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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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사느냐 죽느냐 진검 대결

盧대통령 ‘폐지론 공식화’ 선언 정치권 발칵 … 역사·이념 논쟁과 맞물려 ‘보-혁 힘겨루기’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4-09-10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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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이다. 좀처럼 퇴로를 열어놓지 않는 노무현식 승부수 정치가 절정에 이른 형국이다. 여기서 밀리는 쪽은 앞으로 본격화할 ‘역사 재평가’ 정국에서 완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른바 보-혁 대결의 진검 승부가 펼쳐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9월5일 방영된 MBC 시사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해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필요한 조항이 있으면 형법 몇 조항을 고쳐서라도 형법으로 하고, 국보법은 없애야 대한민국이 문명국가로 간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혀 국보법 폐지론을 공식화했다. 정치권이 발칵 뒤집힌 것은 물론이다. 이제 입법부-행정부-사법부 3부가 총동원돼 국보법을 두고 극한 대립에 돌입한 상황이다. 당초 폐지론과 대폭 개정론, 그리고 부분 개정론과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 등 소수파의 폐지 후 대체입법론이 각축을 벌였지만 대통령이 분명한 태도를 내보임에 따라 폐지론(형법 보완론)과 존치론(개정 불가론)만이 정국을 뜨겁게 달구게 됐다.

    3부 총동원 극한 대립에 돌입

    사실 올 여름까지만 해도 국보법에 대한 전망은 ‘대폭 개정’으로 가닥이 잡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우세했다. 정부와 여당이 최악에 이른 경제 상황과 국내외의 복잡다단한 정세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국보법 폐지를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었다. 결국 대표적인 문제 조항인 제2조(반국가단체)와 7조(찬양·고무죄), 10조(불고지죄) 등에 대해 한나라당과 뜨거운 개정 논쟁을 벌일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같이 더욱 편안한 결론을 추구한 쪽은 오히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소속의 중도파 의원들이었다. 우리당의 중도파격인 유재건, 안영근 의원을 중심으로 한 8인의 의원모임(심재덕 정의용 안병엽 서재관 유필우 박상돈)은 한때 동조자를 29명까지 규합하며 당론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또한 참여정부 개혁성의 상징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불명예’ 퇴진하고, 안정형에 가까운 김승규 장관이 취임하면서 폐지론은 아예 꼬리를 감췄다. 김장관은 취임 직후 “어느 나라든 안보형 사법 시스템이 존재한다”며 존치론에 힘을 실어줬고, 결국 국보법 개폐(改廢) 논쟁은 내년이나 차기 정부로 넘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공세를 취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였다. 8월24일 인권위원회는 10여명의 위원 중 8명이 폐지론을 찬성하며 국가 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국보법 전면폐지 의견을 내놓아 논쟁의 불을 지폈다.

    하지만 이 같은 반격은 즉각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와 대법원에 의해 제압당하고 만다. 사법부는 공식적인 목소리를 통해 국보법의 존치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상자기사 참조). 8월26일 헌재가 대표적인 국보법 독소 조항으로 지적받는 제7조 찬양·고무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데 이어, 9월2일 대법원 1부(주심 이용우 대법관)가 ‘찬양·고무죄와 이적표현물 소지’ 등으로 기소된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2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국보법 존치론을 들고 나온 것.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했다는 반론이 나올 정도로 과격한 의견이 첨부됐지만, 법조계의 국보법에 대한 인식 틀을 재확인한 셈이다.

    정기국회 표 대결로 문제 풀릴까

    그러나 노대통령이 선봉에 서서 행정부의 의견을 정리함에 따라 사법부와 행정부가 대립하는 흔치 않은 상황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법조인들은 “국보법은 알면 알수록 중도에 서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법조계에서 국보법에 대한 중도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국보법이 ‘역사적 관점’과 ‘법리적 관점’의 대립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이미 노대통령은 “지난날 국보법은 대체로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들을 처벌한 것이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데 쓰여왔다”고 밝히며 법리적 논쟁이 아닌 역사적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심지어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한 원로 변호사는 “노무현 정권은 태조 이성계 이후 600년 만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권교체이기 때문에 어떠한 개혁 후퇴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당에서는 “헌법을 준수해야 하는 대통령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며 탄핵을 서슴없이 다시 거론하고 있으며, 고참 판사들은 “노대통령은 법조인 출신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극한 발언을 앞세우며 대립각을 높이고 있다.

    이제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중도파 의원들의 자리가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남은 것은 극단적인 표 대결뿐이다. 때문에 표를 확보하기 위한 이념과 역사 논쟁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과연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보법 논쟁은 종지부를 찍게 될까, 아니면 파국의 빌미를 제공하게 될까. 분명한 사실은 국민들 역시 국보법에 대한 명확한 자기 의견을 정리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게 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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