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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강자와 빈자의 ‘부산 APEC’

외교 빅 이벤트 … 부산, 가슴이 뛴다

12일부터 8일간 亞·太 21개국 협력과 우호의 장 … 강국과 빈국, 신자유주의 회담장 밖 ‘충돌’

  • 부산=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 부산=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외교 빅 이벤트 … 부산, 가슴이 뛴다

  • 11월12일 APEC이 8일간의 막을 올렸다. 정상회의는 18, 19일 열린다. APEC은 부산이 1876년 강화도조약에 따라 항구를 개방한 뒤 열리는 가장 큰 행사. 21개 회원국 정상과 정부 대표, 언론인 6000여명이 모여드는데, 미국·일본·중국·러시아 정상이 모두 모인 단군 이래 최대의 외교 이벤트이기도 하다.
외교 빅 이벤트 … 부산,  가슴이 뛴다

누리마루 APEC 하우스.

해운대의 밤이 눈부시다. 천혜의 절경과 광안대교의 야경, 그리고 마천루. 약혼자의 허리를 잡은 김계웅(29·부산 동래구 사직동) 씨는 나고 자란 부산을 자랑스러워했다.

“뉴욕이나 시드니도 다 항구 아닙니꺼. 부산도 곧 서울 못지않은 도시가 될 낍니더.”

최고령 자원봉사자 이원호(77·C호텔 숙소안내 담당) 씨는 온종일 호텔 계단을 오르내렸는데도 피곤하지 않은 눈치다.

“교육이 호되더라고. 부산에 내로라하는 국가원수들이 온다는데, 더 늙기 전에 이 한 몸 바치는 게 마땅치 않겠소.”

APEC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허남식 부산시장도 마찬가지다.



“부산이 우뚝 설 일대 기회를 맞이했다.”(허 시장)

약혼반지를 낀 커플은 동백섬 쪽으로 향했다. “누리마루 구경 가려고요.” 커플은 곧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누리마루의 꿈

동백섬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경제지도자회의(Economic leaders’ meeting·이하 정상회의)가 마무리될 때까지 민간의 출입이 통제된다.

동백섬엔 부산시가 2차 정상회의장으로 세운 누리마루 APEC 하우스가 터를 잡았다. 세상을 뜻하는 누리와 정상을 뜻하는 마루에서 이름을 따왔단다.

APEC 하우스 내부의 천장은 석굴암의 돔을 떠올리게 한다. 회의실의 격자 문살과 실크로 마무리된 벽면이 고즈넉하다.

대기실의 훈민정음과 십이장생도는 전통을 살아 숨쉬게 한다. 오륙도와 광안대교를 품에 끌어안은 테라스의 경관은 숨이 탁 트인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묵기로 되어 있는 A호텔의 풍광 또한 부산이 국제도시로 뛰어오르고 있음을 웅변했다.

강국과 빈국

부시 대통령이 묵기로 한 A호텔. 취재진이 카메라를 꺼내 들자 로비에 진을 친 정보요원들이 기자들을 노려본다. 금세 한 요원이 달려오더니 “호텔 내부 구조를 알릴 수 있는 사진은 찍으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APEC 정상회의가 다가오면서 각국 정상들이 묵을 부산의 호텔들은 이중삼중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정상들은 해운대구의 파라다이스·그랜드·조선비치·메리어트 호텔과 부산진구의 롯데호텔, 동래구의 호텔 농심 등에서 잠을 잔다.

외교 빅 이벤트 … 부산,  가슴이 뛴다
누가 어느 호텔에 투숙할지는 특급비밀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묵을 숙소는 금기 수준이다. 한 관계자는 “정보가 새나갈 경우 부시 대통령이 부산의 미군 부대나 부산 앞바다의 항공모함에서 잠을 잘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정상들의 숙소는 힘의 논리에 따라 배정됐다. 정상들 대부분은 해운대구의 특급호텔을 원했으나, 일부 정상들은 자국의 힘이 작아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른 정상과 호텔의 같은 층에서 마주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강국의 정상들은 부산에서도 내로라하는 호텔에서 잔다. 힘이 센 정상은 호텔을 통째로 빌려 회의를 치른다. 약한 나라의 정상들은 먼 곳에서 승용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역대 한국 정상들도 호텔 배정에서 ‘VVIP’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글로벌스탠더드

“빈부 격차를 더욱 늘리겠다는 행사 아닌가. 신자유주의를 전파하는 가진 자의 축제다.”(현정길 APEC 반대 부산시민행동 집행위원장)

노점상을 하는 백낙길(53·부산 서구 서대신동) 씨는 거리에서 담배를 빌리고 있었다. 취재진의 담배 3개비를 얻어간 그는 “APEC이니 뭐니 해서 쓸데없이 돈 쓰는 것보다는 서민들 잘살게 해주는 게 먼저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어쩌랴. 미국의 기준은 글로벌스탠더드가 되었고, 세계는 돈을 찾아 질주하고 있다. APEC의 목표인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APEC의 꿈은 동아시아와 태평양 경제권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게다가 APEC은 한국이 참여한 유일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역경제협력체인 동시에 APEC 국가들은 한국 총 교역의 70.4%와 대(對)한국 투자 건수의 74.1%를 차지한다. 주변 4대 강국 정상을 APEC이라는 울타리에서 아우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APEC의 목표는 한국의 국익에도 상당 부분 합치된다. 한국은 호주와 함께 1989년 APEC 창설을 주도하기도 했다.

“APEC이 추구하는 가치가 절대선은 아니더라도 개방과 자유화는 피할 수 없다.”(정부 고위관계자)

동상이몽(同床異夢)

APEC은 회원국들의 국익을 쟁취하기 위해 모인 전장이다. APEC은 89년 12개국 간 각료회의로 출범해 현재는 21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80년대 후반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범세계주의(globalism)에 대응해 지역주의(regionalism)가 힘을 얻은 가운데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협력을 확대키 위해 꾸린 게 APE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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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89년 APEC 태동 때 끼어든 것은 동아시아의 결속 방지를 막기 위한 측면도 적지 않다. 미국은 92년까지는 아시아 경제협력체의 창설을 막기 위한 소극적인 개입 정책을 구사했다. 그러나 93년 당시 빌 클리턴 대통령이 ‘신태평양 공동체’ 구상을 발표하면서 APEC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다. 93년부터 정상회의가 열린 까닭이다.

APEC은 일본의 이익에도 합치한다. 한국과 중국, 아세안(ASEAN) 국가들에 대한 시장 접근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APEC이 경제 이슈를 논의하는 틀이 되는 것에는 의견을 같이하나, 비경제 이슈를 다루는 것에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아세안 국가들은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협력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가 거세다.

축제와 잔치

APEC 정상회의는 첫날 외교통상 문제를, 이튿날 정치안보 문제를 다룬다. 정상들이 채택할 예정인 선언문은 ‘보고르 선언의 목표 달성을 위한 부산 로드맵(Busan Roadmap to Bogor’s goal)’. 보고르 선언은 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열린 APEC 때 채택됐는데, 선진국은 2010년, 개발도상국은 2020년 무역·투자 자유화를 선언하는 것이다. 한국은 개발도상국 지위다.



정상회의가 가장 주목받고 있으나 APEC의 의제들은 고위관리회의(CSOM·Concluding SOM) 각종 대책반 및 위원회, 합동각료회의 등에서 깊이 있게 논의된다.

APEC 기업인자문위원회인 ABAC(APEC Business Advisory Council)와 유수의 CEO들이 모인 CEO 서밋도 중요한 행사다. 특히 CEO 서밋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대표 기업인들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역내 최대 경제인 포럼이다. APEC은 화려한 외교 축제일 뿐 아니라 내실 있는 경제 잔치인 것이다.

15, 16일 꾸려지는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APEC Ministerial Meeting·AMM)는 93년 정상회의가 시작되기 이전까지의 APEC의 모습이다.

4강 정상과의 친분은…

APEC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의 정상이 모두 참가하는, 한국으로선 더없이 중요한 외교 이벤트다. 특히 APEC은 지도자들 간의 인간관계 형성을 중요시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APEC을 계기로 냉전 체제를 얼마간 부숴보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특히 APEC 기간 중 한미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북핵 6자회담과 관련한 APEC 회의 계획은 없으나 어떤 식으로든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당초 김정일 국방위원장 혹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최고위층을 초청하려 했다.

또 신사참배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일본과의 얼어붙은 관계를 녹이는 데도 APEC 기간 중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이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한중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한국 방문에 앞서 북한을 방문, 선북한 후한국 기조를 드러내면서 북한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 터다. 김치전쟁, 동북공정 등 중국과는 껄끄러운 의제가 적지 않다.

이밖에 이번 APEC에선 조류 인플루엔자(AI) 위협과 대(對)테러, 에너지, 안보, 반부패 등의 이슈가 논의될 전망이다.



어쨌든 부산에게 APEC은 허 시장의 설명처럼 전환점이요, 일대 기회다. APEC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는 2000년 11월 브루나이 각료회의 때 결정됐다.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순번제로 이어지는 터라 경쟁이 거세지는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한국의 어느 곳에서 정상회의를 여는지였다. 유치 도시 결정과정에 참여한 한 인사는 “부산을 외국 정상들에게 보여준다는 게 창피스러웠다. 난개발된 도시 경관이 특히 문제였다. 그러나 경호 의전 등 다른 측면에서 제주보다 부산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1년 새 부산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유치가 확정된 뒤 부산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국비를 내놓지 못하겠다는 정부를 계속 졸라 541억원을 당겨왔고, 부산의 면모를 일신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가 부산 대신 다른 곳을 선택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했을 만큼 부산시의 행정력은 뛰어났다.

“일대의 기회를 어설프게 다룰 수 없었다. 부산은 APEC을 계기로 높이 날 것이다.”(이경훈 부산시 APEC 준비단장·행정학 박사)

부산은 나랏돈과 시비로 동백공원, APEC나루공원, UN평화공원도 새로 단장했다. 평소 시 예산으로 추진하기는 곤란한 사업, 시민들의 편의시설을 APEC을 빌미로 챙긴 것이다. 부산시가 APEC을 통해 얻는 부가가치와 홍보 효과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주간동아 2005.11.22 511호 (p14~19)

부산=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 부산=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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