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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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는 온몸으로 피해자 기억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첫 공판 … 혈흔 등 유전자 감식 통해 결정적 증거 확보

  • 강지남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4-09-10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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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치는 온몸으로 피해자 기억했다

    8월31일 현장검증에 나선 유영철과 살인도구로 쓴 망치.

    ”나도 나오지 않아 답답합니다.” 8월31일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 인근 야산에서 벌어진 사체 추가발굴 작업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이날 유영철(34)은 푸른색 수의를 입은 모습으로 현장에 나왔다. 11구의 사체를 발굴한 7월18일 이후 40여일 만이다. 경찰은 2시간가량 유영철이 가리키는 대로 열심히 흙을 파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머리카락 한 올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경찰은 봉원사 인근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검찰은 사체가 빗물에 떠내려갔을 가능성까지 고려해 경찰에 인근 하천까지 조사해보라고 지시한 상태다.

    현장을 지켜보던 경찰과 주민들은 유영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구치소에 있기 답답해서 거짓말한 것 아니냐” “틈틈이 도주할 궁리를 하는 게 아니냐” 등등. 소감을 묻자 유영철은 “나도 사체가 더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고만 짧게 답했다.













    추가 피해자 6명 행방 오리무중

    7월15일 검거된 유영철은 경찰에서 지난해 9월24일 신사동 노부부 살해사건을 시작으로 해 총 26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4건의 노인 연쇄살인사건, 인천 월미도 살인사건,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살인사건, 윤락여성 토막살인사건 등이 유영철이 저지른 ‘연쇄살인 목록’이다. 그러나 경찰이 확보한 피해자는 모두 21명에 그쳤다. 경찰은 이후에도 봉원사 일대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지만 유영철이 주장하는 ‘추가 피해자 5명’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7월26일 경찰은 발굴된 사체 이외의 별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검찰에 유례를 찾기 힘든 연쇄살인사건을 송치했다.

    유영철은 완전범죄를 꿈꿨다. 부잣집에 침입해 사람만 죽였지 물건엔 손을 대지 않았다. ‘작업’이 끝나면 살인도구를 빠짐없이 챙겨 나왔다. 피를 흘리자 방화도 서슴지 않았다. 신원을 감추려는 목적으로 피해자 지문까지 도려냈다. 7월16일 자정 무렵 서울 마포의 기동수사대에서 도망친 직후에는 살인도구와 살인일지를 기록한 수첩을 갖다버렸다. 컴퓨터 파일도 꼼꼼하게 지웠다.

    망치는 온몸으로 피해자 기억했다

    대검 과학수사과는 압수한 유영철 물품에서 피해자 유전자를 확보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유영철이 흘려놓은 퍼즐 조각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최근 풀리지 않은 퍼즐 하나가 해결됐다. 실종된 ‘5월의 신부’가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희생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혼을 하루 앞둔 신부를 살해했다’는 유영철의 진술과 ‘5월16일 결혼식을 앞두고 딸이 행방불명됐다’는 제보가 유전자 감식을 통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이원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법의학부장은 “전씨 아버지와 남동생의 혈액 유전자와 비교한 결과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3구의 사체 가운데 1구가 전씨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로써 유영철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는 모두 22명으로 늘어났다.

    살해도구로 사용된 5kg짜리 망치는 유영철이 4월13일 발생한 인천 월미도 살인사건의 진범이란 사실을 온몸으로 입증했다. 당초 유영철 자백 이외에는 똑 부러지는 증거가 없었으나, 망치에서 피해자 안모씨의 유전자가 발견된 것이다.

    대검 과학수사과는 망치의 고무 손잡이를 세로로 자른 뒤 절단면을 거즈로 닦아냈다. 거즈에 안씨의 유전자 2개가 묻어나왔다. 김종률 과장(부장검사)은 “수많은 피해자들의 피가 묻은 망치이기 때문에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냈다 하더라도 어디엔가 유전자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며 “망치와 손잡이 사이의 미세한 틈을 타고 혈흔이 흘러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부터 서울 신사동, 삼성동, 구기동, 혜화동에서 노인 연쇄살인사건이 차례로 발생했다. 그러나 발견된 증거라고는 신사동을 제외한 3곳 현장에서 나온 260mm짜리 일명 ‘버팔로’ 신발 족흔과 혜화동 골목 CCTV에 찍힌 유력 용의자의 뒷모습이 전부였다. 그러나 최근 유영철 자백을 입증할 만한 증거물들이 확보됐다. K제화 구두의 보조 뒤축과 260mm의 버팔로 신발 구입 기록이 그것.

    숨겨진 신발 보조 뒤축 찾아내

    7월15일 오후 유영철은 기동수사대 승합차를 타고 구기동과 혜화동 살인현장에 나가면서 경찰 몰래 신고 있던 신발의 보조 뒤축을 손톱으로 빼내 차 뒷좌석 아래에 숨겨두었다. 이 신발은 유영철이 지난해 9월13일 출소해 24일 신사동 살인사건 무렵까지 신고 다닌 K제화 제품.

    망치는 온몸으로 피해자 기억했다

    9월 6일 첫 공판에 나선 유영철

    검찰은 승합차에서 숨겨둔 보조 뒤축을 찾아내 신사동 사건 현장의 문짝에 묻은 검은 자국과 대조했다. 국과수 감정결과 둘은 화학성분이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건석 검사(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유영철은 검찰조사에서 증거 인멸을 위해 보조 뒤축을 일부러 숨겨놨다고 털어놓았다”며 “유영철 어머니 집 신발장에서 이 신발의 상자를 찾아내 전주교도소에 수감되기 직전인 2000년 2월 K제화 종로점에서 구입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의 애간장을 태웠던 ‘버팔로’ 신발은 유영철이 지난해 10월4일 구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영철은 검찰조사에서 “10월경 K제화 종로점에서 현금으로 왁스와 함께 버팔로 신발을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K제화에서 판매일지를 넘겨받아 검토한 결과 10월4일 오후 같은 시간에, 같은 판매원에게서, 현금으로 260mm 버팔로 신발과 왁스를 동시에 구입한 단 한 명의 고객을 찾아냈다. 또한 검찰은 유영철의 원룸에서 구두 왁스 상자를 발견했는데, 이 왁스의 바코드는 10월4일 팔린 왁스의 바코드와 똑같았다.

    한편 국과수는 노인 연쇄살인사건 피해자들의 머리에 난 상처와 유영철이 사용한 망치를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 합성하는 작업을 벌였다. 8각형 모양의 망치는 상처에 딱 들어맞았다고 한다. 혜화동 CCTV에 찍힌 용의자 또한 유영철이 맞을까? 국과수는 “감식결과 유영철이었다”고 밝혔으나, 검찰은 이 증거물에 큰 신빙성은 두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원본 테이프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망치는 온몸으로 피해자 기억했다

    “5구를 더 파묻었다”는 유영철 주장에 따라 8월31일 현장검증을 실시했지만 머리카락 한 올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2월6일 발생한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살인사건은 자백말고 별다른 증거가 없는 실정이다. 살해 도구로 쓰인 잭나이프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등에 칼에 찔린 흉터가 없는데도 유영철이 ‘등을 찔렀다’고 진술해 의구심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이제 검찰의 남은 과제는 기소 혐의에 대한 공소 유지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사체 2구의 주인을 찾는 일, 그리고 유영철의 추가 범행 자백의 진위를 가리는 일이다

    유영철은 여전히 “5명을 더 죽였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검찰조사에서 5명의 인상착의에 대한 자세한 진술도 마쳤다. 유영철은 진술 내용을 공개해 실종자 가족을 찾아보자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정말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영혼이 5명 더 있는 걸까, 아니면 유영철의 꼼수에 지나지 않는 걸까.

    사체 유기 장소 엇갈리는 진술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최관수 검사는 “사체 유기 장소에 대한 유영철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고 말한다. 5구를 모두 봉원사 인근이 아닌 제3의 장소에 묻었다고 했다가, 봉원사 인근 야산이 맞다고 하는 식이다. 유영철은 “영등포구치소로 옮겨주면 사체를 묻은 정확한 장소를 말하겠다”며 거래를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첨단 수사기법을 통해 추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대검찰청 과학수사과는 7월30일 유영철 원룸에서 수집해온 130여점의 물품에서 ‘제3의 유전자’를 찾아냈다. 칫솔과 변기 닦는 솔에서 발굴된 21명의 사체 유전자와 다른 2개의 유전자가 나왔다. 살해 도구로 쓰인 망치에서도 1개의 주인 없는 유전자가 나왔다. 김종률 과학수사과장은 “추가 사체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 유전자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며 “실종자 가족들이라도 나서준다면 유전자 주인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영철 검거 후 일선 경찰서에서는 주요 실종자 사진을 갖고 와 유영철에게 들이밀었다. 그러나 그가 살해 사실을 인정한 실종자는 없었다. 엄청난 실종자 수도 곤혹스러운 대목. 4∼6월 실종 신고가 접수된 서울 및 경기 지역에 주소지를 둔 20, 30대 초반 여성만 해도 1200여명에 이른다. 최관수 검사는 “그나마 딸이나 애인이 실종됐다며 유영철의 희생자일 가능성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조차 전무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9월6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연쇄살인사건 재판이 본격화됐다. 최관수 검사는 “현재 피해자가 더는 없다고도, 더 있는 게 확실하다고도 결론 내리지 못한 상태”라며 “재판과 추가 범행 수사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유영철은 추가 범행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재판을 3년 넘게 끌 자신이 있다”고 호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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