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KT, 적과 동침하다 당했다?

이해 상충관계인 ‘하나로’와 같은 로펌에 의뢰 … 사상 초유 과징금 얻어맞아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KT, 적과 동침하다 당했다?

KT, 적과 동침하다 당했다?

2004년 6월 부산에서 열린 공정위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 강철규 공정위 위원장, 조학국 부위원장, 오성환 전 상임위원(오른쪽부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통신 공룡 KT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성장 동력은 보이지 않고,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특히 이제껏 돈줄 구실을 해온 시내전화 사업이 후발 사업자인 하나로텔레콤(이하 하나로)과의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철퇴를 맞은 것이 치명적이다. 시내전화 요금과 PC방 전용회선 관련 과징금만 무려 1159억7000만원(하나로 24억원, PC방 전용회선 담합에 가세한 데이콤은 14억8000만원).

액수도 놀랍지만 국민기업으로 자리매김한 ‘한국통신’ 시절부터 쌓아온 신뢰가 무너져내렸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분노한 시민단체들은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비전은커녕 현 경영진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다.

사면초가에 처한 KT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 공정위 과징금에 대해 행정소송을 통해 면죄부를 얻거나 과징금을 감면받는 길. 현재 KT는 “정보통신부의 행정지시가 요금 담합의 직접적인 요인이었다”는 주장을 펼치며 소송으로 일관할 태세고, 한편으론 담합 의혹에 관한 공정위 수사에 함께 대처해온 국내 최대의 로펌인 ‘김&장’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법적 대리인을 내세워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간 공정위가 내린 과징금은 2000년 5개 정유사의 담합에 대한 1200억원대가 최대 규모였다. 이때도 가장 많은 과징금을 문 회사가 겨우(?) 400억원 정도. 반면 이번 과징금 규모가 시내전화 담합 한 건만으로 KT에 1000억원대(시내전화 1130억원, PC방 인터넷 전용회선 29억7000만원)가 내려졌기 때문에 공정위 사상 단일기업 최대 과징금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 것이다.



하나로는 담합 시인, KT는 부인

공정위는 KT와 하나로가 2003년 4월경부터 6월 중순까지 수차례 시내전화 실무담당자 및 임원급 회의를 통해 ‘하나로의 시내전화 요금인상’ 및 ‘출혈경쟁 자제 방안’ 등에 관해 협의하는 과정에서 가격 담합을 해 이 같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진실은 하나겠지만,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담합의 당사자인 두 통신회사가 밝히는 담합의 원인과 개시 이유, 배경에 대한 진술 내용은 크게 엇갈린다. 하나로는 쉽게 ‘담합’을 인정한 반면, KT는 “절대 담합이 아니다”며 부인 전략으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어떤 이유로 이 두 회사의 태도가 갈렸는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최고의 논쟁거리로 떠오른 시내전화 담합 건에 대해서 KT는 “2003년 하반기부터 시행해온 번호이동성제도에 앞서 시장의 독점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정부의 행정지도 등이 있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내전화 사업 후발주자인 하나로의 점유율이 본 궤도에 올라야만 당시 사업권 부여의 배경이었던 유효경쟁 체제에 이를 수 있었다는 점을 담합의 원인으로 소구하는 셈이다.

KT, 적과 동침하다 당했다?

국내 최대의 로펌인 김&장은 KT와 하나로 양쪽을 대리하면서 법조계에 논란을 불러왔다. KT(아래 왼쪽)와 하나로통신 건물.

이에 반해 하나로는 “당시 99%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가진 독점사업자 KT가 순차적으로 가입자를 넘겨주겠다며 요금 인상을 제한했다”고 순순히 공정위에 자백하고 나왔다. 이 같은 차이로 두 회사의 관계는 한순간에 차갑게 식었다.

이는 공정위의 전략 변화가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KT와 달리 하나로는 힘겨운 구조조정 과정을 견뎌온 데다, 외국계 자본(뉴브릿지캐피털과 AIG 등)이 대주주가 되면서 만일 공정위의 매서운 과징금 방망이에 휘둘릴 경우 회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처지였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하나로는 KT와 달리 조사에 적극 협조해 KT와의 담합 사실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덧붙여 “하나로의 전략은 공정위 수사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회사의 이익을 도모했고, KT는 과징금이 너무 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는 처지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KT에 대한 고액의 과징금은 이미 예고된 절차라는 것.

한편 KT가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에 나서겠다는 등 뒤늦게 호들갑을 떤 데 대해 업계는 “이해한다”면서도 “핵심을 잘못 짚었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KT가 공정위가 아닌, 이번 소송을 대리한 ‘김&장’에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는 냉소 섞인 반응까지 나오는 상황. 언뜻 보면 의아스러운 해석이지만, 담합의 직접 당사자인 KT와 하나로, 그리고 이들을 법률적으로 변호한 김&장과의 관계를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장은 이번 공정위 조사의 이해 상충자인 KT와 하나로 모두를 대리했다. 애당초 하나로와 함께 공정위 조사에 대응하던 김&장은 이후 뒤늦게 찾아온 KT의 의뢰 역시 수락, 공정위 조사에 응했던 것.

“공정위 처지에서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김&장에서는 양쪽을 대리하는 변호사 간의 정보 교류 같은 것은 절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변호사 윤리와 관계된 내용이기 때문에 공정위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공정위 경쟁국 허선 국장)

상식적으로 하나로가 공정위 조사에 자복하고 담합을 시인하고 나섰다면, 이는 KT의 혐의 내용을 공정위에 제보한 꼴이 된다. 그런데 김&장은 반대로 KT의 법률 대리를 하면서 “KT는 담합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소명 자료를 공정위에 제공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로는 과징금이 24억원에 머물러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반면, KT는 공정위 조사에 정면으로 대항하다가 끝내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얻어맞은 모양새가 됐다.

KT, 김&장 모두 “논란 이해 안 돼”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KT와 하나로 모두 공정위에 강한 면모를 지닌 김&장을 잡으려 한 것 같다. 한쪽의 정보가 상대편으로 흘러갈까 걱정했는데 김&장은 꽤 엄격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이해가 상충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하나의 변호인이 양쪽을 변호할 수 없게 돼 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상대편의 허락을 얻어야 가능하다.

그럼에도 문제는 양쪽을 동시에 대리하고 나선 김&장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형식적이나마 로펌의 형태를 갖춘 김&장이 고객사인 두 회사의 이해 상충에 대해 몰랐을 리 없었다는 것.

만일 그 사실을 알았다면 변호사법에 따라 KT와 하나로 통신에 양해를 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한쪽을 포기하는 게 합당한 절차였다.

현재까지 KT와 하나로, 그리고 당사자인 김&장 쪽은 법조계의 논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KT 박찬호 법무팀장은 “회사에 득이 되는 최고의 로펌을 선택했을 뿐이다”는 반응을 보였고, 하나로 도종록 법무팀장 역시 “로펌의 이름보다는 담당 변호사들의 개인적인 역량이 더욱 중요했고, 더구나 김&장 쪽에서 KT 수임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했기 때문에 문제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장 역시 업계의 비난에 대해 “우리는 ‘법무법인’이나 ‘합동법률사무소’가 아닌 개개 변호사들의 모임, 즉 공동사업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윤리 문제에 저촉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이번 일은 이해 상충 사건이 아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법조계는 의문을 던진다. 우선 공정위가 직권조사를 통해 담합 혐의를 포착하고 심층조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김&장이 하나로의 전략을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양사의 이익이 상충되지 않지만 내용적으로는 상충된다는 사실을 알고 KT 의뢰를 수임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한 로펌의 K 변호사는 “김&장이란 조직이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조직력을 자랑해왔는데, ‘법무법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실질적 이해 상충 사건을 동시에 수임한 것은 실망스러운 선택이다”고 말했다. 중소 로펌의 L 변호사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종종 국내 로펌에서 이해 상충 사건을 동시에 수임하는 경우 양쪽 변호사들의 교류를 완전 차단하는 ‘차이니즈 월(만리장성)’ 조치가 필요하다. 이는 강제 규정보다 자체적인 윤리 문제가 뒷받침돼야 하는 일로, 앞으로 우리 법조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법조계 인사들은 변호사법의 미비를 이유로, 선진화된 로펌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국내 최고(最古)이자 최대(最大)의 로펌 김&장이 변해야만 국내 로펌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주간동아 2005.06.14 489호 (p36~38)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8

제 1218호

2019.12.13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