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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한-미 ‘개념계획 5029’의 오해와 진실

논란의 핵심은 북한 급변사태 시 주도권의 문제 … 동맹 균열·국가 자존심 훼손과는 거리 멀어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한-미 ‘개념계획 5029’의 오해와 진실

한-미 ‘개념계획 5029’의 오해와 진실

한미연합군의 도하훈련.

최근 작전계획 5029-05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작전계획 5029-05가 합의되지 않은 것은 한미동맹이 무너지는 증거라는 주장이 있었는가 하면, 이를 합의해주는 것은 국가적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라는 비난이 있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진실에 가까울까.

영어로는 ‘Operation Plan’이어서 OPLAN(‘오 플랜’이라 한다)으로 약칭되는 작전계획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군사전문가들에게만 맡기기에는 국민의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고, 그렇다고 작전계획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 또한 이적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논란이 된 마당에 작전계획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허황된 논의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작전계획(작계)의 대표는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5027이다. OPLAN 5027은 1974년 미 태평양사령부 주도로 처음 만들어졌다. 그해를 명시하기 위해 작계 5027-74로 불리는 이 작계는, 한국군의 참여 없이 미군에 의해 만들어진 순수 미군 작계였다.

70년대 중반 유엔에서는 한국에 설치돼 있던 유엔사 해체가 강력히 거론되었다. 그러자 안보 불안을 느낀 박정희 정부는 미국과 접촉해, 78년 11월17일 한국군과 미국군으로 구성된 한미연합사(연합사)를 출범시켰다. 그리하여 태평양사령부가 관리해오던 작계 5027이 연합사로 넘어오게 되었다.

1974년 미군이 만든 이후 계속 개정 작업



한국군은 연합사에 대해서는 ‘절반의 지분’을 갖고 있으므로, 이때 처음 작계 5027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93년 북한이 제1차 북핵 위기를 일으켰는데, 이것이 작계 5027의 앞날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북한이 핵무기로 도전해오는 만큼 한-미 두 나라의 군도 대응전략과 전술을 ‘기민하게’ 바꿔야 한다고 판단하고, 2년마다 작계를 개정하기로 한 것. 이렇게 시작된 개정 작업 때마다 한국군은 한국 측의 의지를 강하게 투영했는데, 그로 인해 작계 5027은 점차 ‘한국화’돼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작계 5027-96을 만들 때 한-미 장교들이 벌인 난상토론이었다. 한-미 두 나라 군은 북한군의 도발로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난다면, 한미연합군은 휴전선 이북으로 올라가 북한군 중추부를 무력화한다는 데 대해 의견 일치를 보았다. 하지만 연합군이 점령한 휴전선 이북의 땅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의견이 갈렸다.

한-미 ‘개념계획 5029’의 오해와 진실

군부대를 현지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한국군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 조항을 거론하며, 이곳은 한국 정부가 한국군을 통해 통치하는 대한민국의 ‘수복지역(영토라는 뜻)’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군은 수복지역이라는 용어를 거부하고, 연합사가 관리하는 ‘통제지역’이 돼야 한다고 맞섰다.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은 승리를 하자 바로 이라크 전역을 무대로 군정을 펼쳤다. 다국적군이 군정을 펼친 이라크 전역이 바로 다국적군의 ‘통제지역’에 해당한다. 미군 측은 한미연합군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한미연합사 주도(사실은 미군 주도)로 군정을 펼쳐야 한다며 통제지역이라는 용어를 고집한 것. 밀고 당기던 이 싸움은 2년 뒤 작계 5027-98을 만들 때 한국군은 ‘실질’을, 미국군은 ‘명분’을 얻는 교묘한 타협점을 찾아냈다.

‘연합군이 장악한 북한 땅은 연합사가 군정을 펼치는 통제지역으로 한다. 이 지역에 대한 군정은 연합사 산하의 민사사령부가 펼치는데, 민사사령부의 사령관은 한국군 장성이 맡고 민사부대원도 대부분 한국군으로 편성한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민사사령부를 구성하는 절대 다수의 한국군을 통해 사실상 북한 지역을 통치할 수 있게 된다. …’

한반도에서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휴전선 등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충돌이 커져서 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96년 한국은 강릉으로 침투한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 탑승자를 잡기 위해 큰 규모의 대(對)간첩 군사작전을 벌였다. 이에 대해 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응했다면, 한반도는 순식간에 전운(戰雲)에 휩싸일 수도 있었다.

이러한 위험성을 인식한 한-미 두 나라 군은 96년 우발적인 사건이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새로운 작전계획을 작성했다. 5028로 명명된 이 계획은 그 앞에 우리말 ‘우발계획’을 붙이거나 아니면 우발계획을 영어로 표현한 ‘Contingency Plan’ 혹은 이를 축약한 ‘CONPLAN’을 붙이게 되었다. 한미연합사는 OPLAN 5027과 CONPLAN 5028로 한반도의 위기 시기를 대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99년 한미연합사의 게리 럭 대장은 작전계획 5027과 우발계획 5028로는 대처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성격의 위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게리 럭 대장이 예상한 또 하나의 위험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정권이 무너지듯,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쓰러지는 등의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것.

주도권 갖고 중국군과 단독 대응?

급변사태는 북한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고, 학생들이 봉기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노동자들이 시위를 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대규모 사고가 일어나 중국과 한국으로 수많은 난민이 넘어오는 형태의 것일 수도 있다. 군사적인 상황이 아니지만 일단 일어나면 북한과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가 긴장하는 이 사태에 대해 한미연합군은 군사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게리 럭 대장의 화두였다.

그리하여 한-미 두 나라 장교들이 다양한 논의를 거듭해 “그러한 사태는 결국 급변상황으로 인식하느냐의 문제이고, 급변상황에 대해서는 개념적이고 개략적인 대책만 세울 수 있다”고 판단해 우리말로는 ‘개념계획’, 영어로는 ‘Concept Plan(줄여서 CONPLAN, 우발계획의 약자와 같다)’이라고 한 5029를 만들게 되었다(개념계획은 5029-99가 최초로 나온 것이다).

마침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가 일어나고, 2002년 북한이 농축우라늄 개발 계획이 있다고 밝히면서, 한-미 두 나라 군은 개념계획 5029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특히 미국은 북한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데 주목해, 북한 군인 중 일부가 핵이나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WMD)를 빼내 테러단체에 판매하는 등 북한이 무법천지가 될 가능성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해 개념계획 5029-05를 만들 때 이러한 우려를 제기하며,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한미연합사가 개입해야 한다며 그에 관한 절차를 개념계획 5029-05에 넣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군은 대체로 동의했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미국군과 의견이 갈렸다.

한미연합군이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한다는 것은 대(對)테러전으로 대표되는 ‘전쟁 이외의 군사활동’ 차원에서 개입하는 것인데, 이것이 전시에 해당하느냐, 평시에 해당하느냐가 문제가 된 것이다. 대테러전을 대간첩작전과 같은 평시작전으로 본다면, 이 작전은 한국군 합참이 주도해야 한다(94년 이후 한국군에 대한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 합참에 넘겨졌다)는 것이 한국 측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 판단에 대해서는 한국군 내부에서도 다른 의견이 나왔다. 첫째는 한국군이 북한에 들어간다면 어차피 한미연합군 체제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당연히 미군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법적 해석이 그것이었다. 둘째는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벌어지면 중국도 위기를 느껴 군대를 파병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과연 한국군 단독으로 중국군에 맞설 수 있겠느냐는 매우 현실적인 우려가 그것이었다.

결국 한국군은 개념계획 5029-05 작성에 대해 통일된 의견을 만들지 못했다. 그로 인해 개념계획 5029-05가 미국군 주도로 확정될 것 같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황급히 국방부에 개념계획 5029-05에 대한 합의를 보류시켰다(작전계획과 우발계획, 개념계획은 넓은 의미에서는 전부 작전계획에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개념계획으로 정확히 정리한다). 이것이 개념계획 5029-05를 둘러싼 한국 내부의 시각 차이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위기에 처한 북한의 한 세력이 다급히 중국에 개입을 요청한다. 그로 인해 북한에 들어온 중국군은 ‘북한이 불러서 왔다’는 명분이 있으므로 북한에 친중 정부를 세울 때까지 결코 나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데, ‘북한은 우리 땅’이라는 명분에 집착해 북한 급변사태 때는 한국군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옳을까.

반대로 ‘한국군은 언제까지 미국군에 의존한 군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란 문제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이 의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면 개념계획 5029-05에 대해 섣부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간동아 2005.05.10 484호 (p30~31)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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