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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과 함께하는 파리 여행③

‘고전과 현대’ 마레 지구 두 얼굴

  • 류혜숙/ 건축전문 자유기고가 archigoom@naver.com

‘고전과 현대’ 마레 지구 두 얼굴

‘고전과 현대’ 마레 지구 두 얼굴

파리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보주 광장.

하수도가 없던 중세 시절, 사람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가르디로(물 조심)!’라고 세 번 외친 뒤 길바닥으로 배설물을 내던지는 풍속이 있었다. 그 후 19세기에 대대적으로 하수도 설치 작업이 시행되었으나, 설치 대상에서 제외된 마레 구역은 오랫동안 오물과 악취의 동네라는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늪’이라는 뜻을 가진 마레는 원래 센강의 지류가 만들어낸 습지대였다. 중세 후반부터 근세에 걸쳐 귀족사회의 중심으로 번영했으나 점차 쇠퇴하여 결국 파리에서 가장 비위생적이고 노화한 지역이 되었다. 악취와 오물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20세기 중반, 마레 지구의 비위생적인 건물을 철거한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그것이 점차 현실화되자 역사적 도시의 환경 파괴를 걱정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리 시민들이 선택한 대안은 전면 재개발이 아닌 보전과 활용이었다.

협회가 설립되고 시민들의 주도 아래 ‘마레 지구 재발견’ 축제가 조직되었으며, 보전에 대한 세밀하고 엄격한 법이 제정되었다. 시내 중심가 금싸라기 땅에 높이가 25m를 넘는 건물은 절대 지을 수 없으며, 인접한 건축물과의 연속성을 위해 건물 정면의 높이는 12m에서 20m로 해야 하는 것은 법 조항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17세기형 외관에 화려한 인테리어 ‘조화’

‘고전과 현대’ 마레 지구 두 얼굴

쉴리 저택.

지금의 마레는 한마디로 프랑스 문화행정의 중심 지역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이루어진 이곳은 대혁명 이전 17세기 파리 최고의 상류층 주거 지역으로 조성되었던 건축과 도시화 과정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대부분 박물관이나 미술관, 국가기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17세기의 프랑스 건축은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의 모방에서 벗어나 궁정을 중심으로, 우아함과 품위를 중시하는 프랑스 고전주의를 실현했다. 신고전주의의 서막을 올린 것. ‘예술의 도시 파리’라는 문화적인 위상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됐다.



현재 국립역사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쉴리 저택은 당시의 유행으로 볼 때는 지나치게 장식적이지만 크기와 비례에서 위엄을 갖춘 전형적인 귀족 저택이다.

파리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보주 광장은 앙리 4세에 의해 만들어진 왕궁 자리인데, 원래 샤를 6세부터 앙리 2세가 머무른 저택이었으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대로 앙리 2세가 궁정에서 열린 마상 경기에서 사망하자 저택을 허물고 그 자리에 보주 광장을 만든 것이다.

광장 둘레는 36개의 독립된 붉은 벽돌 건물이 중앙정원을 에워싸듯 사각 형태로 지어진, 일종의 테라스 하우스로 연결돼 있다. 1층은 아치형 열주 회랑이고 위로 두 개의 층이 더 있으며, 돌출 창과 기와를 경사지게 올린 이 건물군은 전기 고전주의 양식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층의 회랑에는 카페들과 독특한 장신구들을 파는 상점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기념관, 그리고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부티크가 있으며, 현재 프랑스 최고위층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고전과 현대’ 마레 지구 두 얼굴

보주 광장에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의 회랑.

현대의 마레를 규정짓는 또 하나의 특징은 게이와 유대인의 동네라는 것이다. 패션의 거리로 유명한 리볼리 거리는 보주 광장으로 이어지는 고전주의 양식 건물들로 이어져 있다. 우아한 철제 발코니가 수평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거리를 따라 죽 늘어선 아케이드엔 최신 패션숍이 들어차 있다. 이는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요인이며,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패션 피플로 떠오르고 있는 게이층이 이곳에 집중돼 있다는 점과 관련이 높다.

나치 점령 아래서 행해진 유대인 강제 이송의 결과라 할 수 있는 유대인 구역도 마레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중 지하철 들머리 디자인으로 유명한 기마르의 작품 ‘유대교 회랑’은 절제된 아르누보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부티크와 패션 상점 ‘빽빽’

마레의 좁은 골목 구석구석에는 피카소 박물관·카르나발레 역사박물관 등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스위스·스웨덴·멕시코 등 세계 각국의 문화원들이, 다양한 성당과 교회들이, 그리고 유대인촌과 중국인촌이 산재해 있다. 또한 그와 나란히 유명 디자이너의 부티크와 고급 브랜드의 패션 상점들이 즐비한 곳 역시 마레다.

마레는 17세기의 얼굴에 그 이후의 역사가 주름처럼 남아 있고 현대로 화장되어 있는 듯하다. 고전적이면서도 전위적이고 회색빛이면서도 무지갯빛이며 권위적이면서도 자유롭다.

프랑스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여행을 하는 이들에겐 낡은 철제 장식 하나도 감회가 새롭겠지만, 매뉴얼에 따라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는, ‘숨어 있는 보석’이 바로 마레 지구다.



주간동아 2005.08.02 496호 (p64~65)

류혜숙/ 건축전문 자유기고가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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