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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체험여행|부래미마을

갈대 우거진 생태공원 짱이야

  •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갈대 우거진 생태공원 짱이야

갈대 우거진 생태공원 짱이야

시골에 오면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잘 논다.

봄도 되고 했으니 땅기운을 맛보기 위해 농촌체험 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물색하다가 부래미마을을 주목하게 됐다. 마을 사진을 보니, 야트막한 집들이 물가에 모여 있는 한적한 풍경이었다. 동네 이름도 우리말 같아 친근하다. 그 마을에 연락했더니 한 가족이 와도 농촌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부래미마을은 경기도 이천시 율면 석산2리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앞의 큰 팻말에 마을 안내도가 그려져 있다. 저수지를 지나니, 십장생도와 송아지 몰고 가는 아이의 벽화가 그려진 마을회관이 있다. 새로 지은 마을회관에서 농촌체험 행사를 관장하는 사무장 최형두 씨가 나왔다. 지난해 결혼해 아내와 함께 이 마을로 들어온 젊은이로, 마을의 복덩이다.

체험행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우당도예원으로 향했다. 마을 안쪽에 자리잡은 도예원을 찾아가는데 부래미사슴목장, 고추농장, 동물농장, 복숭아농장 팻말들이 눈에 띄었다. 촌마을이라고 하여 ‘그냥 농사 조금 짓고 닭이나 돼지 기르는’ 줄 알았는데, 열심히 농사짓고 정성껏 가축을 기르는 심성이 느껴졌다. 마을 안쪽 산자락 사이에 도예원이 있었다.

경북 청송에서 80년대 중반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제 40대 초반에 들어선 가장들이 이끄는 대여섯 가족이 모여 있었다. 조촐한 동창 모임을 이 마을에서 하는 중이었다. 도예원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염색과 도자기 만들기였다. 체험행사의 원조 격인 프로그램들이다. 도자기 만들기는 일반 축제나 체험장에 감초처럼 들어가는 행사다. 염색도 마찬가지. 그중에서도 황토염색이 가장 흔하고 쉽게 할 수 있는 행사다. 우당도예원에서도 이 두 가지를 주로 한다. 손맛을 볼 수 있고, 만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또 완성된 물건을 가져갈 수 있으니 딱 좋은 체험행사다.

황토염색 체험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안 되었는데도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 바비큐 불 위에 된장국을 올려 식사를 하고 오후 첫 행사로 도자기를 구운 다음, 마을회관으로 내려가 두 번째 행사인 인절미 만들기를 했다. 부녀회장이 찹쌀고두밥 10kg을 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된 농기구와 짚공예품을 전시해둔 마을회관 창고에 떡판을 깔았다. 인절미를 많이 먹어보긴 했지만 떡메는 처음이라며 어른과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떡메를 쳐댔다. 웃음소리가 떡메 치는 소리만큼 높았다.



갈대 우거진 생태공원 짱이야

생태공원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마을 이장 이기열 씨(왼쪽),분양받은 배나무에 이름표를 달아놓았다.

20분쯤 떡메를 치고 나니 찰진 떡덩어리가 되었고, 부녀회장이 풀어놓은 콩가루 옆에 모여 앉아 모두들 인절미를 뭉친다. 체험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먹는 것을 만들고, 만든 것을 먹는 행위다. 이런 행사가 반드시 들어가야 사람들의 본능적인 만족도가 올라간다. 그런 점에서 인절미 만들기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켜주는 행사였다.

갈대 우거진 생태공원 짱이야

도자기 만들기는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찰흙공예 시간이다.인절미를 만들기 위해 떡메를 치고 있다.마을회관 앞에서 굴렁쇠를 굴리고 있다(왼쪽부터).

다음은 마을 이장의 안내로 짚공예 체험장으로 이동했다. 비닐하우스 안에 짚멍석을 깔아둔 곳으로, 겨울에도 난방이 잘된다고 한다. 두 손을 비벼서 새끼를 꼬는 것이 기본 교육이다. 그런데 참여한 가장들이 시골 학교 출신들이라, “아빠는 어려서 이거 제대로 못 꼬면 할아버지한테 두들겨 맞았어!” 하면서 잘도 꼰다. 마을 이장 이기열 씨는 가르쳐줄 것도 없다면서 누가 길고 곱게 꼬는지 경합을 붙인다. 가장 잘 꼰 사람에게는 우당도예원에서 빚은 도자기 한 점이 경품으로 주어졌다.

이 정도의 프로그램이라면, 부래미마을은 다른 농촌마을의 체험행사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부래미마을에는 특별한 게 있다. 마을 이장 이 씨가 “생태공원에 가보자”며 앞장을 섰다. 생태공원이라 하여 도심 속의 공원이나 식물원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마을에 습지가 있다. 농사를 지으면 질 좋은 벼를 수확할 수 있는 땅이었는데, 몇 해 묵혔더니 갈대가 우거지고 새들이 찾아오는 습지로 변했다. 그 습지 위에 400m가량 되는 나무 통로를 만들었다. 습지에 연꽃 같은 예쁜 식물을 심을까 했는데, 생태학자들의 의견에 따라 그대로 둔 상태다. 이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식생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주 소박하고 따뜻한 산책로이자, 자연학습장이다.

생태공원 위쪽에 우렁이양식장이 있다. 이 마을이 장차 우렁이마을이라는 별칭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마을 앞 저수지에 우렁이가 사는데, 그 우렁이의 일부를 양식장으로 이주시켜 길러서 우렁쌈밥이나 우렁이회 따위의 마을 특화음식을 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은 정보화 마을답게 인터넷이 잘 보급돼 있다. 인터넷을 이용해, 체험행사 진행의 일부분을 담당한다. 50명이 한꺼번에 찾아와도, 마을회관 체험관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반찬은 미리 준비하는데, 집집마다 준비해둔 반찬이나 음식을 구매한 다음 부족한 반찬거리는 집에서 별도로 마련한다. 풍물 가르치는 이는 풍물교육을, 민박 담당은 민박을 맡아 약속된 시간에 담당자가 나와서 사람들을 인솔해간다. 배밭과 복숭아밭이 많은데, 배나무는 봄철에 한 그루당 12만~13만원씩에 분양한다. 분양받은 이들은 꽃 솎아줄 때, 열매봉지 쌀 때, 열매 딸 때 마을을 찾아와 농사체험을 한다. 배나무를 분양한 농장주인은 배나무를 도맡아 기르면서 주기적으로 배나무의 성장 상태를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려준다. 따라서 배나무를 분양받은 가족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배나무의 상태를 살필 수 있다.

부래미마을에서 자랑하는 것은 현대식 건물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전통가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소박한 시골 풍경 그대로를 지닌 곳이다. 겉보기에는 젊은 사람들이 떠나간 한적한 농촌마을과 다를 바 없지만,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무덤 앞 넓은 잔디밭은 게이트장으로 쓰이고 으슥한 산비탈은 눈썰매장이 되며 마을 뒷동산은 산책로가 된다. 배꽃이 피고 복숭아꽃이 피면 꽃잔치를 하고, 농촌마을 풍경화 그리기 대회도 연다.

내 고장에 대한 자부심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시멘트 벽에 둘러싸여 사는 도시인들에게 문득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소박하고 훈훈하고 자연스러운 정서로 가득 찬 곳이 부래미마을이다.



주간동아 2005.05.10 484호 (p86~87)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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