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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영화인ㅣ‘댄서의 순정’ 문근영

춤·사랑에 빠진 ‘온 국민의 여동생’

춤·사랑에 빠진 ‘온 국민의 여동생’

춤·사랑에 빠진  ‘온 국민의 여동생’
아이, 참. 아직 인터뷰 기사를 쓰지도 않았는데 그녀에 관한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웃음에 인색한 사람이라도 그녀를 생각하면 빙긋 웃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전 국민의 여동생, 문근영.

이 정도니, 엉성한 영화적 완성도에도 ‘어린 신부’가 전국 315만명 동원으로 2004년 흥행 성적 5위를 기록했을 것이다. 그녀처럼 10대의 헤로인이었던 TTL 소녀 임은경을 주연으로 한 ‘여고생 시집가기’나 인터넷 10대 얼짱들을 모아 여중생의 임신 이야기를 그린 ‘제니, 주노’ 등 짝퉁 영화들이 쏟아져나왔지만, 어떤 영화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왜? 문근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이는 ‘어린 신부’의 성공이 아이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문근영 개인기에 의한 것이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해준 것이다.

그녀의 최근작 ‘댄서의 순정’도 마찬가지다. 4월 마지막 주 예매율 76.72%를 기록하며 ‘태극기 휘날리며’의 76%를 뛰어넘는 예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같은 주에 개봉하는 ‘트리플X2’나 ‘착신아리2’가 상대적으로 경량급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무서운 수치다. 예매된 티켓량의 절대 비교에서도 그 전 주에 예매율 1위를 기록했던 ‘어바웃 러브’의 총량을 5배나 넘어섰다.

주간 예매율 76.72% … ‘태극기 휘날리며’ 기록 경신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는 동안,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전개며 엉성하고 조악한 세트, 팬시 강박증에 걸린 연출 등 온통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라서 마구 불만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다 소용없는 짓이다. 문근영만 등장하면, 말도 안 되는 그 모든 것들이 용서가 되는 것이다. ‘아즈바~이’, 애간장을 녹이는 옌볜 사투리를 날리며 그녀가 커다란 눈을 껌벅대면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이런 나를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둥 특별한 시선으로 해석하려 한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문근영이 출연한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문근영이라는 이름은 세속의 더러운 때가 묻지 않은 청정 무공해지역의 산소다. 그녀의 힘은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와 웃음으로 우리를 정화해주는 데서 발휘된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것은 재미와 웃음이 아니다. 그녀의 존재감만으로도 우리는 맑은 기운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문근영은 부정적인 이미지 일색이던 10대 캐릭터를 물리치고, 긍정적이고 건강한 모습을 스크린 속에 복원해냈다. 그녀는 1970년대 임예진 이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사회가 시작되기 전 녹색 조끼에 보라색 주름치마를 입고 무대에 오른 문근영은 “순정만화 같은 영화입니다. 열심히 했으니 편안하게 보세요”라고 인사했다. 시사회가 끝난 뒤 만난 그녀는 화면과 똑같은 모습이다. 실제로 만나보면 화면과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들이 많다. 특히 여배우는 얼굴조차 달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문근영은 화면에서 만난 바로 그녀였다. 그러므로 ‘어린 신부’의 귀엽고 깜찍한 서보은이라는 캐릭터를 문근영과 동일시하는 시선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캐릭터는 문근영의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춤·사랑에 빠진  ‘온 국민의 여동생’

그녀의 캐릭터를 100% 활용한 영화 ‘어린 신부’(위)와 문근영이라는 배우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영화 ‘장화, 홍련’.

어린 신부 문근영이 숙녀가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가 ‘댄서의 순정’이다. 옌볜에서 온 열아홉 살 장채린이 댄스스포츠의 유망주 영새와 위장결혼을 한 뒤, 그의 댄스 파트너로서 춤을 배우며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담았다. 라틴댄스 스포츠 삼바의 화려한 볼거리와 순박한 옌볜 소녀가 사랑에 빠지며 성숙해가는 멜로가 결합된 이 영화는 오직 문근영 원톱으로 전개된다. 영새 역의 박건형은 뮤지컬계의 스타이긴 하지만, 문근영이 화면에 등장하면 다른 배우의 무게감은 사라지고 오직 그녀에게로만 시선이 집중된다.

배역 소화하느라 옌볜 사투리·라틴댄스 집중 연마

노래방에서 철부지처럼 막춤을 추며 ‘난 아직 사랑을 몰라~’를 부르던 서보은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을 우리는 ‘댄서의 순정’의 장채린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여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댄서의 순정’에서 문근영은 옌볜 출신답게 ‘첨밀밀’로 국내 관객들과도 친숙한 등려군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영화는 지나치게 문근영의 존재감에 의존하고 있어, 내러티브의 미숙함이나 연출의 엉성함을 드러내고 만다. 라틴댄스 스포츠는 특히 여성의 커다란 골반을 상하 좌우로 튕기면서 탄력을 받는 하체의 섹시함이 강조된다. 그러나 문근영의 골반은 그렇게 크지 않다. 아무리 그녀가 하루에 10시간씩 석 달을 연습해서 다리 찢기도 하고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라틴댄스와 잘 어울리지는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라틴댄스에서도 삼바는 대중적으로 보급돼 있는 살사보다 국내 동호인 수도 매우 적다. 만약 이런 식의 영화가 계속 반복해 나온다면 문근영의 발전을 위해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문근영의 영화 출연은 가족회의를 통해서 결정된다. 참석자는 세 사람. 문근영, 그녀의 어머니, 그녀의 외할머니. 집안의 여성 3대가 모여 회의를 하는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광주시청 공무원이고 어머니는 도서관 사서이며, 외할아버지는 통혁당 재건 사건으로 30년 동안 복역했던 장기수 류낙진 씨다. ‘처녀로서 키도 커지고 몸매도 날씬해질 것 같다’는 이유로 외할머니 신애덕 씨가 강력 추천한 작품이 ‘댄서의 순정’이다.

‘댄서의 순정’ 장채린은 옌볜 조선족 자치주 댄스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언니의 신분으로 위장해서 한국으로 들어온다. 새로운 춤 파트너와 함께 댄스스포츠 경연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려는 영새의 초청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열아홉. 신분이 들통나자 매니저는 밤무대 나이트클럽에 그녀를 팔아넘기지만, 영새는 장채린을 구출해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온다. 처음 신어보는 하이힐 때문에 뒤뚱거리다가 발목을 삔 장채린. 영새는 그녀의 발목을 부드럽게 씻겨준다. 그리고 춤을 가르쳐준다. 영새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는 장채린. 문근영 역시 이처럼 가슴 떨리는 첫사랑을 경험해보았을까?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좋아했던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겪은 사랑에 대해 돌이켜보았더니 그게 사랑이 아니었나 생각되는 친구가 있긴 있었어요. 아주 친한 친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그리고 이제 와서 그리움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그게 사랑이 아니었나 싶어요.”

춤·사랑에 빠진  ‘온 국민의 여동생’

문근영을 위한, 문근영에 의한, 문근영의 영화 ‘댄서의 순정’.

문근영은 ‘댄서의 순정’에서 두 가지를 배워야만 했다. 하나는 옌볜 사투리고, 다른 하나는 라틴댄스다. 옌볜 사투리는 조선족 출신들의 말을 녹음해서 익혔는데, ‘댄서의 순정’에 출연한 김지영에게서도 도움을 받았다.

“지영 언니가 전에 한중 합작 드라마를 하면서 6개월 동안 옌볜에 머무른 적이 있대요. 그래서 옌볜 사투리를 참 잘해요. 지영 언니한테서도 많이 배웠어요. 또 상하이로 광고 포스터 촬영하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옌볜까지 가서 사투리를 잘하는 언니를 만나 실력이 부쩍 늘었어요.”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라틴댄스. 춤 실력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어서 그녀는 3개월 동안 강훈련을 해야 했다. 다리에 멍이 드는 것은 기본이고 발톱이 빠지기도 했는데, 덕분에 신체 곡선이 소녀에서 여인으로 변해갔다는 것이다. 골반이 튀어나오고 허리가 잘록해졌다.

“연습 2주일째부터 7cm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었는데, 하이힐이 익숙하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원래 발 사이즈는 235mm인데, 부상 위험이 있어서 춤 연습할 때는 한 치수 작은 신발을 신어요. 225mm를 신고 연습을 해서 물집도 생기고 발톱도 빠지고 그랬지만 한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졌어요.”

현재 대입시 앞둔 고교 3학년생 … 촬영 없는 날은 공부하느라 녹초

라틴댄스를 추는 사람들은 ‘손맛’이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혼자 추는 춤이 아니라 항상 파트너와 함께 추기 때문에 상대 파트너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로 손을 맞잡았을 때 손을 통해 전해져오는 느낌이 상대에 따라 다 다르다. 문근영 역시 영화 속의 춤 파트너였던 영새 역의 박건형과, 또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춤을 추어야 했던 무도계의 비열한 실력자 윤찬과의 춤이 어떻게 달랐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손맛’이라는 전문용어를 쓰며 대답했다.

“손맛이 달랐어요. 박건형 오빠는 뮤지컬 스타답게 능숙하고요, 윤찬 오빠는 춤을 배우기는 무척 힘들었지만 추는 동안에는 모든 것을 다 잊고 그 속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주 순수해지거든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것이 ‘문근영 때문’이라는 사실을 혹시 아는가? 문근영이 연기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한 연극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가 계기가 되었다. 학교 친구들과 그 연극에 참여한 문근영은 그때부터 연기의 세계에 강한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어머니를 졸라보았지만 ‘광주 촌년이 무슨 배우냐. 꿈도 꾸지 말라’는 핀잔만 듣는다.

그때가 1997년,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였다.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김대중 후보가 출마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가 당선되지 못할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문근영은 정치가 뭔지 모르지만 어머니와 내기를 했다. 만약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 연기학원에 보내주기로. 그리고 그녀는 연기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지난해 6월 대종상 시상식에서 ‘어린 신부’로 신인여우상에 이어 인기상까지 거머쥔 문근영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면서 “어떡하죠. 상을 두 개나 받아버렸어요”라고 말했다. 이 말이 한동안 유행어가 될 정도로 회자된 것은, 그 속에 녹아 있는 그녀의 순진무구함 때문이었다. 세속의 때를 그녀의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문근영의 대중적 인기는 CF에서도 확인된다. 최근만 해도 삼성전자와 5억원, 롯데칠성과 3억원의 계약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돈을 모른다. 그녀는 선행천사다. 교복 CF로 받은 3억원을 소아암 환자를 위한 사회복지기금으로 내놓았다. 또 네 차례에 걸쳐 1억원의 돈을 장학기금으로 기탁했다. 그것도 일부러 언론에 알린 게 아니라 세무서 신고 과정에서 밖으로 새어나온 것이다. 얼마 전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부의금 전부를 통일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본인은 다 부모님들이 알아서 하시는 일이라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돌린다. 더구나 그런 선행이 ‘누구에게 준다, 혹은 베푼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회에다 너의 사랑을 저금한다고 생각하라’는 어머니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면, 이 순진무구한 배우가 저절로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광주 국제고교 3학년인 문근영은 촬영이 없는 날이면 밤 12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한다. 공부하다가 졸 때면, 친구들이 “얘들아, 근영이 존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라”라고 하며 장난 치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고 잠이 싹 달아난단다. 올해 대학에 가야 하는데 어느 대학에 갈까? 과는 연극영화과? 그녀의 꿈은 도덕 선생님이 되는 거였다. 그 많은 과목 선생님 중에서도 도덕 선생님이라니. 그런데 문근영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을까?

“루팡처럼 은행강도가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작년 5월 주민등록증을 받으면서 절망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요정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어릴 때 요정이나 천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거기 찍혀 있는 지문을 보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아, 이제 은행강도가 되는 것도 틀렸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내 지문이 등록되어서 루팡처럼 은행 털기는 틀린 거지요.”

하하. 어찌 이 배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언젠가 만년 소녀, 전 국민의 여동생 문근영도 진짜 사랑을 하고, 영화 속에서 키스신도 찍고, 그녀의 소원대로 와이어 무협 액션영화도 찍고, 혹은 악의 없는 악역을 하는 날도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믿는다. 그녀는 성인으로 변해가겠지만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리고 무슨 역을 해도 그녀의 이 순수한 본바탕은 변치 않으리라는 것을.

문근영은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장에서 공로상을 받은 황정순 씨의 소감 장면을 보고, 자신도 여든 살이 됐을 때 저 무대에 올라서 소감을 말하는 모습을 꿈꾸기 시작했다. 평생 연기를 하며 열심히 살겠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그녀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나는, 아마도 그녀가 여든 살이 되어 공로상을 받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겠지만, 여든 살이 된 어린 신부 문근영 씨가 후배들 앞에서 뭐라고 말할지,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잡히는 듯하다. 그 모습을 보고 또 누군가 연기에 대한 열정을 태우며 열심히 노력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게 인생이 아니겠는가.



주간동아 2005.05.10 484호 (p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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