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7

2005.01.04

채식주의자 상어 ‘뉴욕 진출기’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12-30 18: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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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주의자 상어 ‘뉴욕 진출기’
    의인화된 동물들을 다룰 때 가장 까다로운 것은 자연 세계의 먹이사슬을 어떻게 투영할 것인가다. 인간은 먹이사슬의 맨 위에 위치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에게 잡아먹히는 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다른 동물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삶의 일부다. 그러나 이들에게 인간의 지능과 습관을 준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과연 21세기 뉴욕에 사는 노동자 계급의 흑인 청년처럼 행동하는 물고기에게 자연의 순리니 상어의 먹이가 되라고 말하는 게 통할까? 상어들은 어떤가? 윌 스미스나 르네 젤위거처럼 행동하는 지적인 고기들을 잡아먹는 건 죄악이니 더는 고기를 잡아먹지 말고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할 것인가?

    드림웍스의 신작 애니메이션인 ‘샤크’ 역시 이런 존재론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2003년에 나왔던 픽사 애니메이션인 ‘니모를 찾아서’도 어느 정도 그랬다. 해결책은 둘 다 같았고 엉성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채식주의자 상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상어가 고기를 먹어 무섭다면, 그 물고기들이 돌고래나 말향고래를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은 동물들 사이에는 먹이사슬이 존재하지 않나. 그들은 다들 채식 동물들인가.

    그러나 영화는 여기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하긴 ‘니모’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그런 데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 않다. ‘샤크’라는 영화가 관심을 갖는 건 생태계의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다. 허망한 꿈을 좇던 주인공 물고기가 어쩌다가 상어 사냥꾼으로 명성을 떨친다는 이야기도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다. 이들의 제1 목표는 유명 배우들의 목소리와 외모를 빌려 해저 세계 동물들에게 현대 미국 도시의 모습을 이식하는 것이다.

    채식주의자 상어 ‘뉴욕 진출기’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패러디로 일관한다. 윌 스미스가 연기하는 오스카 물고기는 전형적인 빈민가 흑인이다. 반대로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하는 상어는 마피아 보스처럼 행동한다. 이들이 사는 산호초는 의심할 여지 없이 맨해튼의 해저 버전이다. 이들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진짜 흑인이나 진짜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라기보다 이들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들의 패러디다. 의심나면 드 니로와 그의 콤비 감독인 마틴 스코시즈가 목소리를 넣어준 대화 장면들을 한번 보면 된다.

    ‘샤크’의 가장 큰 문제는 영화가 자기가 설정한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해 있다는 것이다. 물고기들에게 슈퍼스타들의 얼굴을 주고 인간처럼 행동하게 하는 장난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영화는 거기에서 도대체 벗어날 줄을 모른다. 결국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회성 농담으로 남고, 그 농담은 처음 30분만 지나면 맥이 풀려버리고 만다.



    ‘샤크’는 기술적으로도 훌륭하고, 보기에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니모를 찾아서’의 강렬한 드라마나 날카로운 위트가 없다. ‘샤크’의 텅 빈 외양은 화려한 허상을 좇지 말고 현실의 삶에 충실하라는 영화의 주제마저 철저하게 배반한다.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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