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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와인의 공통점

명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신할 뿐

  • 최현숙/ 동덕여대 디자인대학 교수

명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신할 뿐

명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신할 뿐

명품 브랜드의 로고는 ‘과시 소비’를 부추기며, 높은 가격은 현대사회에 새로운 계급을 형성하게 한다.

몇년 전 이른바 와인 문화가 한국에 막 상륙해 확산되기 시작할 무렵, 와인과 패션을 주제로 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

패션에 대해서야 언제나 할 말이 많지만 알코올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탓에 다른 사람들이 와인 잔을 ‘멋지게’ 돌리는 모습을 부러워만 하던 나로서는, 원고를 거절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다 자타가 공인하는 와인 애호가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너무도 간명한 답이 돌아왔다.

“와인과 패션의 공통점은 극히 미묘한 차이가 엄청난 가격 차이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가공할 가격차가 무의미하게 여겨질 뿐이다.”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가 명품이라고 불리는 특정 패션 브랜드에 그처럼 많은 돈을 쏟아붓고, 중·고등학생들까지 명품계를 만들어 명품 지갑 하나라도 소유하려 하며, 심지어는 명품을 사주는 조건으로 데이트에 응하는 ‘스폰서 교제족’까지 생겨나는 이유는 바로 그 ‘작고 미묘한 차이’에 있었던 것이다. ‘차별화’에 대한 욕구는 패션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은 1899년 자신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유한계급에게는 가격표가 본질적으로 지위를 상징하는 것이며 “비싸지 않은 아름다운 물건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호사스러움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아줘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그는 ‘과시 소비’라고 했다. 특히 패션에서 그 예를 들면서 부자들이 자신들의 여유로움을 과시하는 방식을 열거했다. 유지·관리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의복 소재나 노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의상, 지나치게 굽이 높은 구두 등이 그것이다. 과거에 중국 귀족들이 손톱을 길게 길렀던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역사상 수많은 ‘사치 금지법’이 존재했음에도 중류층은 언제나 금지된 것을 사용하여 상류층을 모방했고, 상류층은 그것이 못마땅해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다. 이러한 오래된 숨바꼭질 속에서 1960년대 이후 소비 사회가 어느 정도 물질적 평등 또는 스타일의 민주화를 이루게 되자 등장한 것이 바로 ‘명품’(또는 ‘사치품’)이다.

명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신할 뿐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명품점 순례를 통해 변신하는 모습은, 현대사회에서 명품의 소비가 곧 신분 상승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명품 브랜드의 로고로 도배된 패션 상품은 그것을 찾는 중류층이 늘어나면서 의미가 퇴색됐고, 디자이너들은 가격을 올리고 오히려 로고를 작게 만들어 ‘베블런 효과’를 활용한다. 지금까지 디자이너의 서명 날인 구실을 해왔던 표식은 잘 보이지 않게 감춰지거나 더 작아지면서, 명품을 알아보는 안목은 암호 해독 능력에 버금가는 것으로 변화했다. 이렇게 하여 집단 간의 ‘차별화’는 더욱 심화되고 세밀해진다.

패션에서 그처럼 미묘한 작은 차이, 즉 암호를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똑같은 소재로 만든 똑같은 모양’의 옷 한 벌이 왜 수백 배의 가격차가 나는지 수수께끼일 뿐이다. 마치 언제 어느 나라, 어느 양조장에서 제조되었느냐에 따라 생겨나는 미세한 와인의 맛과 향의 차이가 한 병의 와인을 완전히 다른 세계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 내겐 잘 이해가 안 되듯 말이다.

물질적인 의미에서만 보면 계급은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다만 명품의 가격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주간동아 2005.07.26 495호 (p55~55)

최현숙/ 동덕여대 디자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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