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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또 주목받는 ‘이종석 원맨쇼’

北 6자회담 복귀 ‘안중근 프로젝트’ 총연출 … 전기 대주고 또 뺨 맞을 땐 최대 위기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또 주목받는 ‘이종석 원맨쇼’

또 주목받는 ‘이종석 원맨쇼’

안중근 프로젝트를 마련한 이종석 NSC 사무차장. 안중근 프로젝트는 핵 포기를 전제로 북한에 200만kW의 전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총력을 기울여 국회와 언론을 설득하라!’

7월12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오후에는 NSC 상임위원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2008년 하반기부터 200만㎾의 전력을 한국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제공한다”고 밝힌 후 보인 정부의 태도다.

13일 오전 이종석 NSC 사무차장은 청와대 출입기자를 상대로 정 장관의 발표를 보충하는 설명회를 열고 “이 계획은 1월 ‘안중근 계획’이라는 암호명으로 준비된 것”이라고 밝혔다. 오후에는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프레스센터에서 각 언론사 논설위원들을 만나 비슷한 설명회를 열었다.

14일 정 장관은 롯데호텔에서 각 언론사 정치부장들을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나눈 대화 내용 등을 밝히며 “이번 제의의 핵심은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미-북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설명을 덧붙였다. 왜 정 장관은 이 이야기를 한 것일까.

국회를 상대로 한 설명은 더 일찍 시작되었다. 문제는 한나라당 측의 태도. 6월17일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정 장관은 바로 박근혜 대표에게 “비공개를 전제로 김 위원장과 나눈 세 가지 특별한 내용을 설명하겠다”고 했으나, 전여옥 대변인이 “공개하지도 못할 것이라면 설명하러 오지도 말라”고 해 무산된 바 있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NSC를 주재하던 7월12일 오전, 송 차관보는 여야 지도부를 방문해 NSC에서 공개하기로 한 대북 제안에 대해 설명했다.



참여정부 괴롭힐 진짜 ‘적’은 북한

NSC가 언론과 국회를 상대로 ‘안중근 프로젝트’를 적극 홍보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상상된다. ‘이종석 극본, 이종석 연출, 정동영(남북회담)·송민순(6자회담) 주연’의 이 드라마가 현재까진 제법 화제를 불러일으킨 성공작이기 때문이다. 이 계획을 승인한 노 대통령은 드라마 총책임자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시작돼 될 성싶은 무대가 마련됐으니 관계자들은 이 드라마의 인기를 끌어내릴 수 있는 세력을 사전에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남북회담과 6자회담에서 노무현 정부를 괴롭힐 진짜 ‘적’은 북한이다. 적이면서 상대인 북한을 적절히 다뤄내지 못한다면, 임기 중반에 접어든 노 정부는 기껏 설득해놓은 내부 경쟁자로부터도 심각한 도전을 받을 수 있다. 과연 노 정부는 적시에 벼랑 전술을 구사할 줄 아는 북한을 상대로 유리한 협상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을 찾으려면 노 정부가 펼친 지난 1년의 대북 정책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6월12일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실무대표회담에서 남측은 ‘비무장지대에서 심리전을 중단한다’는 선물을 건네주는 대신, 북측으로부터 ‘서해상에서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기로 한다’는 합의를 받아냈다. 노 정부는 이 합의에 대해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회담에 참여했던 군 관계자들은 상당한 불만을 표시했다.

첫째 이유는 심리전은 우리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분야인데, 너무 쉽게 버리고 서해상 충돌 방지라는 아주 작은 것을 얻어냈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둘째로는 말만 군사회담이지 실제로는 이종석 차장이 ‘원격조종’한 정치회담이라는 분석 때문이었다. 이 회담에 참여한 군인들은 폐쇄회로 TV로 회담장을 지켜보던 NSC의 지시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 했다.

이 합의가 나온 후 NSC는 합참으로 하여금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비무장지대에 설치해놓은 우리 측 심리전 장비와 시설을 철거케 하고 이를 언론에 홍보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북한도 심리전 장비 철거에 나섰으나 조금 하다가 중단해버렸다. 그에 따라 전면적으로 심리전 장비를 철거하던 남측도 더 이상의 철거를 중단했다. 그러나 양측은 심리전 방송 중단만큼은 지금까지도 잘 지켜오고 있다.

그런데 그해 7월14일 서해상에서는 북한 함정이 우리 측 경고를 무시하고 NLL (북방한계선)을 넘어옴으로써 양측 함정이 발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직후 국정원 등 NSC의 통제를 받는 일부 세력들은 북한 함정은 교신을 시도했는데 총격전이 벌어졌다며, 그 책임이 우리 측에 있다는 뉘앙스를 담은 보고를 올렸다.

그에 따라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조사를 펼쳤으나 북한이 했다는 교신은 ‘일방적인 통보’로 교신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군을 향해 의심의 그물을 조여오자 국방정보본부장인 박승춘 육군 중장은 일부 언론에 진실을 알려주는 것으로 소극적으로 대항했는데, 조사단은 이를 찾아내 박 중장을 전역시키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했다. 박 중장만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서해상에서 남북 함정 충돌이 벌어진 책임은 NSC가 져야 한다. 이유는 NSC가 주도한 6월12일 합의문 자체가 결정적인 오류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해상에서 충돌을 방지하려면 남북은 해상경계선부터 분명히 정해야 한다.

北 지난 1년간 회담 결렬 ‘벼랑 전술’

휴전 후 남측은 일관되게 NLL을 해상경계선으로 유지해왔으나 북측은 뚜렷한 해상경계선을 내놓지 못했다. 그리고 99년 9월2일 NLL 훨씬 남쪽에 해상군사분계선을 긋고 이를 경계선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경계선이 다르기 때문에 남북 함정은 서해상에서 잦은 충돌을 벌여온 것인데, 이 차장의 원격조종을 받은 남측 대표단은 해상경계선을 어디로 할 것인지는 거론해보지도 못하고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한다’는 문구를 담고 있는 합의서에 합의해주었다.

7월14일 북한은 바로 그 허점을 이용해, 일방적인 통고와 함께 그들이 주장하는 해상군사분계선까지 함정을 내려보내다 이를 저지하는 남측 함정과 교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엉성한 합의를 도출해낸 이 차장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을 묻지 않았다. 때문에 군에서는 ‘힘든 상황을 만든 사람은 빠져버리고 힘든 상황에 빠져버린 군인만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란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러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적잖은 사람들은 NSC 핵심 세력들이 ‘안중근 프로젝트’를 자화자찬함에도 “안중근 프로젝트에는 허점이 없는가” “이 차장은 이 계획의 성패에 직(職)을 걸 자세가 돼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안중근 프로젝트’는 북한의 전략을 압도할 정도로 완벽한 것일까. 이 문제를 살펴보려면 북한이 남북회담에 이어 6자회담에 나오겠다는 선언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여름은 남북 함정 간 교전뿐만 아니라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 제삼국을 거친 대량 탈북자의 입국, 김일성 10주기를 맞았지만 남측에서 그 누구도 조문하지 않은 사건 등이 연이어 일어났다. 게다가 6월23일 열린 3차 6자회담에서 북한은 다섯 나라로부터 핵을 포기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이렇게 안팎으로 불리해지자 북한은 모든 회담을 차단하고 그들 식 ‘분노의 농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올해 2월10일 “더 이상 6자회담에 참여하지 않겠다. 우리는 핵을 갖고 있다”는 핵 보유 선언을 함으로써, 1993~94년 전시체제를 구축하며 펼쳤던 것과 유사한 ‘벼랑 전술’ 카드를 꺼내들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닥쳤으므로 시간을 흘려볼 필요가 있었던 것. 이에 대해 미국은 오불관언으로 북한을 무시하다 북한의 반발이 있을 것 같으면 잽싸게 북한을 고립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해 10월 미국에서는 ‘북한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는 10월 위기설이 퍼져나갔다.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중요한 상식 중의 하나는 “1년 동안 열리지 않는 회담은 결렬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해를 넘겨 6월이 다가오자 미국에서는 ‘6자회담 결렬 1주년을 맞으면 미국은 북한이 더 이상 평화적인 회담에 응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고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한다. 북한은 핵 보유 선언을 함으로써 이미 명분을 상실했으므로 안보리는 대북 제제를 결의하고, 미국은 동맹국과 함께 북한을 상대로 군사적인 조치를 취해도 좋다는 동의를 얻어내게 된다. 그로 인해 더 큰 궁지에 빠지게 될 북한은 함북 길주에서 핵실험을 하거나 동해로 미사일을 시험발사해 큰 위기를 조성하는 초강경 벼랑 전술을 구사한다’는 요지의 6월 위기설이 유포되었다.

이 두 개의 위기설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미국 사회의 각성을 촉구함과 동시에 북한의 호전성을 세계로 알리는 효과가 있었다. 이러한 위기설이 퍼져나갈수록 북한은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6·15정상회담 5주년이 다가오자 북한은 비정부기구인 남북민화협이 중심이 된 만남을 허가했다. 비정부기구가 중심이 된 만남에서 북한은 미국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표시했다(북한과의 회담에 참여했던 남측 관계자들의 전언).

2002년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후 미국은 북한이 사용하던 석유류의 70%에 이르는 50만t의 중유 제공을 중단했다. 그리고 두 개 위기설이 유포됨으로써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식량 제공 등 각종 지원을 차단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북한 농업은 고난의 행군에 들어간 98년 이상으로 나빠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측은 연례적으로 보내던 비료조차 보내지 않으며 북한을 압박했다.

이 고통이 너무 심했던 것일까. 5월14일 북 측은 1년 만에 차관급 회담을 열자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5월16일 차관급이 열리자 남측은 예년 수준인 비료 20만t 지원을 약속하며 추가 지원은 장관급 회담에 응해야만 가능하다고 한 후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중요한 제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언질을 주었다.

그리고 평양에서 6·15 행사가 열리자 정부 대표로 참가한 정 장관은 예상대로 17일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핵을 포기하면 200만㎾의 전력을 2008년부터 제공할 수 있다는 중대한 제안을 설명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빠르면 7월 중에라도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때부터 한국은 남북 접촉에서 나온 이야기를 이종석 차장이 직접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에게 전달했다.

그와 함께 한국은 비료 15만t과 쌀 50만t 추가 지원을, 미국은 쌀 5만t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6월30일 남북한과 미국의 6자회담 차석대표 간의 비공개 토론회가 열렸고, 7월9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副相)을 만나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는데, 북한은 다음날인 10일 오후 10시30분 조선중앙TV를 통해 6자회담 복귀를 밝혔다.

그에 대한 화답으로 한국이 내놓은 것이 북핵 포기를 전제로 한 200만㎾ 전력 제공인 것이다. 지난 1년간 회담 결렬이라는 벼랑 전술을 통해 북한이 손에 쥔 것은 ‘고작’ 남측이 제공하는 비료 35만t과 쌀 50만t 그리고 미국이 제공하는 쌀 5만t인데, 이는 예년에 비해 많은 양이 아니다.

지난해 남측은 비료 30만t과 쌀 40만t을 지원했으므로 올해 북한이 더 얻어낸 것은 비료 5만t과 쌀 10만t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국제사회는 대북 지원을 중단했으므로 북한이 받을 수 있는 지원 총량은 예년보다 오히려 적다고 할 수 있다. 1년을 버티며 농성을 한 북한으로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다시 회담에 나온 처지가 된다.

이에 NSC는 북핵 포기를 전제로 200만㎾ 전력 제공으로 벽을 둘러쳤으니 북한으로서는 더더욱 도망가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니 이 차장이 펼친 ‘안중근 프로젝트’는 파란 신호등을 받으며 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 함정 교전 같은 교묘한 수를 쓰게 된다면 한국은 남남 갈등을 벌이는 내홍에 봉착할 수가 있다. 한 관계자의 결론이다.

“한국은 남북회담과 6자회담에서 북한을 상대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잡았다. 이 무대를 만든 이는 이 차장인 만큼 그는 이 사업 성패에 직을 걸어야 한다. 지난해 남북 함정 교전 때처럼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안중근 프로젝트는 ‘이종석에 의한, 이종석을 위한, 이종석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 장관이 ‘이번 제의는 미-북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북회담보다는 6자회담의 비중이 커질 것이고, 6자회담에서는 미-북 간의 양자 회담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재주(지원)는 곰(한국)이 넘고, 돈은 미국이 챙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노 정부의 인기가 높다면 이 비판은 쉽게 극복되겠지만, 내정 분야에서 실정을 거듭한다면 이 비난의 파도를 넘기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차장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줄을 쥐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주간동아 2005.07.26 495호 (p42~44)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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