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6

2004.10.21

개발 들먹이는 충청권 ‘편법 동원’ 해먹었다

기획부동산업자 전격 실토 … “땅 매입~판매 두 달 작업 40여억 챙겨”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10-13 18: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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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 들먹이는 충청권 ‘편법 동원’ 해먹었다

    부동산 개발바람을 타고 있는 공주 지역의 한 대로변에 부동산 매입을 알리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둔 K부동산컨설팅 회사가 충남 홍성군 홍북면 일대 임야 2만평을 매입한 것은 2004년 6월 초. 현지에서 활동 중인 ‘ 똠방’(땅을 모아 부동산업자에게 넘기는 사람)한테서 “괜찮은 물건이 있다”는 연락을 받은 지 불과 5일 만에 성사된 거래였다. 매입가는 평당 15만원으로 총 40여억원대였다.

    K사는 땅을 매입, 계약금을 치른 뒤 곧바로 ‘칼질’에 들어갔다. 칼질이란 작게는 100평에서 많게는 수천평으로 땅을 분할, 투자자들 입맛에 맞추는 작업을 말한다. 이 작업에 소요된 시간은 대략 한 달 전후. 땅을 매입하기 전 지역 부동산업계에 떠돌던 ‘도청 이전설’ 및 ‘지역개발 프로젝트’의 구전 홍보에 K사의 입들이 가세, 개발기대 심리를 최고조로 이끌었다.

    K사는 적절하게 포장한 이 땅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평당 분양가는 33만원선으로 총매도액은 80여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만여평의 땅을 모두 처분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고작 2주일이었다. 이 작업을 지켜본 부동산업자 R씨는 “토지를 분할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 땅 매매는 보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두 달 남짓 작업으로 40여억원의 순익을 챙긴 K사의 기획부동산팀들은 또 다른 황금의 땅을 찾아 인근 서산과 대산으로, 또 일부는 해남과 부안 등지로 발길을 돌렸다.

    미등기전매·다운계약 등 단속의 눈길 감감

    지금은 덜하지만 한때 충청은 기획부동산팀들에게 황금의 땅이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개발기대 심리가 폭발, 손만 대면 ‘톡’ 하고 터졌다. 1980년대와 90년대 부동산 붐을 경험한 서민들은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호재를 외면하기 힘들었다. 기획부동산들은 이들의 주머니 속에 숨어 있는 3000만~5000만원을 주로 노린다. 뒤탈도 없고 ‘쇼부(勝負)’도 빠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온갖 탈·불법이 이뤄지지만 단속에 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들은 정보와 자금, 그리고 조직으로 무장해 날아다니지만, 단속의 손길은 기어다니기 때문이다. 특히 먹이를 찾는 정보와 이를 돈으로 연결하는 조직원들의 움직임은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민첩하고 정교하다.

    이 작전의 출발은 ‘ 똠방’으로부터 출발한다. 홍성군에서 근 1년째 ‘ 똠방’ 생활을 하는 H씨는 5월 말 이른 아침, 면 단위의 한 마을 이장한테서 ‘제법 큰 물건(부동산)이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전에 명함을 주고 “물건이 나오면 연락을 달라”고 그물을 친 것이 생각 이상으로 빨리 효과를 발휘한 것. 이장은 “동네 몇몇 지주가 땅을 팔 계획이며 그들이 예상하는 판매가는 얼마”라는 따끈따끈한 정보를 제공했다.

    개발 들먹이는 충청권 ‘편법 동원’ 해먹었다

    충남 홍성과 인근 지역 지도.

    H씨는 즉각 이장의 안내를 받아 현장을 둘러봤다. 도로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긴 했지만 1만여평이 조금 넘는 대규모인 데다 배산임수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어 제법 쓸 만한 땅이었다. H씨는 즉각 해당 관청으로 달려가 등기를 열람했다. 연락을 받은 담당자가 이미 필요한 모든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준비, H씨의 확인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2차선 도로개발이 예정됐다는 뜻밖의 호재도 확인됐다.

    H씨는 곧바로 자신과 한 팀으로 움직이는 읍내 부동산업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가 관내 정보를 탐문한 뒤 최종 OK 사인을 낸 것은 한나절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직후 서울에 있는 대형부동산 컨설팅 회사에 연락했다. 다음날 새벽 서울에서 내려온 업자들은 현장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매매가는 7억여원.

    투기 광풍 홍성·서산 땅 거래 대금이면 하와이 구입?

    H씨는 계약 성사 후 3000만원 전후의 복비를 챙겼다. 일반인들이 보면 거금이지만 ‘ 똠방’ 세계에서 이 정도는 쌈짓돈으로 치부해도 지나치지 않다. H씨는 인근 지역의 다른 ‘ 똠방’이 5억원에 산 땅을 돌아서서 6억원에 되파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그가 알고 지내는 또 다른 ‘ 똠방’은 수천평의 땅을 확보, 평당 1만원씩 복비를 받고 서울 큰손들에게 넘기는 이른바 ‘데두리(원 안에 별도의 흐름이 있는 것을 지칭하는 일본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K사의 경우 500여명의 직원 가운데 70% 정도가 홍성과 서산에 거주하는 ‘ 똠방’ 등과 한두 번씩 작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부동산업자들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땅을 매집하면서 미등기전매, 분할매각, 위장전입, 다운계약(이중계약, 거래 가격을 실제보다 낮추는 계약) 등의 온갖 편법들이 동원된다. 미등기전매란 최초 토지 취득자가 이를 등기하지 않고 있다가 비싼 값을 받고 제3자에게 넘기는 방식이다.

    2004년 6월22일 현재 충남 서산시 대산읍 기은리 ○○○번지 일대의 등기부상 땅 주인은 김모씨. 김씨는 이날 1000만원을 받고 이 땅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M씨에게 팔았다. 그러나 ‘주간동아’가 입수한 이 부동산의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김씨 소유였던 이 땅이 M씨 소유로 바뀌기 전 또 다른 주인이 있었다. 서울에 본사를 둔 K부동산컨설팅사였다.

    K사의 Y씨는 6월11일 500평에 해당하는 이 땅을 1억2500만원을 받고 M씨에게 팔았다. 말 그대로 미등기전매인 셈이다. K사는 이 일대 임야와 농지 수천 평을 같은 방법으로 매입, 미등기 상태로 전매했다. 부동산업자 R씨는 “홍성과 서산에서 이뤄진 부동산 거래의 90% 이상은 미등기전매”라고 평가한다.

    개발 들먹이는 충청권 ‘편법 동원’ 해먹었다

    서산시 해미면에 위치한 해미읍성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116호).

    K사는 다운계약도 일삼는다. 앞에서 언급한 K사의 홍성군 홍북면 일대 2만여평 임야 매매가는 33만원이었다. 그러나 K사가 작성, 해당 관청에 신고한 계약서에는 18만원으로 기재돼 있다. 이른바 거래 가격을 15만원이나 다운해 신고한 것. 부동산업자 R씨는 “K사의 경우 이 다운계약 하나를 통해 10억여원의 세금을 포탈했다”고 계산했다. K사는 충남 태안군 남면 임야 수천 평도 같은 방법으로 매매, 수억원을 탈세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런 미등기전매와 다운계약은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법률 제3조, 제7조, 법인세법 제112조, 지방세법 제111조, 부동산 중개업법 제15조 6항 등 최소 6개 이상의 관련 법률을 위반하는 범죄행위다. 정부는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미등기전매와 다운계약 특별단속기간을 시행하고 있다. 6월 1383명의 이중계약자를 처벌하기도 했다.

    그러나 ‘업자’들은 정부의 이런 단속 손길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부의 의지도 부족하지만 기획부동산팀들이 워낙 신출귀몰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홍성군의 경우 임야 및 농지의 반 이상이 최근 1년 이내 주인이 바뀔 정도로 부동산 거래가 활발했다. 서산군 지역도 비슷하다. 홍성군의 한 부동산업자에 따르면 이 두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2002년 대선 전과 비교할 경우 평균 4배 넘게 뛰었다. “홍성과 서산군 내에서 부동산을 사고 판 돈을 합하면 하와이를 살 수 있다”는 믿지 못할 말이 나돌 정도. 도청 이전설이 흘러다니는 홍성의 경우 최고 30배 넘게 값이 오른 지역도 허다하다.

    그러나 홍성과 서산 등 충청권의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물에 다다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지적이다. 한 건씩 낚은 기획부동산들은 이미 충청지역에서 속속 철수, 새로운 황금의 땅을 찾아나선 지 오래다. 부동산업자 R씨는 “기업도시 개발, 관광산업도시, 항만·산업단지 및 고속도로 개발 등과 같은 대형 국책사업이 예상되는 지역이 투기꾼들에게는 황금의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수십년 동안 부동산업계에 몸담았던 한 업자는 “부동산 투자의 경우 돈을 버는 10%와 돈을 잃는 90%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투기 광풍이 전국을 휩쓸지만 돈을 벌었다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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