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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태국 영화 약진의 핵 펜엑 감독

“찍으며 바뀌는 스토리 … 그게 더 매력”

“찍으며 바뀌는 스토리 … 그게 더 매력”

“찍으며 바뀌는  스토리 … 그게 더 매력”

방콕에서 하재봉과 만난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왼쪽). 그의 영화들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어 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냈다.

지금 세계 영화계에선 태국 영화가 무섭게 약진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영화가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의 본상을 모두 수상함으로써 가장 주목받는 아시아 영화가 되었다면, 그 뒤를 잇는 것이 태국 영화다.

세계 영화계에 아시아 영화가 모습을 나타낸 것은 구로자와 아키라의 ‘나생문’이 베니스영화제에 등장했던 1950년대다. 미조구치 겐지와 오스 야스지로 등의 일본인 감독 영화가 소개되었고, 80년대에는 ‘비정성시’의 후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의 대만 영화, ‘붉은 수수밭’의 장이머우 등 중국 영화가, 90년대에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이란 영화가 각각 소개되었다.

“지겨운 것 싫어해 … 사람 마음 움직여야 좋은 영화”

현재 태국 영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이른바 ‘논지 세대’들이다. 97년 ‘멍 버럴리와 일당들’이라는 영화로 데뷔한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은 ‘낭낙’(99년)으로 태국 내에서 ‘타이타닉’의 기록을 누를 정도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논지는 국내에도 소개된 ‘잔다라’(2001년), 한국 합작영화인 ‘쓰리’(2003년)로 대중적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태국 영화의 진정한 주역은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과 위싯 사사나투앙 감독, 그리고 지난해 ‘열대병’으로 태국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던 아핏차풍 위라세타쿤 감독 등이다. 아핏차풍 감독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에도 일본의 쓰가모토 신야 감독, 한국의 송일곤 감독 등과 함께 참여하기로 결정되었다.



논지보다 조금 아래 세대인 펜엑 감독은 62년생으로 뉴욕의 플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태국으로 돌아가 광고 연출을 하다가 ‘펀 바 가라오케’(97년)로 데뷔했다. 그 후 ‘69’(99년), ‘몽락 트랜지스터’(2001년), ‘지구에서의 마지막 삶’(2003년)을 발표했다.

펜엑 감독의 데뷔작을 비롯해서 그의 영화들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되었다. 나는 2004년 베니스영화제 본선에 오른 그의 ‘지구에서의 마지막 삶’을 보고 서늘한 감동을 받았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오랜 파트너인 크리스토퍼 도일이 촬영을 했고 일본 배우인 아사노 타다노부가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는, 아사노 다다노부에게 베니스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방콕의 도서관에서 일하는 일본인 겐지는 죽음에 대한 강박증세가 있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 그는 어느 날 창녀로 일하는 동생을 차에 태우고 가다 말다툼하는 노이를 만난다. 문을 열고 나오던 동생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겐지는 노이를 위로한다. 느리게 움직이는 카메라는 인물들이 마치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찍으며 바뀌는  스토리 … 그게 더 매력”

펜엑 라타나루앙의 대표작 ‘지구에서의 마지막 삶’.

나는 방콕국제영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태국에 도착한 후 펜엑 감독의 DVD를 사 모았는데 ‘몽락 트랜지스터’도 아주 멋진 작품이었다. 시골에 살던 주인공이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도시를 전전하다가 상처받은 후 다시 귀향하는 줄거리지만 스타일 면에서는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다.

인터뷰 장소는 펜엑 감독의 다음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프로듀서의 작업실이었다. 일찍 도착한 나는 그의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벽에 붙어 있는 사진 중에서 강혜정의 모습을 보았다. 사진 위에는 배역 이름이 써 있었다. 잠시 후 안경을 쓴 마른 체구의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번 ‘보이지 않는 파도’에 강혜정씨 출연

-당신의 영화는 매 작품마다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 “내가 만든 영화는 모두 4편에 불과하다. 그래서 아직 나의 스타일이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 성격 자체가 지겨운 걸 싫어해서 한 영화를 끝낸 후에는 다른 방식으로 다음 영화를 찍는다. 그러나 스타일은 다르다고 해도 감독이 의도하는 주제는 동일하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관객들에게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 “내 삶에서 아직 찾지 못한 해답들을 영화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행복은 과연 존재할까.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섹스, 죽음 등 내가 궁금해하는 모든 것을 영화라는 형식 속에서 찾아보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란 무엇인가? |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 그것이 진정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영화들은 제작비가 어떻게 되는가? | “데뷔작인 ‘펀 바 가라오케’는 아주 적은 예산으로 찍었다. 두 번째 작품인 ‘69’는 20만 달러 정도 들었다. ‘몽락 트랜지스터’는 30만 달러 정도, ‘지구에서의 마지막 삶’은 프랑스 일본 네덜란드에서 투자했는데 총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다. 촬영감독에 크리스토퍼 도일, 주연배우로 일본의 아사노 다다노부 등 유명 스타들이 참여해서 출연료가 많이 들었을 것이다. 예산은 프로듀서가 관리하고 나는 잘 모른다.”

-그 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 “‘69’는 그저 그랬다. ‘몽락 트랜지스터’는 태국 박스 오피스에 꽤 오랫동안 머물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최근작 ‘지구에서의 마지막 삶’의 흥행 성적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크게 주목받았다. 유럽 미국 일본 한국 등 전 세계에 소개되었으니까. 이 영화를 보고 미국에서는 나의 다른 영화를 사러 오기도 했다.”

-방콕국제영화제에는 왜 태국 영화인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가? | “방콕국제영화제는 한마디로 장난이다. 영화제도 아니다. 정부는 영화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지도 못한다. 관광산업 육성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 할 뿐이다. 카탈로그에는 좋은 영화들이 들어 있지만 막상 영화제가 시작되고 나서는 상영되지도 않는다. 상업광고에 돈을 쏟아붓고 있고,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영화제를 만들었다.”

-‘몽락 트랜지스터’는 시골에서 도시로 갔다가 상처를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런 구조가 방콕이라는 거대도시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인가. | “나는 방콕에서 태어나 방콕에서 자랐다. 그래서 방콕 밖의 삶에 대한 동경이 있다. ‘몽락 트랜지스터’에는 내 공상을 조금 집어넣었다. 방콕 밖의 생활은 좀더 단순하고 즐거우며 행복할 것이라는. 주인공이 방콕 밖에서 생활할 때는 밝은 모습을 보이다 방콕에 들어오면 뭔가 침침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바뀐다.”

-다섯 번째 작품은 무엇인가? |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는 ‘보이지 않는 파도’라는 작품이다. 이번에 푸껫 지방을 덮친 지진해일(쓰나미)이 연상될지 모르지만, 쓰나미가 오기 훨씬 이전에 기획되었다. 우연의 일치다. 마카오에 사는 일본 요리사가 홍콩에서 일한다. 유람선을 타고 태국으로 가다 그 배에서 한국 여성을 만난다. 오래된 필름 누아르 스타일로 영화를 찍을 것이다. 음식, 섹스, 죽음, 죄의식 같은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그런데 내 영화는 처음 스토리와 달리 찍으면서 이야기가 바뀌기도 한다. 할리우드 영화는 이야기가 완성되면 그 이야기에 맞춰 영화를 만들어가지만, 아시아 영화는 그렇게 만들 예산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영화가 완성되면 처음 계획과 전혀 다른 작품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게 더 진정한 영화 만들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영화들이 더 자연스럽고, 영화만이 가진 고유의 그 무엇이 담겨 있다.

“찍으며 바뀌는  스토리 … 그게 더 매력”

강혜정이 그의 다음 영화에 참여한다.

-한국 배우 강혜정의 사진이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일본 요리사가 만나는 한국 여성 역에 캐스팅하기 위해서인가. | “‘올드보이’에서 그녀를 보았는데, 슬퍼 보이면서도 로맨틱했다. 내가 이상적으로 꿈꾸고 있는 모습이었다.”

-영화 속에서 강혜정이 맡은 한국 여인은 어떤 캐릭터인가. | “주인공 남자가 한 눈에 반하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시간은 매우 짧다. 홍콩에서 푸껫으로 가는 배에서 이틀 정도 만날 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주 비참한 남자지만 이 여자를 만나면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가 행복해지면 여자는 떠나고, 그러면 다시 비참해진다. 그녀는 어떻게 보면 유령일 수도 있고, 천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우 심플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파도’ 역시 해외에서 제작 지원을 받는가. | “일본 홍콩 한국 등에서 제작 지원을 받는다. 한국에선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하기로 했다.”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은 동시대 태국의 다른 감독들처럼 상업광고를 찍어 생활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많은 시인들이 생뚱맞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밤에는 책상 앞에서 시를 쓰듯이, 그는 상업광고를 찍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오히려 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흥행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에게 영화는 상업적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미학이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5.02.08 472호 (p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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