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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폐셜 리포트

국적 포기자 “난 니들과 달라”

‘검은머리 독수리들’ 병역기피 뜨거운 논란 … 인생 출발부터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국적 포기자 “난 니들과 달라”

직장 여성 김모(30) 씨는 얼마 전 미국 서부 일주 패키지 관광을 다녀오면서 씁쓸한 경험을 했다. 김 씨는 출발 전 일행인 한 여성과 국내 면세점에서 쇼핑하다 이 여성이 2000달러가 훨씬 넘는 고가의 목걸이를 구입하는 것을 보았다. 김 씨가 “한국 사람은 구매액 한도가 2000달러고, 입국할 때 400달러 이상은 신고해야 한다”고 말하자, 이 여성은 “난 미국 시민권자라 괜찮다”고 대답했다. 김 씨는 “자격지심이었는지는 몰라도, 시민권자라는 말 속에 ‘난 당신보다 우월한 사람’이라는 감정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한 김 씨는 출입국 심사 때 한국인들 사이에서 줄을 서 기다리면서 그녀가 ‘외국인’으로 먼저 면세구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미국 입국 심사 때도 먼저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김 씨는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방문객’으로 길게 줄을 서서 지루하게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다.

실제로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는 미국 입국 시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면세점에서 2000달러 구매액 제한을 받지 않는다. 다시 우리나라에 올 때 신고 의무는 있지만, 사실상 강제적인 규정이 아니다. 국내 한 면세점 직원은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는 구매액 제한이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서 쇼핑 부탁을 많이 받는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그들이 물건을 많이 팔아주는 VIP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이드를 붙이기도 하고, 특별할인을 해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 거주 시 불편도, 특권도 없다”?

미국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한국적을 이탈한 서모(35·남) 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최근에 우리나라로 왔다. 처음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국내 대기업에서 해외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18세가 되기 전까진 이중국적자였고, 국적 이탈 후엔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다. 그는 ‘당연히’ 군대에 가지 않았다. 그는 “국적을 ‘선택’(우리나라 법무부에서는 서 씨 같은 경우를 ‘국적 이탈’이라 하며, 생후에 이민 등으로 외국 국적을 얻으면 ‘국적 상실’이라 규정한다)할 때 아무런 갈등도 없었다.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 중 고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같은 ‘독수리들’(미국 국적자를 의미한다)은 한국에서 살 때 세금 문제가 한국과 미국 국세청에 걸려 있어 복잡할 뿐, 그 이상의 불편도, 그 이상의 특권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영사관에 한국 내 소재지를 신고하게 돼 있어요. 미국은 자국민 보호에 철저하니까 위기상황 시 빨리 소개시킬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만약 그런 상황이 되면 한국인들에게 미국행 비자는 나오지 않을 테니, 장점이라면 그 정도가 아닐까요?”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대표 발의해 국회를 통과한 개정 국적법이 5월24일 시행되면서 이제 병역을 이행하거나 면제받기 전에는 국적 이탈 신고를 할 수 없게 됐다. 만 17세 이전에 국적 이탈을 할 수 없으므로 서 씨 같은 ‘독수리’는 더 이상 나오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막차를 타고’ 옛 국적법에 따라 병역을 면제받으려는 국적이탈자들이 한꺼번에 법무부에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고, 이 장면은 여론을 자극했다. 홍 의원이 여전히 법무부에 이들의 명단 공개를 요구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의 의견도 찬반 양론으로 갈라진 상태다.

국적 포기자 “난 니들과 달라”
국적 이탈에 대한 논란은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이중국적자 혹은 검은머리의 ‘독수리’들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여놓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미국령으로 원정출산을 떠나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한 해 5000명을 넘어섰고, 이민과 친지 초청 등으로 다른 나라의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획득한 뒤 한국에 돌아와 이중국적자로 살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법무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일부의 주장처럼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검은머리의 ‘독수리’들은 정말 우리 사회의 ‘특권층’일까?

한 미국대사관 관계자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미국 국적자는 먼저 다른 나라로 피신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미국의 자국민 우선 보호정책을 묻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미국군이 전시 상황에 미국에 세금 내는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이중국적자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한국의 언론과 일반인 할 것 없이 이런 문제를 과도하게 따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나라 정부도 이라크에서처럼 다른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이라크 사람보다 우리나라 사람을 먼저 피신시키겠지만,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하다 할지라도 한반도 자체가 위기상황에 놓일 때를 상정한다면 피신할 곳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의 ‘독수리’ 우선 보호정책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면세 혜택이나 미국의 자국민 우선 보호정책이 지극히 국지적이거나 극단적인 경우에서 ‘독수리’들의 권리라면, 병역 의무를 지지 않고도 우리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모든 사람의 피부에 절실하게 와닿는 ‘특혜’다. 일부에서는 병역을 피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쓰기도 하고, 신체를 훼손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새 국적법이 발효되기 직전까지 국내의 국적포기 신청자 1692명 중 16명만 여성인 것만 봐도 이중국적의 가장 큰 혜택이 병역 면제임을 알 수 있다. 홍 의원이 개정 국적법을 발의한 목적 역시 국적을 이탈해 병역을 회피하고, 한국에 사는 국민으로서 권리는 여전히 누리는 것이 가능한 옛 국적법의 ‘구멍’을 막겠다는 데 있다. 예전에 이 ‘구멍’을 통과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극소수였고 이미 2002년부터는 이런 국적이탈자들 중 부모가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재외동포 체류 자격을 부여하지 않도록 했지만 여전히 병역 회피라는 커다란 특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엔 ‘원정출산’이라는 유행어가 생기고, 교포들이 많이 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오렌지 카운티에만 원정출산 전문병원 6, 7곳이 성업 중일 만큼 이중국적 획득이 일반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미국 원정출산으로 태어나 ‘속지주의’에 따라 미국 시민이 된 아이들은 우리나라의 외국인학교나 일반 초·중학교를 다니다가 대개 남자의 경우 국적이탈자가 되어 17세 정도까지는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여자는 22세가 넘으면 우리 국적을 자동적으로 상실한다.

국적 포기자 “난 니들과 달라”
미주 한인회 총연합회 법률 고문인 김재수 변호사는 “이렇게 부모와 떨어져 유학 온 아이들 중 일부가 후배의 군기를 잡는다든가, 돈을 뜯는 등 한국의 나쁜 학교 문화를 확산시키기도 하고 대학에선 부모의 수입이 잡히지 않아 거짓 서류를 꾸며 장학금이나 대출을 받는 등 한국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리고 있다. 또 인큐베이터 비용 등 의료비를 미국 정부에 신청하고 한국으로 가버리는 산모가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대부분이 부유한 가정 아이들이라 최고급차를 몰고 다니며 사치스런 생활을 하기도 해 교포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같은 원정출산 유학생들에 대해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키운다는 의미로 ‘뻐꾸기’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고 한다.

특히 현역입영 의무 연령인 35세가 될 때까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한 남자들 중 한국에서 송금해주는 돈을 쓰며 허송세월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학업 마치고 다국적 기업에 취업

개정 국적법 통과 직전에 미국에서 아들을 출산한 이모(28) 씨는 “현재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 연수가 그의 직장생활에 필수적이라 아이가 시민권자일 경우 자리 잡는 데 유리하고 특례입학도 가능해 혼자 수소문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미국에서 아이를 낳았다. 미국엔 혼자서 단 보름 동안 머물렀다”고 말했다. 이 씨의 말처럼 지금까지 병역 회피와 함께 이중국적자가 가질 수 있었던 또 다른 특혜가 우리나라의 재외국민 특별전형이었다. 이 경우 경쟁률이 일반 수험생에 비해 매우 낮아 ‘미국 국적은 부모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홍준표 의원이 대표발의한 후속 법안에 따르면 이것도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외국인이 된 자에 대해서는 허용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학업을 마친 검은 머리의 ‘독수리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대개 다국적 대기업의 한국 지사를 통해서다. 이들은 세계화 시대에 처한 한국 인적 자원의 네트워크를 도모키 위해 99년 제정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우리 국민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외국인으로 살아도 2년마다 비자 연장만 받으면 일상적으로 사는 데 거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관련 부처 공무원들의 설명이다. 즉 부동산도 양도소득세 15%만 내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고 운전면허도 받을 수 있으며, 건강보험도 ‘임의적용’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건강보험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무조건 ‘강제적용’한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생각이기도 하다.



법적·사회적 신분에서 한국민이나 검은머리 ‘독수리들’ 사이에 거의 차이가 없다면, 심리적으로도 차이가 없을까. 이 역시 이중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띤다. 젊을수록 언어 문제를 제외한다면 스스로나 주변 사람들이 이중국적자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40, 50대 이상에서는 미국 국적 획득을 일종의 ‘성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 중에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자신의 국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이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평가다. 토론 벌이기를 좋아하고,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인간관계를 선택하는 모습이 서구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의 특징이라면, 미국 회사의 직원이면서도 한국 기업을 상대로 사업을 할 때 한국인임을 강조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팔은 안으로 굽을 것’이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적 포기자 “난 니들과 달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산부인과에서 미역국을 먹고 있는 미국인 산모의 모습(왼쪽)과 원정출산 안내 인터넷사이트.

국내 기업들에서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외국 국적자들이 입사가 어렵거나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겪는 일이 있었으나, 대기업들이 ‘글로벌 마케팅’을 외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익은커녕 가시적으로 혹은 심정적으로 이중국적자들이 환대받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미국 국적자 여성은 “아무래도 미국에선 동양인으로 차별받는 느낌이었다. 그런 점에선 한국 생활에 만족한다”고 아직은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80년대 말 영화직배사가 진출해 상대적으로 일찍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 영화계의 경우, 한국 직원들은 한결같이 “미국 국적 한국인들은 외모가 우리와 똑같아 한국인들에겐 저항감이 없으면서도 본사와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한 영화 관계자는 “재미있는 것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들이 많다 보니, 토종 한국인인데도 은근히 미국 국적자인 척하는 임원들도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서류상 외에는 이를 숨기려 해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다국적 기업의 한 직원은 “본사에서는 국적보다 실적이 중요하다. 거의 소모품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들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들이 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이들의 인적 네트워킹이 좋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중국적자였으나 고위공무원인 부모 때문에 미국 국적을 포기했다는 한 대기업체 직원 A 씨는 “중요한 건 미국에 머물며 출산을 하고 아이를 미국에 유학 보낼 정도라면, 우리나라에서 지도층이고 부유층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상류층 부모를 둔 2, 3세들이 미국 유학을 통해 커뮤니티를 이루고 한국에 돌아와 인적 네트워킹을 이룬다. 이들이 우리나라를 움직인다. 우리 회사 대표도 미국 국적자다. 이들은 중산층 원정출산족이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이면서도 현재의 이 병역 기피 사태를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현재 벌어지는 국적 논쟁의 밑바닥에는 애국심이나 국민의 책무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출발부터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 상류층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놓여 있다. 이는 홍 의원이 함께 발의한 ‘재외국민 2세에 대해 6주의 군복무 의무를 가능하게 하는 병역특례제도 도입안’이 조용히 국회 국방위에서 좌초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미 많은 이공계 전문가들이 병역특례를 받고 국가산업체 등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분노한 여론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미국 국적 한국인들의 군복무 특례에 대한 논의 자체를 어렵게 한다.

징병제도 점검과 변화가 열쇠

개정된 국적법 아래서도 미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인 여성이 원정출산 등으로 미국에 가서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아이는 군입대를 회피할 수 있다. ‘직계존속이 외국에서 영주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정된 국적법이 막 원정출산 대열에 합류한 중산층만 단속하는 효과를 얻을 가능성도 높다. 이 때문에 결혼정보회사에서 지금도 인기 있는 미국 시민권자의 프리미엄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모든 남자들을 군대에 보내고, 모든 국민들이 ‘얌체짓’을 법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모든 경우의 수를 법으로 만들 것인가?

결국 문제의 해결은 무조건적 강제 징집을 포함한 징병 제도의 점검과 변화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개인들의 출발이 비슷하기라도 하려면, 군 복무가 개인들의 창의적인 능력을 상실하게 하거나 지적인 개발을 중단시키는 기간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국적법을 개정하고 또 개정해봐도 그때마다 법망을 피해 태평양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검은 ‘독수리’들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우리의 사회지도층은 대를 이어 도덕적으로 불감한 커뮤니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5.06.14 489호 (p42~45)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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