한 총리에게 내각을 총괄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버텼고, 29일 3차 대국민담화에서는 “국회가 임기 단축을 협의하면 따르겠다”며 ‘즉각 퇴진’ 요구를 비켜갔다. 국민은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언급을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12월 3일 전국적으로 200만 명 넘는 국민이 촛불집회에 참가해 결국 국회의 대통령 탄핵을 강제했다.

    헌법 제65조 2항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3항은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고 돼 있다.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헌재)에서 탄핵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직무에서 배제된다. 만약 헌재가 ‘박 대통령이 더는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며 탄핵안을 인용한다면 곧 대통령 궐위로 60일 내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헌법 제68조 1항에는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때에는 임기만료 70일 내지 40일 전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2항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박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2018년 2월 24일을 기준으로 70일 내지 40일 전 대통령선거(대선)를 치를 예정이었지만,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할 경우 헌재 결정에 따라 차기 대통령 선출 시점이 훨씬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대통령을 배출한 새누리당으로 옮아갔다. 9월 말까지 30% 이상 지지율로 정당 지지율 1위를 기록하던 새누리당은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 제기된 10월 말 이후 지지율이 반 토막, 심지어 3분의 1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9월 둘째 주 여론조사에서 34%를 기록한 새누리당은 최씨를 둘러싼 국정농단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후 실시한 11월 첫째 주 조사에서는 18%로 사실상 지지율이 반 토막 났다. 특히 11월 넷째 주에는 12% 지지율로 더불어민주당(민주당·34%), 국민의당(16%)에 이어 3위로 떨어졌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여당에 분노, 야당에 실망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는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대통령을 배출한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집권 여당은 평상시에는 당정 협의 등을 통해 여당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대통령이 국민적 신뢰를 잃으면 대통령과 연동돼 국민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현 국면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특기할 만한 사실은 여당 지지율 하락이 곧 야당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12월 2일부터 사흘간 수도권과 부산, 대구, 대전 등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수 국민은 새누리당뿐 아니라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에 대해서도 높은 신뢰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최순실 게이트 이후 촛불정국 등 현 상황에 대처하는 활동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국민의당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61.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민주당 역시 51.7%에 이르는 응답자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새누리당에 불신을 표한 응답자가 87.1%로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국민 절반 이상이 국민의당과 민주당 등 야당 역시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야당에 대한 이 같은 국민의 인식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도 정당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그래프 참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지지 정당 변화에 대한 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지지층 가운데 절반 이상인 53.3%가 ‘지지 정당 없음’으로 빠져나갔고, 여전히 새누리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32%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의 경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전의 지지자 가운데 72.2%가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18.2%는 ‘지지 정당 없음’으로 빠져나갔고, 국민의당은 31.5%가 ‘지지 정당 없음’으로 돌아섰다(표 참조). 즉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새누리당만 직격탄을 맞은 것이 아니다. 국민의당과 민주당 역시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조사를 주도한 정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야당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무능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신뢰도가 동반 하락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 나눈 전화통화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에서는 여당뿐 아니라 야당도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번 조사 결과에 담긴 의미는?

    “(최순실 게이트 등) 현 상황에 실망한 다수 국민이 여당 지지를 철회한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야권에게도 국민의 실망이 커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 국민은 현 상황에서 여야 양방향으로 모두 실망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 여당 지지율 하락이 야당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가 뭐라고 보나.

    “국민의당 지지율이 떨어진 것에서 그 이유를 유추해볼 수 있다. 대통령 즉각 하야가 촛불민심인데, 국민의당이 ‘탄핵안 발의보다 통과가 중요하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하면서 국민으로부터 멀어졌다. 야당이 국민의 요구에 선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촛불민심을 뒤따라가는 모습에 실망한 것이다.”

    ▼ 기성 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다수 국민이 무당층으로 남아 있는데, 민심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하나.

    “상황에 따라 민심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금 나타난 여론은 대통령과 여당을 향한 분노가 일차적이지만, 야당의 무능에 실망한 부분도 상당하다. (탄핵 이후)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때 지금 부동층으로 나와 있는 민심이 어느 정당, 누구를 향하느냐에 따라 (차기 대선)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은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22%), 이재명 성남시장(15.4%),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0.4%) 순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지지 이탈자(그 전까지 새누리당 지지자였지만 최순실 게이트 이후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 10명 가운데 4명꼴인 37.8%가 ‘지지 후보 없음’이라고 답했다. 반 총장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새누리당 지지 이탈자는 18.4%였다. 즉 전통적 여당 지지층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구체제 무너뜨리라는 준엄한 명령”

    최정묵 공공의창 간사는 “하야와 퇴진을 요구한 촛불민심의 1차 관심은 대통령 진퇴에 쏠려 있었다”며 “즉 촛불을 든 국민이 당면 과제로 인식한 것은 박 대통령이 더는 대통령 자리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에는 국민 여론이 잠시 조정기를 거쳐 포스트 박근혜로 누구를 세울 것이냐로 옮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국가 시스템이 여기저기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것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교훈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당분간 조정기를 거치겠지만, 결국 국민의 관심은 포스트 박근혜로 향할 개연성이 높다. 탄핵으로 생긴 의사결정 공백기에 민심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차기 대선주자에 대한 여론이 크게 변할 수 있다.”

    박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한 민심의 1차 고비는 넘었다. 아직 탄핵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포스트 박근혜를 노리는 여야 대선주자는 발 빠르게 대선 준비에 돌입할 태세다. 촛불에 힘입어 껍데기뿐인 낡은 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국정 공백을 메울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여권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촛불민심은 구체제를 철저히 무너뜨리라는 준엄한 명령과도 같다. 남김없이 다 부숴야 한다. 잘못된 관행, 시스템,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결국 거센 민심의 분노 앞에 철저히 순응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어설프게 무엇이라도 남기려 했다가는 다 타버릴 수 있다. 다 타고 남은 잿더미 위에서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대통령 탄핵은 여야의 정치적 유불리를 의미 없게 만든다”며 “지금까지 유리한 것이 앞으로도 유리하리라는 것은 기대와 희망일 뿐, 민심은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했다. 대통령 탄핵에 모인 촛불민심이 앞으로 어떤 태양을 떠오르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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