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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모두 봄 마중 가자

  • 이원규/ 시인 jirisanpoem@hanmail.net

우리 모두 봄 마중 가자

  • 먹고살기 힘든 날들이지만 이래저래 핑계만 대지 말고, 바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봄 마중을 나가자. 주변의 공원도 좋고 동네 뒷산도 좋다. 오는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서 어찌 또 봄을 보낼 수 있겠는가. 세상사 모든 일이 그러하듯 능동적으로 잘 맞이해야 또 잘 보낼 수 있다. 봄을 잘 맞이한 이는 어느새 봄을 배웅하면서도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르며 탄식조의 애상에만 젖지 않는다.
  • 그 자신이 이미 온몸 그대로 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설레는 일이다. 만남 자체보다 오히려 기다리는 순간이 더 긴장되고 흥분된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만 늦어도 혹시 안 오거나 못 오는 것은 아닐까,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면서 두리번거리게 된다. 안절부절못하는 이러한 심사야말로 상대와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는 촉매제가 아니겠는가.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언뜻 수동적이거나 정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엄청나게 쏟아야 하며, 기다리는 행위 자체가 지극히 능동적으로 전환될 때 기다림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기다림은 대문 앞에서 그저 서성거리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누군가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다. 기다리다 못해 한 걸음 한 걸음 마중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기다림은 제대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공원으로, 들로 나가 북상하는 꽃들을 맞이하자”





저기 봄이 오고 있다. 예정된 도착 시각을 조금 지나 봄의 기차가 기적소리를 울리며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있다. 일주일쯤 늦게 달려온 봄의 기적소리는 소리이자 향기이며 빛깔이다. 경칩이 오기도 전에 얼음 풀린 무논에서 조심스레 산개구리가 목청을 가다듬으면, 섬진강 하구에서부터 매화꽃이 핀다. 꽃잎이 흐르는 섬진강 물빛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해에서부터 힘차게 올라온 황어 떼가 꽃 피는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봄은 그렇게 소리로 향기로 빛깔로 온몸으로 오고 있다. 아니 이미 곳곳에 도착하고 있으니, 고로쇠나무의 수액처럼 우리 몸속에도 봄물이 오르고 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아직 수동적인 기다림에 익숙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자주 아프다. 봄을 기다린다는 것은 분명 설레는 일이지만 밤낮의 기온차가 심한 환절기이다 보니 자주 몸살을 앓거나 입술이 터진다. 오는 봄을 어찌 피할 수 있으며, 가는 봄을 어찌 잡을 수 있으랴만 이미 온몸에 와 닿은 봄이 ‘잔인한 봄’이 될 때 우리는 슬프다. 갈수록 봄이 잔인해지는 까닭은 우리가 이 봄을 온전히 모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날이 따스해지니 그저 외투를 벗고, 꽃이 피었으니 꽃구경이나 가야겠다는 자세로는 일평생 봄을 온전히 모실 수 없다. 먼저 오는 봄을 향하여 걸어가야 한다. 벌떡 일어나 봄 마중을 나가야 하는 것이다.

온몸에 고로쇠 수액이 오르듯이 천천히, 황어 떼가 꼬리를 치며 강물을 오르듯이 낮게 낮게, 매화꽃이 피면서 옆 나무의 꽃봉오리에게 후 입김을 불어 꽃을 피우듯이 속삭이며 속삭이며, 그 매화나무 아래 키 낮은 양푼쟁이꽃과 별꽃에게도 연대의 손을 내밀듯이 따스하게 우리 모두 봄 마중을 가자.

차를 세워두고, 하루 종일 꽃이 피는 속도로 걸어서 봄 마중을 나가자. 북상하는 꽃의 속도는 가을에 남하하는 단풍의 속도와 같지만 이마저 날씨에 따라 하루하루가 다르다. 꽃샘추위가 몰려오면 매화며 산수유꽃들이 그 자리에 잠시 멈춘다. 날씨가 좋으면 하루 백 리 길도 달려가는 꽃이지만 문득 멈출 줄도 아는 것이다.

대개 봄의 꽃들이 하루에 오십 리 길을 북상하니 우리는 반대로 하루 오십 리 길을 걸어서 남하하며 봄 마중을 나가자. 아직 피지 않은 벚나무에게 말을 걸고, 곧 먼 길을 떠날 철새들에게 손을 흔들며, 아직은 시린 강물에 손을 씻으며 봄을 온몸으로 모시자.

먹고살기 힘든 날들이지만 이래저래 핑계만 대지 말고, 바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봄 마중을 나가자. 주변의 공원도 좋고 동네 뒷산도 좋다.

오는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서 어찌 또 봄을 보낼 수 있겠는가. 세상사 모든 일이 그러하듯 능동적으로 잘 맞이해야 또 잘 보낼 수 있다. 봄을 잘 맞이한 이는 어느새 봄을 배웅하면서도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르며 탄식조의 애상에만 젖지 않는다. 그 자신이 이미 온몸 그대로 봄이기 때문이다.

내가 봄이면 송이송이 꽃이 피듯이 마침내 너도 봄이다.



주간동아 2005.03.22 477호 (p92~92)

이원규/ 시인 jirisanpo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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