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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진무관 가라테 사범 오쿠다 마사카츠

“링보다 한국 사랑이 더 뜨거운 ‘파이터’”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링보다 한국 사랑이 더 뜨거운 ‘파이터’”

“링보다 한국 사랑이 더 뜨거운  ‘파이터’”
11월5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K-1 히어로스 서울대회. 피날레를 장식한 파이널 매치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재일교포 유도 선수 추성훈(30)과 일본의 가라테 고수 오쿠다 마사카츠(奧田正勝·29)의 대결이었다.

추성훈은 1998년 한국에서 국가대표에 뽑히기도 했지만 국내 유도계의 텃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일본으로 귀화,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땄던 비운의 주인공. 격투기 선수로 변신한 그에게 이날 경기는 한국 무대 데뷔전이었다. ‘한국 대 세계’의 구도로 펼쳐진 대회에서 ‘한국’으로 출전한 추성훈은 도복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함께 달고 등장해 자신의 복잡한 내력을 보여주었다.

여성 팬들 “오쿠다, 진정한 한국인은 바로 당신”

이런 상황에서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이 추성훈을 응원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관중석 한가운데에 앉은 100여명의 사람들이 우리의 ‘적수’라 할 수 있는 일본인 오쿠다 마사카츠를 응원하는 것이다. 혼신을 담은 이들의 목소리는 추성훈을 응원하는 대다수 관중의 환성을 압도할 정도였다. 일본에서 원정 응원을 온 것인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었다. 일순 관중석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경기는 일방적으로 추성훈이 이끌어갔다. 1라운드 중반 추성훈은 강력한 허리 힘을 이용해 오쿠다를 그대로 들어 캔버스에 메친 뒤 파운딩 펀치(내리 꽂는 주먹)를 퍼부은 끝에 TKO 승을 거뒀다.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오쿠다를 응원하던 관중석에선 여전히 ‘오쿠다 파이팅!’이란 소리가 들려왔고, 몇몇 여성 팬들은 “오쿠다, 진정한 한국인은 바로 당신”이라고 외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오쿠다 마사카츠. 한국엔 다소 생소한 진무관(眞武館) 가라테를 주력 무술로 하는 선수로 1996~2002년 전(全)일본 격투기선수권 대회 7연속 우승, 1998~2000년과 2004년 ‘무인배 격투기선수권 대회’ 우승, 2001년 4월 타이탄 파이트 우승, 2003년 7월 판크라스 출전 네어블러드 토너먼트 준우승, 2003년 12월 네오파이트 미들급 토너먼트 준우승을 차지한 실력자다. 하지만 그가 남다른 환호성을 받은 이유는 이런 화려한 전적도 전적이지만 바로 한국 땅에서 진무관 가라테 보급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그는 2003년 서울 잠실에 진무관 공수(空手, 일본어로 가라테) 도장을 개관했고 지난해에는 강남 대치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현재까지 도장을 거쳐간 수련생만 260여명. K-1 히어로스 서울대회에서 만난 수련생들은 “오쿠다 사범이 화내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한국을 정말 사랑하고,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더 많은 한국인에게 자신이 연마한 가라테를 가르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링보다 한국 사랑이 더 뜨거운  ‘파이터’”

K-1 히어로스 서울대회에서 재일교포 유도 선수 추성훈과 대결을 벌인 오쿠다 마사카츠(왼쪽). 추 선수 어깨에 새겨진 태극기와 오쿠다 선수의 허리띠에 새겨진 태극기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대회가 끝난 뒤 나흘 후인 10월9일 오후 오쿠다 사범이 운영하고 있는 도장을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진무관 가라테 도장이다. 도장 안으로 들어가자 오쿠다 사범이 무도인답게 어깨를 일자로 펴고 허리를 직각으로 굽힌 채 인사를 건넸다. 무대에서는 체구가 작아 보였는데, 실제로는 어깨가 무척 넓고 온몸에 근육이 탄탄하게 붙어 있었다.

작은 얼굴, 약간 처진 눈매에 치아를 다 드러내고 웃는 선량한 미소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왜 오쿠다 사범에게 여성 팬이 많은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경기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눈 밑과 양 뺨에 푸르스름하면서 약간 보랏빛이 도는 멍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는 “이 정도는 맞은 것도 아니다. 별로 아프지 않다”며 배시시 웃었다. 4년 가까이 한국에서 지낸 오쿠다의 한국어 실력은 인터뷰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처음에 제대로 펀치를 한 방 날렸는데, 추성훈 선수가 워낙 강하니까 잘 막았어요. 그러자 머릿속이 복잡해졌어요. 이후론 계속 꼬이게 됐죠. 물론 KO패를 당했지만 그래도 강한 선수와 맞붙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저로서는 무척 영광입니다.”

K-1 히어로스 서울대회에서 오쿠다 사범과 추성훈 선수를 대결하게 한 것을 보면 주최사의 ‘쇼 비즈니스’ 마인드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교포(물론 현재는 귀화했지만)와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의 대결. 하지만 오쿠다는 솔직히 ‘국적’이라는 부분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훌륭한 대회에서 훌륭한 선수랑 맞붙은 게 좋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1976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무척 조용한 소년이었다고 한다. 골목대장은커녕 누구 한번 때려본 적이 없었다는 것. 중학교 때 일본에 격투기 열풍이 불어, 그 역시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고작 방송을 통해 경기를 보거나 관련 잡지들을 사서 보는 정도였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된 뒤 우연한 기회에 진무관 가라테 도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진무관 가라테를 시작했다고 해서 저도 별 생각 없이 따라 했어요. 링 위에서 타격 위주로 일대일로 겨루고 곧바로 결과가 나오는 게 저랑 잘 맞았어요. 사람들은 유도도 많이 했지만 저는 가라테가 더 멋져 보였죠. 어렸을 때부터 운동과는 무관한 ‘타고난 몸치’였는데, 이상하게도 링 위에서는 제 스스로가 무척 강해졌어요.”

진무관 가라테를 배운 지 3개월 만에 그는 첫 경기에 나섰다. 진무관 가라테 신인왕전이었는데, 첫 출전에 결승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KO패, 그것도 상대방의 ‘하이킥’을 맞고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경기 전에는 너무 떨려서 결과야 어떻든 경기가 빨리 끝났으면 했지만, 기절한 뒤에는 오히려 달라졌다. 무대에 오르고 싶었고, 싸우면 이기고 싶었다. 그의 필살기는 로킥, 하단차기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링보다 한국 사랑이 더 뜨거운  ‘파이터’”

진무관 가라테 도장의 수련생들과 함께한 모습.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영규 한국본부장, 맨 오른쪽이 우리나라 종합격투기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최영 선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업을 이어 조경사로 일을 했다. 대다수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그렇듯 운동만 하면서 생활할 수는 없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3~4시간씩 운동을 했다. 그러고는 기회만 있으면 경기에 나갔다.

뛰어난 실력 그러나 차별 설움 … 필살기는 로킥

그렇게 일과 운동을 병행하던 중 회사에서 한국인 동료를 알게 됐고 무척 친해졌다. 당시 한국과 일본이 2002 월드컵을 공동으로 준비할 때라 왠지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무척 크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무작정 짐을 싸 2002년 2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냥 한국에 가고 싶었어요. 한국어도 공부하고, 한국문화도 배우고 싶었죠. 여기에서 종합격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당시엔 약간의 슬럼프도 겪고 있었거든요. 한국에 와서는 연세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학비를 벌기 위해 조경회사에서 일도 했어요. 그렇지만 운동에 대한 본능은 억누를 수가 없었어요. 운동할 곳을 찾던 중 아마추어 격투기 동호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거기서 그는 현재 도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이영규(29) 씨를 만나게 됐다. 평소 진무관 가라테에 관심이 많았던 이 씨는 오쿠다에게 제대로 가라테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 씨 외에도 동호회에는 가라테에 무에타이와 킥복싱 기술, 유술 및 레슬링 기술까지 접목시킨 종합격투기인 진무관 가라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오쿠다는 그간 감춰져 있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무도인에게는 스스로의 수련도 중요하지만 배움을 전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진무관 가라테를, 그것도 한국인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어요. 그래서 수련할 만한 작은 장소라도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2003년 7월 10평 남짓한 지하 방에 무작정 도장을 열었어요.”

도장을 여는 덴 현재 진무관 한국본부장인 이영규 씨의 도움이 컸다. 외국인이라 사업자등록을 할 수가 없어, 이 씨의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했다. 도장이 생기자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운동에 열중했다. 물론 체류비와 학비, 그리고 이젠 도장 운영비까지 마련하기 위해서는 근무하던 조경회사를 계속 다녀야 했지만, 운동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했다. 이후론 한국에서 열리는 종합격투기 경기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텃세도 심하게 당했다. 링 위에 오르면 관중의 ‘우~’ 세례는 기본이었다. 판정 시비도 엄청났다. 판정으로 가면 거의 ‘패’가 확정적이었다. 경기 중에도 오쿠다가 유리하면 ‘컷’이 들어왔고, 불리하면 그 흐름이 계속되게 했다. 상대방의 ‘반일’ 감정도 타격의 강도를 부쩍 높였다.

그러던 중 2003년 12월 케이블 스포츠 채널에서 방영을 할 정도로 제법 큰 한국의 격투기 대회인 ‘네오 파이트’에 출전했다.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또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영규 씨는 “경기를 보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분노했을 정도로 노골적인 편파 판정이었다. 한국인이 꼭 우승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일본의 시사잡지에 ‘오쿠다 사건’이라고 소개됐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오쿠다의 인지도를 높이는 사건이 됐다. 도장을 찾는 수련생들도 늘었고, 오쿠다의 뛰어난 실력과 따뜻한 성품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이후로 오쿠다의 경기에서는 늘 ‘오쿠다 파이팅’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직·간접적인 차별을 받고 있는데도 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일까. 오쿠다는 “정이 넘치는 한국이 너무 좋기 때문”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일본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안 써요. 한국에서는 엄마와 아이 사이에서도 ‘사랑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는 일본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죠. 그저 ‘좋아’라는 말만 쓰는데, 솔직히 이 말도 별로 안 써요.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그래요.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잖아요. 정이 넘치고 밝고 명랑해요. 일본처럼 개인적이지도 않고 또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이런 삶이 저와 잘 맞는 것 같아요.”(웃음)

“더 많은 제자 양성 진무관 10개 내는 게 목표”

그는 수련을 하는 데에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확 나타난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수련생들이 도장에 오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자기 연습만 하고 돌아간다. 하지만 한국은 운동이 끝난 뒤 서로 부족한 부분에 대해 교정해주고, 밥을 같이 먹으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는 “나는 정이 많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며 “이런 한국인들의 인간적인 측면이 나를 한국 땅에 머물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또 오쿠다는 지난달 조경회사도 그만뒀다. 이젠 한국에서 진무관 가라테 보급에만 힘쓰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에 진무관 도장을 10개 정도 내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제자들도 키우고 싶어요. 또 지금 프로 선수로 뛰는 사람이 저를 포함해 스피릿 MC 인터리그 챔피언인 최영 선수 등 4명뿐인데, 앞으로 K-1이나 프라이드FC 등에 내보낼 수 있는 훌륭한 선수들을 키워내고 싶습니다. 또 한국에서 우리 도장이 주최하는 대회를 만들어 한국 선수뿐 아니라 일본 및 세계 선수들을 참가하게 하고 싶고요. 물론 선수로서도 더 많은 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과를 내도록 노력할 겁니다. 사실 이젠 일본보다도 한국에 팬이 더 많아요.”(웃음)

오쿠다는 미혼으로 현재 여자친구도 없다.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건 어떠냐”고 묻자 “매우 좋다”고 했다. 이유는 ‘한국에서 평생 살 것’이기 때문이다. K-1 히어로스 서울대회에서 “오쿠다, 당신이 진정한 한국인”이라고 외쳤던 팬들의 말이 무슨 뜻이 알 것 같았다.





주간동아 2005.11.22 511호 (p68~70)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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