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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격투기 신화 무술 연기자 이선도씨

“리얼 액션 영화 고수 되련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리얼 액션 영화 고수 되련다”

“리얼 액션 영화 고수 되련다”
‘불멸의 이순신’이란 역사 드라마가 있었다.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의 전승 역사를 그린 드라마로 높은 시청률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해석을 두고 많은 논쟁을 낳았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불화살에 맞거나 바다에 추락하는 등 위험한 장면이 유난히 많았던 드라마로 기억한다. 추운 날씨에 불화살을 맞고 바다에 떨어져 허우적거린 이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불멸의 이순신’은 와이어 연기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합성작업으로 전투 신을 거의 찍지 않았다. 당연히 스턴트맨과 무술 연기자들의 고생이 심했다. 웬만큼 내공이 쌓인 스턴트맨이나 무술 연기자들도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이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시청자들은 이들을 터지는 폭탄과 한 덩어리로 기억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드라마서 고난도 스턴트 연기

그 찰나의 위험 속에 무술 연기자 이선도(39) 씨도 포함됐다. 올 한 해 그는 ‘불멸의 이순신’과 함께 살았건만, 그를 알아본 사람은 거의 없다. 가슴에 박힌 불화살을 부여잡고 바다로 떨어진 일본 수군이 그였으며, 조총을 맞고 10m 높이의 성곽 위에서 추락한 조선 병사도 바로 그였다. 무술 유단자인 그에겐 늘 고난도의 스턴트만 맡겨졌다.

무술 연기자 이선도 씨는 늘 ‘깡패 1’ ‘조폭 2’ ‘행인 3’을 전전한다. 영화 ‘신라의 달밤’에선 주인공 차승원에게 멋지게 맞고 넘어진 조폭이었고, ‘주유소 습격사건’ 때는 철가방을 들고 이성재에게 마구 얻어맞은 ‘짱께 배달부’였다. ‘장길산’에선 눈 덮인 산에서 얼어 죽을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제법 긴 대사와 무술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장길산’을 가장 고생한 드라마이자, 가장 사랑하는 드라마로 기억하게 되었다.



“리얼 액션 영화 고수 되련다”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 현장.

11년 동안 그는 스턴트맨으로, 무술 연기자로, 대역배우로, 또 단역배우로 살아왔다. 그렇다고 그의 꿈마저 단역을 지향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무술 연기자가 되고, 또 무술감독이 되겠다는 것, 그래서 “나만의 액션을 보여줄 수 있는, 대역과 가짜 액션이 없는, 태국 영화 ‘옹박’과 같은 진정한 액션 무술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목표였다.

영화 ‘옹박’에서 주인공 토니 자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까지 17년 동안 무에타이를 연마했고, 5년 동안 세트장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그렇다면 이선도 씨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그에게는 토니 자보다 더한 영광과 아픔의 세월이 있었다. 그와 토니 자와는 까무잡잡한 생김새 말고도 비슷한 점이 많다. 리얼 액션 무비, 즉 진짜 무술영화를 만들기 위해 무술 고수의 자리를 버렸다는 점이다.

“리얼 액션 영화 고수 되련다”

1992년 홍콩에서 열린 세계 킥복싱대회에서 챔피언으로 등극한 이선도 씨.

그렇다. 이 씨는 1992년과 93년 세계 킥복싱계를 호령하던 챔피언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에 킥복싱이 있기나 했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겠지만,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는 청룽(成龍), 훙진바오(洪金寶)의 영향을 받아 우슈(쿵후)와 킥복싱이 성황을 누렸다. 이 씨는 1982년에 우슈를 시작해 스무 살 때인 86년 국내 킥복싱계를 평정했다. 체급별 신인왕에서 최우수상까지가 모두 그의 차지였다. 88년 군에 들어간 그는 여덟 번이나 군 태권도 대회를 휩쓸었다. 우슈와 킥복싱·태권도계를 모두 평정한 것.

한때 세계 킥복싱 평정 … ‘토니 자’ 같은 명성 꿈꿔

91년 제대한 그는 곧바로 킥복싱 한국챔피언전 자리를 탈환하고 세계 최강이었던 일본 챔피언과 맞붙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벌어진 이 경기에서 그는 니킥(무릎치기) 한 방으로 일본 챔피언을 링 밖으로 나가떨어지게 했다. 붕대도 없어 현수막을 찢어 손에 감고 한 경기였다.

“리얼 액션 영화 고수 되련다”
92년 그는 홍콩에서 열린 세계킥복싱대회에 참가해 차례로 일본, 뉴질랜드, 홍콩, 태국, 네덜란드, 마카오, 러시아 선수들을 물리치고 세계 킥복싱 챔피언에 등극했다. 세계에 한국 격투기의 존재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 세계 최고였던 일본 킥복싱계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은 한 해에도 몇 차례씩 그를 불러 타이틀매치를 벌였다. 결과는 일본의 대패. 일본의 1, 2, 3위가 모두 그의 발과 주먹 앞에 낙엽처럼 쓰러져갔다. 그에게 판정승은 있을 수 없었다. 오직 KO만 있을 뿐. 이렇듯 세계를 포효하던 그는 93년 겨울 마카오에서 벌어진 세계킥복싱대회에서 또 한번 우승 트로피를 안은 뒤 돌연 킥복싱계를 떠나버렸다.

“더는 나에게 대적이 되는 사람이 없었고, 세계협회에서도 재미가 없다며 제가 킥복싱계를 떠나기를 원하는 눈치였지요.”

1994년 초 킥복싱계를 은퇴한 이 씨는 무술 연기자 공채를 통해 액션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경찰청 사람들’ ‘사건 25시’ ‘명성왕후’ ‘무인시대’ ‘신라의 달밤’ ‘주유소 습격사건’ ‘장길산’ 등등 무수히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의 무술은 빛났지만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세계를 호령하던 그의 격투기 실력은 영화와 드라마의 한 장면 속에 묻혀버렸다.

“23년 동안 우슈·태권도·킥복싱을 연마했고, 11년 동안 무술 연기자로 일했으니 이제 제 영화를 만들어야죠. 고수들만을 모아 진정한 액션 영화를 만들어보는 게 제 꿈입니다. 먼저 무술감독이 되려고 마음먹은 만큼 사람들부터 모아야겠죠.”

이종격투기 K1의 최홍만 선수를 보고 “귀엽다”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이 씨. 그는 과연 ‘옹박’ 같은 진정한 무술영화를 만드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무술로서는 단역에 그쳤지만 무술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 그는 화려히 등극할 수 있다. 90년대 초반 세계 킥복싱계를 평정했다는 명성과 함께.

사라진 무림의 고수 이선도는 언제 영화를 몰고 등장할 것인가.



주간동아 2005.11.08 509호 (p92~93)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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