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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검찰 개혁’ 태풍전야

‘盧心이 千心’ … 검찰 개혁 어찌하오리까

천정배 법무 참여 정부 도덕성 회복 카드 … 이해관계 조정·통합 千 리더십 본격 시험대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盧心이 千心’ … 검찰 개혁 어찌하오리까

‘盧心이 千心’ …   검찰 개혁 어찌하오리까
(검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고 있어 나눠 갖게 해달라고 하는데, 사실상 검찰이 가진 것은 ‘수사권’ 하나밖에 없다. 검찰이 나름대로 정치권에 대항하면서 이런 전통을 만든 것이다. 검찰의 이 권한이 서민들이나 일반 국민들을 괴롭히는 것인가.”

6월30일 김종빈 검찰총장이 대검 출입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을 열었다. 액면 그대로 보면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는 경찰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그러나 시기가 미묘했다. 바로 전날인 29일, 검찰 개혁을 내걸고 천정배(51·사시 18회) 법무부 장관이 취임했기 때문. 아무리 좋게 봐도 의도된, 작정한 도발로 비치기 십상이다. 더구나 김 총장은 평소 말을 가리고 아끼는 편이다. 이런 스타일을 감안, 참석 기자들은 이 발언을 ‘조준사격’으로 평가했다. 반대로 천 장관은 김 총장에게서 일격을 맞으면서 각료로서의 업무를 시작한 셈이다.

천 장관의 등장은 예고된 인사였다. 그럼에도 파격과 이변을 동반했다. 천 장관은 ‘재조’ 경험이 없다. 법률활동은 로펌(김&장)이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최초의 재야법조 출신 법무장관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검찰총장보다 무려 3기수(사시)가 낮은 점도 이채롭다. 송광수 전 총장과 강금실 전 장관도 이 경우에 해당하지만, 그때는 기수를 따지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그래서 장관과 총장이 아예 드러내놓고 한바탕 웃고 넘어갔다고 한다. 현재 천 장관의 동기들은 검사장급 이하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젊다. 검찰과 정치권은 그의 이런 이력과 젊은 열정이 몰고 올 변화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정치를 잘 아는 실세 장관이기 때문에, 강 전 장관과 같은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앞선다. 그래서 실세 장관에 대한 기대감도 만만치 않다. 검찰 관계자는 “실세 장관이 왔기 때문에 경찰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못할 것”이란 낙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면을 흐르는 격렬한 정치 지형을 감안하면 긴장의 끈을 놓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과 천 장관이 맞닥뜨린 정치환경이 매우 험난하다. 이 지형을 통과하려는 노 대통령의 입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단내가 나고 있다.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최근 상황을 ‘정책적 탄핵’ 시기라고 평가한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정치적으로 좀 어렵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노 대통령을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유전 개발사업, 행담도 개발사업 등 각종 의혹 사건들이다. 이는 참여정부와 청와대의 도덕성에 치명적 상처를 입혔고,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노 대통령 주변에 공공연히 ‘레임덕’ 얘기를 끌고 온 주범이다. 정당 지지율 10%대와 대통령 지지율 20%대도 부담이다. 대통령의 호흡은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이 상황에 떠밀려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특유의 뚝심으로 정치적 승부수를 동원하려는 움직임들이 포착된다.



‘盧心이 千心’ …   검찰 개혁 어찌하오리까

◁ 6월29일 천정배 법무부 장관 취임식 직후, 검찰 고위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 2004년 6월17일 청와대를 방문한 천정배 원내대표(맨 오른쪽).

노 대통령은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이재용 환경부 장관에 대한 여론과 언론의 융단폭격에도 ‘마이웨이’를 접지 않았다. 야당의 해임결의안 공세 속에서 윤광웅 국방부 장관도 끝까지 끌어안았다. 이 고집 속에 노 대통령의 노림수가 엿보인다. 천 장관과 윤 장관에 대한 적극적 방어는 ‘검찰 개혁’과 ‘국방 개혁’의 적임자라는 생각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레임덕이 거론되지만 임기가 2년 반이나 남은 상태에서 국방 개혁, 검찰 개혁 등 참여정부의 핵심 개혁작업을 본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젊은 열정이 몰고 올 변화 관심 집중

노 대통령은 이런 개혁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직접 ‘정치’에 나섰다는 오해도 감수하고 있다. 그는 당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당의 전투력 강화를 주문했고, 위기에 빠진 문희상 대표를 직접 구해 야전사령관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주지시키기도 했다. 29일에는 여야 지도자를 만난 자리에서 장관해임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의도”라고 규정, 2004년 탄핵과 마찬가지로 여야의 전선을 선명하게 갈라놓았다. 결국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복선이 깔린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줄기차게 개혁을 밀고 나가려는 의지가 읽혀진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이 단단한 의지의 선봉에 선 사람 가운데 하나가 천 장관이다. 천 장관도 노 대통령의 이런 개혁 코드에 화답하여 29일 취임식에서 검찰 개혁에 대한 구상의 일단을 내비쳤다. 핵심 키워드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라는 표현이다. 길지 않은 취임사에서 이 부분은 몇 차례나 반복되고 있다. 2004년 7월 강금실 법무부 장관 경질설이 돌 때 나온 그의 발언도 되새길 만하다. 기자들이 강 장관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하자 “개혁한다고 1년을 맡겼는데, 도대체 무얼 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천 장관은 평소 국민참여를 통한 사법·검찰 개혁을 외쳐왔다. 강금실 전 장관이 검찰의 뿌리 깊은 기수문화와 서열파괴 등 조직 내부의 인적 청산을 이끌었다면, 천 장관은 참여정부 2기 검찰 개혁의 핵심인 수사권 조정과 형소법 개정 등 제도 개혁을 마무리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천 장관은 ‘제도 이상의 권력은 내놔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런 점에서 검찰 일선에선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평소 국민 참여 통한 ‘사법·검찰 개혁’ 주장

그는 2002년 경실련 주최 토론회와 2003년 국정감사 때 밝힌 ‘검찰 개혁 10대 과제’를 통해 △검사의 수사권 발동기준 구체화 △고비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검찰인사위에 외부 인사 과반수 참가 △한시적 특검제 제도화 등을 주장했다.

하나같이 검찰이 껄끄러워할 만한 내용들이다. 이중 사법개혁 과정에서 천 장관이 과제로 내걸었던 재정신청 전면확대, 인사위, 감찰기능 강화 등은 이미 상당 부분 성과를 거뒀다. 따라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형사소송법 개정문제,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등이 앞으로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비처 설립 문제는 그동안의 천 장관 발언을 감안하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 내부 단속이 강화되고 상급검사의 지휘·감독권 행사 방식에도 손을 댈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 폐지론에 무게를 둬온 천 장관 취임으로 공안부가 더욱 움츠러들 가능성도 점쳐진다.



7월1일 법무부 출입기자들과 함께한 기자간담회에서 천 장관은 기존의 생각에서 조금 비켜선 절충안을 소개했다. 과거 자신이 주장했던 검찰의 10대 과제 가운데 고비처 관련 내용이 약간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 그는 “애초 내가 기소권 없는 고비처 안을 반대한 것처럼 알려졌는데, …현재 국회에 제출된 고비처 법에 따르면 검찰의 지휘가 일정 부분으로 제한되고 재정신청도 할 수 있어 당초 취지가 많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당정합의가 끝난 사안이기 때문에 장관 혼자서 독단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 정치인 출신답게 국회가 해야 할 일에 중점을 둔 대목이 이채롭다. 무엇보다 검찰이 긴장하는 것은 검경 수사권 조정 및 사개추위의 형소법 개정과 관련, 천 장관이 사개추위나 경찰 쪽 의견을 들어줄지 모른다는 우려다. 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한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는, 천 장관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손꼽힌다. 특히 대선 공약의 검증 절차를 담당했던 천 장관인 만큼, 이제는 검찰을 휘하에 둔 법무부 장관의 처지에서 어떻게 조율할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현재 천 장관은 “수사권 문제는 검찰 견제와 무관하며 결국 검찰의 주인인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는 원칙론적 입장만 재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점은 검찰이나 경찰 모두 희망을 갖게 하는 대목인데, 결국 천 장관의 생각은 고비처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회에서 타협을 보는 방향으로 자신의 부담을 더는 절차를 택하리라는 전망이다.

국가보안법이나 사형제 폐지 등 평소의 소신이 기존의 법무부 안과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긴 하지만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천 장관은 6월29일 법무부 장관 취임식 날 기자들에게 “그동안 열린우리당이나 재야 법조인의 길을 걸어오면서 나름대로 소속된 그룹이 있었는데 이제는 소속감을 버리고 정말로 공정한 법 집행을 위해서 거기에 올인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천 장관의 등장을 보는 검찰과 재야법조 등의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민변 출신들은 그의 입각을 환영한다. 강 전 장관이 중도에 포기했던 법무·검찰 개혁의 기치를 다시 올릴 적임자로 그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그의 가장 절친했던 후배 변호사로 알려진 법무법인 지평의 조용환 변호사는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그는 지금 현재 사법 개혁을 이끌 최적의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가 거쳐온 이력과 개혁에 대한 애정을 고려할 때 현재 참여정부에 살아남은 재야의 희망이다.

이미 검찰이 받을 외부충격이란 강 전 장관을 거치면서 대부분 희석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이미 참여정부와 검찰 간의 관계는 커다란 틀이 주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세 장관이 오는 편이 협상하는 데 훨씬 수월하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검찰은 검찰 내부의 의견을 천 장관에게 전달하고 이해시켜 검찰의 개혁과 발전 방향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매사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선에서 업무 처리”

천 장관의 성향이 지나치게 개혁적이라든가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그와 대결했던 공안 검사들과의 갈등은 한마디로 이미 지나간 얘기일 뿐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대검의 한 과장은 “검찰의 주류를 이루는 40대 초반의 검사들은 이미 천 장관이 겪었을 공안정국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수사 시스템을 발전시켜온 세대”라고 말했다. “천 장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장관이 과거에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다”고 전한다.

검찰은 6월 말, 천 장관 발탁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에 대한 전방위 연구에 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궤적과 법조 활동 등. 특히 그가 95년 쓴 ‘꽁지머리를 묶은 인권변호사’란 책을 구해 인간 천정배 분석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검찰이 얻은 결론은 미리 실망할 필요도, 특별히 기대할 것도 없는 ‘상황론’이었다. 경우에 따라 천 장관의 포용력에 의지하고, 경우에 따라 대립각을 세우며 검찰의 입장을 전개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천 장관은 장관 발탁 전인 27일 전화통화에서 “매사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선에서 일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노심(盧心)을 업은 천심(千心)의 지향점은 분명해 보인다. “개혁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손에 잡힌 칼의 수단과 기능은 매우 취약해 보인다. 법률지식과 정치적 경륜이 탁월한 천 장관이지만 검찰 개혁은 전문성과 논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변호사와 정치가는 본질적으로 승부사적 기질이 강조되지만 장관은 갈등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의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첫 번째 덕목이다. 천 장관은 지금까지 이런 능력을 검증받을 기회가 적었다. 그는 다수가 결과에 수긍할 수 있도록 통합적인 리더십을 선보여야 하는 시험대에 섰다. 노 대통령은 그런 그를 초조감과 기대감을 품은 채 지켜볼 것이다. 참여정부 중반, 노 대통령이 뽑은 조용한 반전의 수는 그렇게 시위를 떠나 현실 속으로 파고들었다.





주간동아 2005.07.12 493호 (p16~19)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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