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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 달고 나니 마음 변했나

의원들 ‘특권 폐지’ 목청 높이다 이젠 ‘현실론’ 내세워 잠잠 … 의원 전용 승강기조차 ‘그대로’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금배지 달고 나니 마음 변했나

금배지 달고 나니 마음 변했나

국회는 6월29일 본회의를 열어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오른쪽)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재적의원 299명 중 286명이 참석해 찬성 121, 반대 156표로 부결시켰다.

“기차표를 얻는 게 특혜라면 특혜죠. 하지만 이런저런 특권이 100개가 넘는다는 말은 조금 과장된 것 같습니다.”

17대 국회에서 처음 금배지를 단 L의원은 국회에 들어오기 전 의원들이 비행기 1등석을 공짜로 이용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국회 입성 전 의원들이 누리는 특권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의정활동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제대로 일하기엔 지원이 오히려 모자라다고 느끼고 있는 것.

“면책특권 불체포특권이 문제가 아니라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 것, 특권을 악용해 근거 없는 폭로를 했던 게 잘못이지요. 반대로 턱없이 모자란 보좌진 수, 50%로 줄어든 후원금 한도액 등 현실화할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금배지가 ‘공공의 적’ 취급을 받던 4·15총선 직전 의원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국회 개혁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 의정생활을 경험하고 난 뒤 L의원처럼 ‘현실론’을 내세우며 한 발 물러선 의원들이 적지 않다.

여야, ‘국회 개혁’ 공약도 공염불 가능성



각 당이 앞다퉈 내놓은 ‘개혁 공약’도 갖은 이유로 재검토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은 총선 때 국민소환제를 이슈로 제기하면서 체포동의안의 기명투표 의무화와 처리기간 설정을 제안했고, 한나라당은 직무 관련 비리의 불체포특권 배제와 체포동의안 24시간 내 상정·표결 의무화를 제시했다.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역시 강도 높은 국회 개혁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야가 공히 약속했던 이들 공약이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를 방문한 유권자들은 “건물에 들어오면 주눅이 든다”고 말하곤 한다. 의원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들이 아직도 곳곳에 버티고 있기 때문. 의원 전용 통로, 전용 엘리베이터, 전용 식당, 특권의 상징인 붉은 카펫 등 국회는 온통 ‘의원 전용’ 투성이다. 민노당 이영순 의원은 “국회 울타리 안에 식당과 사우나에서부터 이·미용실, 헬스장, 의무실, 매점 등까지 없는 게 없다”면서 “국회 안에서 며칠 농성하면서 ‘이 안에서만 살아도 전혀 불편한 게 없겠다’고 느꼈다”고 꼬집는다.

총선 직후 당선자들이 방송에 출연해 하나같이 없애야 한다고 말했던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는 지금도 운영된다. 국회 승강기 앞에 붙여진 ‘의원용’이라는 팻말 역시 여전히 수난을 당하고 있다. 국회를 찾은 민원인들이 일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화가 나 찌그러뜨리고 있는 것. 박영선 의원(우리당)이 국회 본청 및 의원회관에서 운행하고 있는 의원용 엘리베이터를 없애자는 내용의 건의안을 제출했으나, 상당수 의원들은 전용 엘리베이터가 존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국회를 찾은 민원인들은 지금도 출입구 앞에까지 와서 5분 넘게 더 걸어 후문으로 출입한다. ‘주인’을 후문으로 출입하게 하는 근거는 ‘국회 청사 출입에 관한 내규’. 변하지 않은 국회의 행태에 유권자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8월20일 국회를 찾은 박모씨(54·서울 동작구 상도동)는 “정문에서 신분증 검사하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모르겠다. 이건 말이 후문이지 완전히 개구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불체포특권이니 면책특권이니 하는 건 없애지 못하더라도 이런 권위적인 행태는 당장 뜯어고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바뀐 게 하나도 없다’ 보니 벌써부터 “17대 의원들 역시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다”는 비판이 나온다. 각 당은 국회 개혁 문제와 관련해 “9월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면책특권 불체포특권의 제한과 국민소환제에 대한 상당수 의원들의 분위기는 ‘반드시 하겠다’→ ‘앞으로 하겠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로 변화하고 있다.

금배지 달고 나니 마음 변했나

의원회관에서 국회 관계자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17대 의원들의 노동 강도는 초선의원을 중심으로 이전 국회에 비해 대체로 세진 편이다. 법률안 발의도 활발해 의원 입법이 170건(8월18일 현재)에 육박한다. 그러나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진 법률안 중 자신들의 특권과 관련된 것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우리당 한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꼭 필요한 특권을 빼곤 모두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의원들의 분위기가 개원 초와 다른 데다 정쟁이 계속되고 있어 정기국회에서 특권 폐지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국민소환제’ 임시국회 끝난 뒤 흐지부지

엘리베이터나 전용 출입구 문제는 어떻게 보면 소소한 것들이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놓은 굵직굵직한 개혁 과제는 국민소환제, 불법정치자금국고환수특별법 제정, 의원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들 개혁정책은 하나같이 ‘현실론’에 밀려 물러서고 있는 형국이다. 상시개원, 복수상임위제 도입, 사무처 개혁은 이미 물 건너갔고 국민소환제 역시 입법 여부가 불투명하다.

대통령 탄핵처럼 국회의원의 비리, 실정(失政) 등에 대해 유권자들이 투표로 해임할 수 있게 하자는 제도가 국민소환제다. 총선 직후 여야 공히 국민소환제 도입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국회가 열리면 곧 도입될 듯했다. 그러나 임시국회를 마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안정적인 의정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고, 선거 경쟁자들이 결과를 부정하는 수단으로 무분별하게 악용할 수 있다”는 ‘신중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입법이 되더라도 소환 요건을 매우 까다롭게 해 제도의 본 취지를 살리지 못할 전망이다.

헌법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불체포특권은 헌법 제44조에 명시돼 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절대권력이나 집권자의 부당한 압력, 또는 탄압으로부터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금배지 달고 나니 마음 변했나

2월9일 한나라당 서청원 전 대표가 국회에서 석방결의안이 가결돼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가 이 특권을 비리의원 ‘보호막’으로 이용해온 게 현실이다. 정치권에서는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보고된 뒤 자동으로 폐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한을 정해 가부를 결정하게 하거나 투표 방식을 기명 또는 공개 투표로 전환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당 중진을 포함한 상당수 의원들이 “인사와 신상에 관련된 건을 실명투표로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면책특권은 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으로 불체포특권과 함께 헌법(제45조)에 명시된 의원의 특권. 일부 의원들은 이 특권을 근거 없는 폭로의 보호막으로 악용해왔다. 면책특권을 제한하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현실적으로 특권을 제한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그러나 윤리위원회를 통한 규제 등 특권을 우회적으로 제한하는 방법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논의가 국회에선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의원을 ‘정치 계급’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국민이 뽑았으되 국회에 들어가면 오히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의원들의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정치를 개혁하겠다며 표를 달라고 호소한 17대 의원들 역시 ‘정치 계급’을 획득한 것에 안주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특권 폐지 공약이 결국 공염불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주간동아 450호 (p24~25)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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