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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국립중앙박물관 가이드 북

미술관

  • 기획·취재 김민경 / 자료 정리 최정주 인하대 강사, 국립 모바일사업 어린이 팀장(유물 부문) 박미정 경희대 문화예술 경영학과 석사(박물관 부문)

미술관

  • 미술관은 둘로 나뉜다. 평면 회화와 칠공예품을 전시한 미술관1호은 2층에 있고, 자기와 불교 조각품이 있는 미술과2는 3층에 있다. 미술관1에서는 김홍도의 풍속도첩과 부리부리한 눈의 맹호도, 이암의 어미개와 강아지 등에 눈길이 간다. 또 공간이 없어 전시되지 못했던 9m 크기의 쾌불이 주는 압도적인 느낌을 잊지 못할 것이다. 미술관2에서는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를 감상한다. 세계적 걸작 반가사유상 앞에만 머물러 있다 와도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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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미수 허목이 쓴 척주동해비 원고본 조선, 미술1관 서예실, 보물 제592호

척주, 즉 강원도 삼척에 세워진 동해비의 원고본이다. 비석에는 동해비가 세워진 일화가 전해진다. 허목이 삼척 부사로 부임하던 때에 그 지역에 극심한 해일 피해가 있었다. 허목이 ‘동해송’이라는 시를 지어 비석을 세우자 바다가 잠잠해졌다고 한다. 영험한 비석의 글을 쓴 허목은 고전체를 응용해서 떨림이 있는 구불구불한 글자체를 완성했는데, 이를 그의 호를 따 ‘미수체’라고 한다. 당시에는 워낙 기이한 글자체라 비판을 받았으나, 지금은 조선시대의 개성 있는 글씨체로 평가되고 있다.

46. 소상팔경 시첩 조선, 미술1관 서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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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호남성에 위치한 동정호 주변의 소수와 상강이 맞닿은 지역은 빼어난 경치로 유명한데, 그곳 사계절의 풍광을 일컬어 소상팔경이라고 한다. 소상팔경은 많은 시인과 화가들이 시와 그림으로 다룰 만큼 인기가 있는 소재였다. 1442년에 만든 이 소상팔경 시첩은 그림과 짝을 이룬 감상 시를 모은 것이다. 성삼문·박팽년·김종서 등 당시 엘리트 문사 19인의 글씨를 확인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을 통해 지금은 전하지 않는 소상팔경 그림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47. 한석봉 증류여장 서첩 조선, 미술1관 서예실, 보물 제10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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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봉 한호가 남쪽으로 돌아가는 친구 류기에게 즉흥으로 써준 서첩이다. 유명한 일화대로, 한석봉은 어머니에게서 어둠 속에서도 고르게 떡을 썰듯이 아름다운 글씨를 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 당대의 명필이 되었다. 그의 글씨는 ‘왕희지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강하고 힘찬 개성을 담고 있다. 선조 임금은 한석봉의 글씨에 감화되어 그가 쓴 ‘천자문’을 전국의 서당에 보급할 정도였다. 서첩에는 중국 당나라 시인 왕발·한무제·이백 등이 지은 시 세 편이 담겨 있고, 송별 모임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도 적혀 있어 조선 중기 시문 풍류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48. 추사필 묵소거사자찬 조선, 미술1관 서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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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가 자신의 호를 설명한 글씨다. 김정희는 대표적인 호 ‘추사’ 외에도 묵소거사, 완당 등 약 200개의 호를 만들어 사용했다. 김정희가 말하는 묵소거사란, 침묵할 때 침묵하고 웃어야 할 때 웃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쉽고도 어려운 추사의 인생철학을 반영한 것이겠다. 추사의 글씨체는 가늘고 길면서 변화가 큰 필획인데 그 속에 날카로움이 깃들어 있다.

49. 강세황 초상 조선, 미술1관 회화실, 보물 제5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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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시대의 화원 화가 이명기가 그린 강세황의 초상화다. 초상화는 사진이 없던 시절에 그 인물을 가장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매체였다. 유교사회의 모범이 되었거나 큰 공을 세운 충신, 학자, 승려의 초상화는 영당이라는 곳에 모셔지기도 했다. 학자이자 서화가인 그림 속 강세황의 모습은 꼿꼿한 성품과 함께 얼굴의 검버섯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는 전신사조라고 해서 인물에 깃든 세월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도 내면의 품성을 전하고자 했던 우리나라 초상화 제작의 전통 방식을 나타낸다.

50. 풍속도첩 조선, 미술1관 회화실, 보물 제5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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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민의 생활 모습을 담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 중 하나다. 김홍도는 농, 공, 상을 가리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소재로 삼아 특유의 익살과 구수한 맛으로 엮어냈다. 스냅사진을 보는 듯한 그의 풍속화는 특징적인 한순간의 장면을 포착하여 투박하고 생동감 넘치는 필력과 배경을 생략한 대담한 구성 등 탁월한 연출의 묘를 보여준다. 보리밥에 탁주 한 사발을 들이켜는 농부들의 새참시간을 비롯해서 서당, 씨름, 무동, 기와 이기 등 당시의 시정 풍속이 가득히 열거되어 있다.

51. 강산무진도 조선, 미술1관 회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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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이인문이 그린 강산무진도다.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자연 풍광을 소재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장려하고도 세밀하게 표현했다. 조선 후기의 산수화는 작은 기왓장까지 세밀하고도 꼼꼼하게 표현하는 북종화 기법과 몇 번의 붓질만으로 정신과 의미를 나타내는 남종화 기법이 큰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인문은 그러한 산수화의 두 흐름을 한 작품 속에서 조화롭게 구현하여 조선시대 산수화의 격조와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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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청자 참외 모양 병 고려, 미술2관 도자공예실, 국보 제94호

고려 17대 임금인 인종의 무덤에서 출토된 청자 참외 모양 병이다. 고려청자의 기술과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이 청자는 무늬는 없지만 팽팽한 참외 모양의 몸체와 유려한 선이 돋보이는 목 부분, 참외 꽃을 연상시키는 입술 등에서 완벽한 비례와 단아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은은하게 발산하는 옥빛은 고려청자의 비색으로 여겨지던 것으로 동시대의 중국 제품을 능가하는 맑고 깊은 담녹색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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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청자 칠보무늬 향로 고려, 미술2관 도자공예실, 국보 제95호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청자의 명품이다. 고려청자에서는 드물게 음각, 양각, 투각, 퇴화, 상감, 첩화 등 다양한 청자기법이 절묘하게 집약되어 있다. 섬세한 장식이 많은 듯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이 잘 잡혀 안정감이 뛰어나다. 연꽃 모양으로 된 부분이 향을 태우는 부분이고, 뚜껑에 있는 칠보무늬 구멍을 통해 향이 빠져나가도록 해놓았다. 받침대에 장식된 앙증맞은 세 마리의 토끼는 고려 도공의 조형적인 감각과 숙련된 기교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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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청자 대나무 학무늬 매병 고려, 미술2관 도자공예실, 보물 제903호

주둥이가 작고 몸체가 팽팽한 형상의 청자 매병이다. 병의 몸체에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멋진 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그림 자체만으로도 손색없는 훌륭한 작품이다. 대나무와 매화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 듯하고,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멀리 하늘을 나는 학은 작게 표현되어 좁은 공간 속에서도 거리감이 잘 살아 있다. 오랜 관찰의 결과인 듯 모든 소재가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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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분청사기 상감인화 용무늬 항아리 조선, 미술2관 도자공예실, 국보 제259호

조선 전기에 새롭게 등장한 분청사기는 소박하고 아름다워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검소한 취향에 잘 맞았다. 특히 거친 듯하면서도 재치가 가득한 무늬가 많아서 서민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 항아리는 표면에 무늬를 파서 그 안에 백토(흰 흙)나 주토(붉은 흙)를 넣어 구워내는 상감기법으로 용무늬를 냈다. 윗부분에는 물결무늬와 원무늬가 새겨진 도장으로 촘촘하게 찍는 인화(印花) 기법으로 장식하여 활기찬 미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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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분청사기 박지철채 모란무늬 자라모양 병 조선, 미술2관 도자공예실, 국보 제260호

한쪽 끝의 주둥이와 납작한 몸체가 자라를 닮았다고 하여 자라병이라고 불리는 분청사기다. 주둥이에 끈을 매어 허리춤이나 말안장에 묶으면 휴대하기 편리해서 여행용 물병이나 술병으로 사용한 듯하다. 하얀색 모란꽃 무늬는 바탕에 백토를 바른 뒤 무늬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를 긁어낸 다음 검은색 철화 안료를 바탕에 덧칠해서 완성한 것이다. 백토 분장을 하는 분청사기의 특성을 이용한 독특한 기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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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밀양 장흥고’가 새겨진 분청사기 접시 조선, 미술2관 도자공예실

작은 국화꽃 무늬로 장식한 분청사기 접시다. 국화꽃 하나하나의 모양이 똑같은 것은 국화 무늬가 새겨진 도장으로 찍어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화기법이라고 하는데 자국이 난 자리에 백토로 메워 그 모양을 드러낸 것이다. 그릇 바닥에는 장흥고라는 글자가 상감되어 있다. 장흥고는 궁중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대어주거나 관리하던 관청 이름인데 이 그릇의 사용처를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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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백자 달항아리 조선, 미술2관 도자공예실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근 모양이라고 해서 달항아리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부르는 백자 항아리다. 은은한 색과 함께 덜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넉넉한 곡선이 감상 포인트다. 가운데를 자세히 보면 가느다란 선이 보이는데, 이는 그릇의 몸체가 너무 커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이어 붙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원형이 아니라 약간 기울어진 모양이지만 오히려 푸근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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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백자 매화 대나무 새무늬 항아리 조선, 미술2관 도자공예실, 국보 제170호

하얀 백자에 푸른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백자 항아리다. 둥그런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조선 전기의 청화백자 문양은 한 폭의 회화 작품을 보는 듯 자연스럽고 빼어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이는 푸른색을 내는 코발트 안료가 멀리 아라비아에서 수입해온 귀한 것이라 능숙한 솜씨의 화원화가들이 그림을 그렸던 까닭이다. 대나무, 매화, 새의 모습이 사실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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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백자 포도 원숭이 무늬 항아리 조선, 미술2관 도자공예실, 국보 제93호

흑갈색 무늬가 돋보이는 철화백자 항아리다. 철화백자는 산화철 안료로 무늬를 그린 것인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청화 안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17세기에 가장 유행했다. 항아리에는 포도 덩굴 사이를 잽싸게 뛰어넘는 원숭이가 그려져 재미를 더해준다. 원래 원숭이는 지혜를, 포도는 풍요로움을 의미하는데 조선시대 백자의 문양으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생동감 넘치는 붓자국, 세련된 공간감이 돋보이는 조선시대 철화 백자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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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풍악도첩 조선, 미술1관 회화실

조선 후기의 대화가 정선이 그린 금강산 풍경이다. 36세 되던 1711년에 백석공이라는 사람과 함께 금강산을 처음 여행하고 그 풍경을 담은 것이다. 이 풍악도첩에는 내금강·외금강·해금강 등 명승의 특징과 형세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당시에 유행했던 지도처럼 산봉우리마다 이름이 적혀 있다. 그러나 실제 경치를 관찰하고 그렸지만 자신의 머릿속에서 창의적으로 재구성하여 중심이 되는 것을 부각해놓았다. 이는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는 진경산수화라는 새로운 양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53. 유압도 조선, 미술1관 회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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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압도(좌), 맹호도

조선 말기의 선비화가 홍세섭이 그린 유압도다. 마치 현대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담박한 느낌의 그림이다. 맑고 옅은 색에 진하고 특이한 먹을 가미하여 명암과 질감이 느껴지도록 표현했다. 물 위에서 헤엄치는 오리 두 마리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파격적인 구도 또한 강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색다른 구도와 표현법은 당시 유입되고 있던 서양 회화의 영향으로 여겨지며, 조선 말기에 등장한 일련의 새로운 그림들을 이색화풍이라고 한다.

54. 맹호도 조선, 미술1관 회화실

조선 말기에 그려진 맹호도다. 예로부터 한반도에 호랑이가 많이 살았던 까닭인지 호랑이는 한국화의 소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심사정이나 김홍도 같은 대가들이 그린 맹호도에서부터 아마추어 화가들이 그린 익살스런 모습의 호랑이 민화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그려졌다. 이 맹호도는 바늘보다 가는 선으로 촘촘히 털을 그려넣는 등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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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미원 계회도 조선, 미술1관 회화실, 보물 제868호

미원은 사간원을 부르는 별칭으로, 사간원의 문인들이 친목을 다지기 위해 가진 모임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모임을 소재로 한 계회도이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자연의 풍광을 표현하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자연을 중요하게 여겼던 당시의 풍조가 반영된 것이다. 그림 위에는 성세창이 그림을 본 느낌을 써놓은 글이 있고, 아래에는 유인숙·이황 등 계회에 참석한 관리의 이름·관직·본관 등을 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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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문자도 조선, 미술1관 회화실

그림인지 글자인지 경계가 모호한 문자도다. 조선시대에는 좋은 뜻을 담은 한자를 그림처럼 그려서 늘 마음에 새기도록 했는데, 화려한 기교로 다듬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소망과 감정을 단순하고 소박하게 표현했다. 이 문자도는 유교적 윤리관에 따라 군자가 행해야 할 실천덕목을 표현한 것이다. 오른쪽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 형제간의 우애, 나라에 대한 충성, 친구 간의 믿음, 예절, 의리, 검소, 겸손의 뜻을 담은 효, 제, 충, 신, 예, 의, 염, 치를 쓰고 각 글자의 뜻과 관련된 상징물을 곁들여놓았다.

57. 곽분양의 즐거운 잔치 조선, 미술1관 회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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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현종 때 곽자의라는 장군이 마련한 성대한 잔치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곽자의는 안록산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높은 벼슬에 올라 많은 자손을 거느리며 평생토록 액운 한 번 없이 만복을 누렸던 인물이다. 이로 인해 팔자가 좋은 사람을 가리켜 ‘곽분양 팔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곽분양의 즐거운 잔치’는 곽자의와 같이 부귀영화와 오복을 기원하는 뜻으로 궁중에서 유행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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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어미개와 강아지조선, 미술1관 회화실

조선 후기의 화가 이암이 그린 동물화다. 조선시대에는 생활 주변의 살아 있는 생물을 통해 자연의 흥취를 느끼게 하는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새와 꽃을 다룬 화조화, 동물을 다룬 영모화 등이 그것인데 이러한 그림에는 인간의 삶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벽사와 길상의 의미가 담겨지기도 해서 더욱 큰 사랑을 받았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특히 잘 그렸던 이암은 젖을 먹기 위해 어미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강아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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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무신년진찬도 조선, 미술1관 회화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잔치를 벌이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이런 그림을 진찬도라고 하는데 대왕·왕대비·대왕대비의 생신이나, 왕위에 오른 해를 기념하여 제작되었다. ‘무신년진찬도’는 1848년에 순원 왕후가 예순 살이 된 것을 기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궁궐 안에는 신하들이 다 같이 모여 있지만 정작 주인공인 왕비의 의자는 비어 있다. 이는 신성하고 위엄을 지닌 왕비의 존재를 감히 그리지 못하고 의자로 표시만 해둔 것이다.



60. 신윤복 여속도첩 조선, 미술1관 회화실

혜원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다. 서민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다루었던 김홍도와는 달리 신윤복은 주로 기녀와 벼슬 없이 지내는 한량의 사랑을 소재로 하여 당시의 풍류와 사회상을 표현했다. 그는 한껏 멋을 부린 남녀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가늘고 부드러운 필선과 선명한 채색을 가하였고, 구성의 묘가 배인 배경에서 회화적 역량을 펼치고 있다. 남녀유별의 유교사회에서 노골적인 사랑을 다룬 신윤복의 풍속화는 조선시대의 또 다른 사회상을 전해준다.

61. 청룡도 조선, 미술1관 회화실 전시예정

정월 초에 궁궐이나 관청의 대문에 붙였던 것으로 여겨지는 궁중 장식화다. 십장생·모란·용 등은 평안과 번영, 장수를 상징하는 궁중 장식화의 주요한 소재였다. 특히 용은 귀신과 재앙을 막는 신통력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을 뿐 아니라 천자를 상징하기도 해 임금이 앉는 자리, 수레, 옷의 장식 문양으로 많이 쓰였다. 조선시대의 용 그림은 구름이나 물속을 배경으로 그려지거나 호랑이와 힘을 겨루는 장면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되었다. 그림 속의 청룡은 먹구름 사이로 몸을 틀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는 모습인데 활달하고 섬세한 필선과 아름다운 채색이 어우러져 힘찬 웅혼과 생명력이 전해지는 듯하다.

62. 감지금니 화엄경 그림 고려, 미술1관 불교회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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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을 경전이라고 한다. 경전을 정성스럽게 베낀 것을 사경이라고 하는데 사경을 만드는 일은 불교에서는 좋은 업을 쌓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경은 부처의 말씀을 수록하는 것이라 가장 좋은 재료인 금가루, 은가루를 써서 화려하게 꾸며졌다. 검푸른 종이 위의 금빛 글자와 그림은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 것으로 종교적 엄숙함과 만든 이의 깊은 신앙심이 전해진다. 이렇게 화려한 사경은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다.

63. 감로를 베풀어 아귀를 구해냄(감로도 甘露圖) 조선, 미술1관 불교회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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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도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공양하는 장면을 그린 불화다. 부처의 수제자 목련존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도에 빠져 먹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자 참회의 날에 부처님과 스님께 온갖 음식을 바쳐 어머니를 구제한다. 그 어머니는 부처가 주신 감로(甘露), 즉 달콤한 이슬을 마신 뒤 깨달음을 얻고 영원한 삶을 이어갔다. 불교 경전 속의 이 이야기는 조상을 숭배하는 효자상으로 여겨져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특히 많이 그려졌다.



64. 야외의식용 괘불 조선, 미술1관 불교회화실

야외에서 열린 불교 법회 의식에 걸렸던 거대한 불화다. 조선시대의 사찰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전쟁을 겪으면서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하기 위한 의식을 자주 열었다. 불상을 대신해서 예불의 대상으로 봉안된 이 괘불에는 인도의 영취산에서 부처가 처음으로 묘법연화경을 설법하는 영산회 장면이 그려져 있다. 영산회란 현실 세계를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 즉 부처님이 사시는 깨끗한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65. 사자도 조선, 미술1관 불교회화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먼저 저승의 왕들에게 불려간다고 믿는다. 저승사자는 왕들의 심부름꾼으로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한 일들을 적은 책을 저승의 왕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한다. 말에서 막 내린 저승사자는 무표정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사자 뒤의 말 또한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이 생동감이 넘쳐 보인다. 이와 같이 불화는 불교 경전의 어려운 내용을 좀더 쉽게 설명할 수 있어서 사람들에게 부처의 말씀을 전하는 좋은 교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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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시왕도 조선, 미술1관 불교회화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세계에 있는 열 명의 왕을 차례로 만나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이 일은 극락이나 지옥에 가기 전인 명부라는 곳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곳에 있는 열 명의 대왕을 그린 그림을 시왕도라고 한다. 시왕도의 윗부분에는 왕이 심판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아랫부분에는 끔찍한 지옥이 묘사된다. 그림 속의 대왕은 맨 처음 만나는 진광대왕으로 불효와 같은 큰 죄를 지은 사람을 칼산에 가두는 벌을 내린다. 시왕도는 경각심을 통해 중생이 현생에서 착하게 살라는 가르침을 주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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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반가사유상 삼국, 미술1관 불교조각실, 국보 제78호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의 반가사유상이다.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 가운데 가장 큰 이 상은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우리나라 불교 조각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살진 얼굴, 꿈틀거릴 것만 같은 오른손, 얇은 옷으로 인해 드러난 인체의 아름다움 등은 삼국시대 조각가의 빼어난 솜씨로 탄생되었다. 특히 일본 국보 제1호인 교토 고류지의 반가사유상은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과 매우 닮아 있는데, 녹나무를 짜맞추는 방식의 일본 조각상과 달리 붉은 소나무에 직접 조각한 방식으로 보아 한반도의 전래품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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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연가칠년’이 새겨진 부처(연가칠년명 금동 불 입상 延嘉七年銘 金銅 佛 立像) 고구려 539년, 미술1관 불교조각실, 국보 제119호

만들어진 때를 알 수 있는 우리나라 불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불꽃 무늬가 새겨진 커다란 광배의 뒷면에 47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불상 발원의 배경이 밝혀져 있다. 즉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에 동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539년에 1000개의 불상을 만들었고 이 불상은 스물아홉 번째라고 한다. 그런데 불상이 발견된 곳은 신라의 땅이었다. 이는 불교를 널리 알리겠다는 고구려 사람들의 불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69. 경주 구황동 삼층 석탑 출토 부처와 아미타불좌상 통일신라, 미술1관 불교조각실, 국보 제80호, 국보 제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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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사 터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순금제 불입상과 아미타불좌상이다. 1942년에 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사리함 뚜껑에 눌러 쓴 기록에 의하면, 692년에 효소왕이 아버지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탑을 만들고 그 안에 금동사리함을 넣었다고 하며, 706년에 아들인 성덕왕이 다시 탑을 열어 사리함에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넣었다고 한다. 왕실 후원으로 순금으로 만들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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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들은 두께가 1mm도 채 되지 않는 고도의 주조기술로 완성되었다.

70. 감산사 미륵보살입상, 아미타불입상 통일신라, 미술1관 불교조각실, 국보 제81호, 제82호

경주 감산사 터에 있던 미륵보살상과 아미타불상이다. 명문에 의하면 당시 최고의 행정기구인 집사성의 시랑 김지성이 719년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전 재산을 내놓아 감산사를 짓고 두 불상을 만들게 했다고 한다. 어머니를 위해 발원한 미륵보살상은 이전의 보살상에 비해 장식이 훨씬 화려하고 관능적인 모습인데, 이는 당대에 유행했던 인도의 굽타양식을 수용한 결과다. 이러한 사실적인 표현과 능숙한 석조기술은 50년 뒤 석굴암의 조성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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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춘궁동 출토 철불좌상 고려, 미술1관 불교조각실, 보물 제332호

철로 만든 우리나라 불상 중에서 가장 큰 상이다. 원래는 경기도 광주시 춘궁리 절터에 있던 불상인데 겉옷의 표현이나 손 모양 등 석굴암의 본존불과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부처의 손 모습은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편하게 손을 내려놓은 것 같지만 이 손 모양은 부처가 보리수 밑에 앉아 명상을 할 때 악마가 나타나 방해를 하자 땅에 있는 신을 불러내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했던 순간을 나타낸다. 이 손 모양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불상의 손은 불교의 사상을 형상으로 보여주는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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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감은사 동탑 집 모양 사리기 통일신라, 미술1관 불교조각실, 보물 제1359호

감은사는 신라를 통일한 문무왕이 마지막 유언으로 동해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는 호국정신을 기려 만든 절이다. 현재는 서탑과 동탑만이 남아 있는데 동탑에서 이 사리갖춤이 발견되었다. 사리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화장했을 때 몸에서 나온 구슬로, 불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예배 대상이다. 그래서 소중한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기들은 정성을 다해 아름답게 만들고 보호를 위해 여러 겹으로 제작되었다. 감은사 동탑 사리기는 사리를 넣은 수정병을 호리병에 넣고, 다시 사천왕이 지키는 사리 외함에 넣어 보관했는데 우리나라 사리기의 최대 걸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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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청동 은입사 물가풍경 무늬 정병 고려, 미술2관 금속공예실, 국보 제92호

절에서 부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쓰이는 의식구로, 맑은 물을 담는 병이다. 날씨가 더운 인도 승려들이 물병을 휴대하는 관습에서 유래되었다. 정병은 승려가 지니는 18가지의 필수품 중 하나가 되었고 불화에서 관세음보살이 지니는 용기로 그려진다. 겉에는 고려인의 자연관에 따라 흐드러진 버드나무와 물결 따라 노를 젓는 어부, 한가롭게 노니는 물오리들이 아주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이러한 무늬는 표면에 홈을 파고 은실을 박아넣은 상감기법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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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천흥사 범종 조선, 미술2관 금속공예실, 국보 제280호

현종 1년인 1010년에 천흥사에서 만든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범종이다. 범종은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또 의식을 진행할 때 쓰인다. 불교에서는 범종을 울리면 장엄하고 청명한 소리가 먼 지옥까지 닿아 참회의 마음을 갖게 한다고 여겼다. 천흥사 범종은 으뜸으로 꼽히는 신라의 범종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여의주를 문 용뉴, 비천상 등 새로운 고려의 감각을 발휘한 뛰어난 작품이다.

75. 문갑 조선, 미술1관 목칠공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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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나 문서를 정리하기 위한 가구다. 문구갑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줄여서 문갑이라고 한다. 문갑은 주로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우리 전통 한옥양식에 맞게 창틀 정도의 높이로 제작되었다. 사랑방과 안방에서 모두 사용했는데 주로 뒷마당으로 난 창 아래쪽에 놓았다.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어 자연미가 돋보이는 조선시대의 문갑은 문방구이나 문서를 보관하는 용도 외에도 그 위에 난, 수석 등을 늘어놓아 품격 높은 진열대 구실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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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사방탁자 조선, 미술1관 목칠공예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사방탁자는 전통 가구 중에서 높이가 높은 가구에 속한다. 책을 올려놓거나 장식품을 진열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보통 3단이나 4단으로 만들어 키는 크지만 사방이 네모나게 트여 있어서 시원한 느낌이 든다. 맨 아래층에는 문이나 서랍을 달아 중요한 물건을 보관했다. 기둥과 널판만으로 이루어진 모던한 조형미는 간결하고 소박한 멋을 추구했던 조선시대 선비의 감각과 잘 어울린다.



77. 나전대모 칠 국화 당초무늬 불자 고려, 미술1관 목칠공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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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들이 수행할 때 들고 다니던 불자(拂子)다. 불자(拂子)는 원래 벌레를 쫓는 데 쓰던 생활도구였는데 불교에서는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속 번뇌와 티끌을 떨어낸다는 상징적인 의미의 법구로 쓰였다. 보통 한쪽 끝에 드리개 장식을 달고 다른 쪽 끝에 갈고리 모양의 금속을 연결하여 소나 말의 꼬리털을 단다. 이 불자는 장식이 모두 떨어져나가고 대만 남은 상태이나 원래는 독특한 나전칠기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나전칠기 기법은 바다거북의 등껍데기를 얇게 갈아 투명하게 만든 뒤 뒷면에 색을 칠해 은은하게 배어나도록 만든 작은 조각을 붙이는 방법이다.



주간동아 2005.11.22 511호 (p41~72)

기획·취재 김민경 / 자료 정리 최정주 인하대 강사, 국립 모바일사업 어린이 팀장(유물 부문) 박미정 경희대 문화예술 경영학과 석사(박물관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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