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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말기암 환자 대부 박창환 신부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영혼 편안히 보내드립니다”

  • 이남희/ 동아일보 여성동아 기자 irun@donga.com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영혼 편안히 보내드립니다”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영혼 편안히 보내드립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의 아파트 숲 사이에 2층짜리 벽돌집 하나가 숨어 있다. 얼핏 보면 평범한 가정집 같은 이곳은 말기암 환자를 보살피는 호스피스 시설인 ‘성모꽃마을’(www.flowermaul.com). 종교가 무엇이건, 보호자가 있건 없건, 병원에서 ‘치료 불가’ 판정을 받은 이들을 무료로 3개월 동안 돌봐주는 곳이다. 말기암 환자들이 고통 없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껏 700여명의 환자가 숨을 거둔 이 집에서는 음울한 기운보다 경건한 희망이 느껴진다.

성모꽃마을의 ‘촌장’ 박창환(43) 신부는 말기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의 대부다. 그는 호스피스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1990년대부터 호스피스 시설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2000년 성모꽃마을을 설립한 이후엔 줄곧 환자들을 위한 ‘5분 대기조’로 살아왔다.

그는 간호에서 놀라운 경지에 올랐다.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쯤은 기본이요, 발 마사지, 아로마 테러피, 기공사 자격증 등을 취득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방법을 부단히 연구해왔다. 신학대 재학 시절부터 배운 수지침으로 이웃의 병을 치료하고, 3년 전에는 간호조무사 자격증까지 땄다니 웬만한 의료인 뺨치는 경력이다.

“차라리 의사가 되지 그랬느냐”는 질문에 그는 소탈하게 답했다.

“신부가 되면 사람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고 보릿고개 넘길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집안이 4대째 가톨릭을 믿다 보니 제가 소신학교(신부가 되기 위해 진학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일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수지침을 배우는 등 각종 의학상식을 섭렵한 것은 순전히 재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부가 안 됐다면 의사가 됐을 거예요. 제가 이렇게 잡다한 의학 공부를 해온 것도 다 호스피스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모양입니다.”

박 신부가 호스피스 시설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1993년이다. 사제가 된 뒤 처음으로 충북 청원군 북이면 내수본당에 나갔을 때 자궁암 말기인 할머니를 돌봐드린 것이 인연이 됐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자식에게도 버림받은 할머니는 호적에 자식이 등재돼 있다는 이유로 무의탁 구호시설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통증을 호소하던 할머니는 “솜이불 한번 덮어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박 신부는 곧장 할머니에게 솜이불을 선물했고, 할머니는 그것을 하룻밤 덮고 이튿날 편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앙의 힘으로 성모꽃마을 운영 … 지금껏 700여명 떠나보내

“할머니를 보면서 어려운 형편 탓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말기암 환자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증을 줄이는 신체적 간호와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영적 간호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깨달음도 얻었지요. 호스피스 관련 법규가 없어서 정부 지원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일단 한 번에 2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호스피스 시설을 마련해보기로 했어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시설을 갖추는 데 꼬박 6년이 걸리더군요. 100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시설은 운영되기 어려웠을 거예요.”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영혼 편안히 보내드립니다”

위암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박창환 신부와 자원봉사자(오른쪽).

천신만고 끝에 탄생한 성모꽃마을에서 그는 수많은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을 지켜봤다. 보험금을 타서 자식의 빚을 갚기 위해 유방암 말기 선고를 받을 때까지 암을 키워온 어머니, 평생 아버지 노릇을 못해 미안하다며 마지막 순간 식구에게 화해를 청한 56세 췌장암 환자, 양쪽 겨드랑이에 달린 아기 머리만한 암덩어리에서 쉴 새 없이 피 섞인 진물이 흘러나와도 라면 국물 한 숟갈을 떠먹고 열쇠고리 1개를 선물 받고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던 19세 소녀….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성모꽃마을에서 못다 한 삶의 응어리를 풀고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폐에서 물을 빼는 작업을 거부하고 12시간 동안 죽음의 순간을 준비했던 한 40대 가장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는 매일 폐에서 물을 빼내야 연명할 수 있는 사람인데 ‘맑은 정신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결국 죽음을 택한 거지요.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아내와 두 자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서로에게 더 이상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말이죠.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한결같이 생을 깨끗하게 마감하며,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납니다. 해마다 6만4000여명이 암으로 사망하는데 그중 평온한 죽음을 맞는 사람은 5%에 불과하다니, 이분들은 행복한 소수에 속하지요.”

성모꽃마을에 온 말기암 환자들은 대부분 “이전보다 통증이 많이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박 신부는 그 이유에 대해 “환자의 육체적 아픔을 덜어줄 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고민도 해결해주려고 애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사지나 대체요법 등으로 환자의 아픔을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환자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의미 있었다’는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망이 남지 않도록 환자가 주위 사람들과 화해할 기회도 마련해줘야 해요. 일단 이곳에 오면 병원비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니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집니다.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는 환자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자녀의 일자리를 소개하거나 학비를 보조받는 방법을 알아봐주기도 합니다. 이렇듯 환자가 편히 떠날 수 있도록 육체적, 정신적, 영적, 사회적 도움을 줌으로써 진정한 호스피스의 임무가 완성되는 겁니다.”

성모꽃마을은 회원과 독지가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국가의 보조도, 환자에게서 입원비도 받지 않는다. 운영비는 박 신부와 자원봉사자들이 각탕기(脚湯器)와 산양산삼, 그리고 박 신부의 호스피스 사목일기를 모은 책 ‘이 목 좀 따줘!’를 팔아 보탠다. “운영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 신부는 “곤궁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도와주시더라”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신앙의 힘으로 버틴다지만 평생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터. 통상 암환자 가족은 간병과정에서 얻은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 때문에 소독약 냄새에도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온화한 표정의 박 신부에게서 지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사실 한 분이 돌아가시고 또 다른 환자가 들어올 때마다 중압감을 느낍니다. ‘이분을 어떻게 편히 보내드릴까’ 걱정이 되어서 말이죠. 이 일은 평생 끝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지요.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제대로 마감시켰다는 보람이 훨씬 큽니다.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이 땅에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구나’ 하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습니다.”



주간동아 2006.02.21 523호 (p68~69)

이남희/ 동아일보 여성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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