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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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영화’로울 수 없다.

부산국제영화제 꿈꾸는 예술의 전시장 … 아시아 영상산업 선두주자 자리매김

  • 이명희/ 성균관대 영상학과 강사·영화평론가

    입력2004-10-14 15: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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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다 더 ‘영화’로울 수 없다.

    부산 수영만 야외특설상영관에서 열린 제9회 부산국제 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영화축제로 꼽힌다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세상의 이미지를 바꾸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산국제영화제다. 명화라는 이름을 남발하며 주말마다 안방극장까지 침투하는 폭력물과 터무니없는 스릴러 같은 영화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의 이미지를 꿈꾸는 영화 예술의 전시장으로서 구실이 해마다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9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7일 저녁 맑은 가을 날씨와 바다 공기가 상쾌한 해운대 수영만 야외상영장에서 배우 안성기와 이영애의 사회로 팡파르를 울렸다. 개막식에 인기 배우들과 영화감독들이 들어서자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열렬히 환영했고, 개막작 ‘2046’을 만든 왕자웨이(王家衛) 감독과 량차오웨이(梁朝偉)가 나타나자 환호성은 절정에 달했다. 개막식에는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 이미경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등 여러 명의 정치인들이 참석했지만 관객은 박수 한번 없는 싸늘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대중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스타들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올해로 9회 … 개막작 ‘2046’ 실험적 영상감각 과시

    개막작 ‘2046’은 5000석이나 되는 입장권 인터넷 예매가 4분50초 만에 매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양연화’에 뒤이은 영화의 줄거리와 주제가 이번엔 좀 복잡해졌다. 1960년대에 호텔방 2046호를 중심으로, 량차오웨이가 펼치는 옛 애인들과의 사랑 편력과 감독 자신의 지난 영화들에 대한 끝없는 기억과 연상을 통해 영화는 두 겹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동시에 사랑이란 알레고리를 통해 중국과 홍콩의 관계를 풀어낸다.

    2046년은 중국에 홍콩을 반환한 지 50주년이 되는 미래의 시간이다. 과거 지향적이어서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사랑이란 구애와 거부, 행복한 만남이면서도 맺어질 수 없는 슬픈 관계로서 반복된다. 중국배우 궁리, 장쯔이 등이 나눈 초호화 캐스팅의 역이 대단히 상징적이다. 이 영화가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사랑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라고 밝힌 왕자웨이 감독은 대중을 매료하는 발군의 음악 감각과 실험적인 영상 감각을 또다시 과시했다.



    칸영화제에 미완성으로 출품되었던 ‘2046’은 재촬영과 재편집을 거쳐 부산에서 세계 최초로 완성본을 선보이는 월드프리미어가 되었다. 김지석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는 올 영화제의 중요한 특징이 40편이나 되는 월드프리미어라고 강조했다. 세계의 세일즈와 배급자들을 더 많이 참가케 하는 것과 동시에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신인감독의 데뷔 장으로서 본격화했다는 신호이며, 아시아 영화인에게 가장 중요한 영화제가 되었다는 증거”라고 밝힌 그는 앞으로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영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영화’로울 수 없다.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룬 남포동 영화의 거리.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여 독립영화 제작이 공식적으로 가능해진 만큼 앞으로 중국 영화가 부흥할 조짐이며, ‘안식처’나 ‘아름다운 세탁기’ 등을 소개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았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영화가 열악한 제작 환경에도 불구하고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와이 순지의 ‘하나와 앨리스’는 순수하고 당의정 같은 이야기로 젊은 팬들을 사로잡았고, ‘서바이브 스타일 5’의 상상을 초월하는 표현력은 일본 영화의 힘을 자랑했다. 재일동포 감독 최양일의 ‘피와 뼈’, 사카모토 준지 등 일본영화의 강세도 특히 눈에 띈다. 일본에서 관광차 온 한류의 팬들도 많고, 일본 언론의 참가도 많아졌다. 일본 문화성은 다음달 서울에서 ‘일본영화: 사랑과 청춘’이라는 특별전을 열 예정이기도 하다. 해외에서 주최하는 최초의 일본 영화 상영사업이면서 우리나라에서 일본 문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기회가 된다.

    전양준 세계 영화 부문 프로그래머는 아시아를 제외한 48개국에서 온 180편의 신작과 함께, 독일영화 특별전과 그리스의 거장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전작을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독일 영화 언론과 문화 외교 담당자들의 열성적인 참가가 10월9일 토요일을 뜨겁게 달구었다. 독일도 일본에 질세라 ‘뉴저먼 시네마’ 특별전을 대대적으로 개최한다는 기획을 발표했다. ‘유랑극단’, ‘사냥꾼들’, ‘시테라 여행’, ‘양봉꾼’ 등을 통해 시간이란 주제에 천착한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핸드 프린팅을 통해 부산에 거장의 흔적을 남겼다.

    유럽영화진흥기구(EFP)는 한국에서 개봉하는 유럽 영화에 재정적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고, 호주의 관계자들이 대거 참가하는 등 문화와 산업의 시너지 효과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걸 증명하는 듯하다.

    이보다 더 ‘영화’로울 수 없다.

    10월8일 열린 우리나라 이영애와 중국 량차오웨이의 공동 인터뷰.

    “전 세계 영화 제작자에게 중요한 행사”

    영화산업적 프로그램으로서 영화 기획마켓인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도 7회째 개최됐다. 올해의 특징은 영화 수출을 더 활성화하기 위한 아시아와 한국 영화의 마켓 시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PPP에 참가한 프랑스 제작자 알리스 잘라도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전 세계 제작자에게 정말 중요한 행사다. 아시아 영화와 합작하길 원하는 유럽 영화인들이 아시아의 모든 영화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라고 칭찬했다.

    산업적 측면에서 또 하나의 기획은 ‘부산국제필름커미션’ 전시회였다. 아시아의 영상위원회들이 참가하여 자국에 영화 제작과 촬영을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특히 ‘반지의 제왕’ 제작을 도운 뉴질랜드 영상위원회의 노력이 부각되었다. 영상위원회는 제작과 촬영을 도와줌으로써 지역산업과 문화의 부가가치를 올리는 서비스 기관이다.

    이보다 더 ‘영화’로울 수 없다.

    여전히 그의 영화는 날카롭고도 섬세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보다 더 ‘영화’로울 수 없다.

    산국제영화제 개막작 ‘2046’과 개막식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왕자웨이 감독.

    그런 점에서 부산은 영상산업에서 선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영화제 내내 확신할 수 있었다. 영화제를 통해 문화를 알리려는 여러 나라의 각축이 돋보였다.

    8일 저녁 열린 ‘프랑스의 밤’에서 프랑스 문화원 영상책임자인 니콜라 피카토는 “영화제에 나온 프랑스 영화 12편은 합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의 재능 있는 감독들도 주저하지 말고 프랑스와 접촉해주길 바란다. 프랑스는 한국 영화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고, 올해 안으로 한·불 합작 협정이 체결되리라고 본다. 이는 한국 정부의 결정에 달린 문제다. 수준 높은 여러 나라 영화를 소개할 수 있는 스크린쿼터의 유지가 프랑스가 주장하는 협정의 관건이다. 이는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해 주목받았다.

    올 영화제에서 다양성은 한국영화 프로그램에도 반영되었다. 허문영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는 배급되기 힘든 독립영화로 남기 쉬운 디지털 장편을 여러 편 소개함으로써 피할 수 없는 기술적 발전인 영화의 디지털화를 일찌감치 포용했고, 상업영화와는 대조되면서도 미래의 한국영화를 일굴 젊은 재능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과 조범구 감독의 ‘양아치어조’가 돋보였는데, 다양성은 ‘크리틱스 초이스’ 부문에서 정점에 달하여 세계 신인들의 독창성과 개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부산은 언제나 영화제의 성공에 기여하는 젊은 영화 마니아로 넘쳐나서 관람티켓을 구하는 일이 거의 전쟁이었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10월 15일 변혁 감독의 ‘주홍글씨’로 막을 내리지만, 부산영화제 주최 측과 스태프들은 이미 10회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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