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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그리스인과 바다

  • 박범신/ 소설가

그리스인과 바다

그리스인과  바다
그리스 사람들은 굳이 백사장을 찾아다니지 않는다.수천 개의 섬과 수천 킬로미터의 해안선을 갖고 있는 그들에겐 바다가 곧 삶의 현장이자 생활공간이다. 오후 2시가 되면 직장인은 퇴근을 하고 상가는 일제히 문을 닫는다. 대지가 불타오르고 기온이 40℃를 오르내리니 그럴 수밖에 없다. 짧고 깊은 단잠을 자고 나면 곧 가까운 바다로 걸어나간다. 탈의실을 찾을 필요도 없다. 아무 데서나 적당히 가리는 체하면서 옷을 갈아입으면 된다. 수영복이 없더라도 상관없다. 도처에 누드 비치가 있고, 동성애 비치도 있다.

고대 그리스에선 동성 파트너를 갖는 일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아니, 누드 비치와 동성애 비치의 경계도 알고 보면 모호하다. 백사장이 있든 없든, 누드 비치든 동성애 비치든, 옷을 벗든 입든, 그런 경계는 사실 아무 상관도 없다. 아무 곳에서나 바닷물에 섞여들면 된다. 관광객 이외엔 누구도 그런 경계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필요한 것은 내 마음에 바다를 깊고 부드럽게 품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가만가만 부유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낮잠 뒤엔 어김없이 바다로 … 저녁식사도 바닷가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9시나 되어야 비로소 일몰이 온다. 선홍빛 노을이 바다로부터 사막 같은 황야의 낮은 산 너머로 이어지면 바닷물 툴툴 털고 나와 저녁식탁에 앉는다. 바다는 물론 식탁까지 이어진다. 멀고 가까운 해안선의 불빛들은 끝없이 반짝거리고 바닷바람은 갈비뼈 사이를 관통해 흐른다. 그리스인들에게 외식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다. 밤바다가 보이는 창 없는 타베르나(일종의 동네 선술집)에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자리잡고 앉아 꼬치구이인 수불라키나 야채가 주재료인 무사카를 먹을 때쯤 밝은 달빛 때문에 바다는 한낮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타베르나 악단은 밤새워 그리스 고유의 렘베티카를 연주한다. 만돌린과 비슷하게 생긴 부주키 선율은 모든 연주에서 대개 빠지지 않는다.

그리스에선 시간과 공간의 단층이 없다. 호텔에서 나와 서너 걸음만 걸어가도 손쉽게 슬쩍 수천 년 전으로 자맥질해 들어갈 수 있는 곳. 취해서 나는 자주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영혼과 만나곤 했다. 영원히 살기를 꿈꾸었던 고대 그리스인들과 함께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 같은 노래를 부를 때, 달빛의 부드러운 그늘에 은신해 2000년 전 그들의 손때가 묻은 부서진 대리석 기둥에 오줌을 누다가 별을 올려다볼 때, 부주키 선율이 날카롭게 내 몸의 생살을 찢고 관통할 때, 내 눈앞에 자주 영원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그 눈물겨운. 별이 될 수만 있다면. 즐거우면 노래를 부르는 우리와 달리 그리스인들은 춤을 춘다.



조르바가 크레타 해변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추던 바로 그 춤이다. 거구의 그리스 남자들이 음악에 맞춰 흔드는 어깻짓은 정말 품이 넓어 보인다. 아름다운 여자가 나와 춤을 출 때 그리스 남자들은 원형을 지어 쭈그려 앉아 박수로 추임새를 한다. 그것이 예의다. 2차나 3차는 가지 않지만 여흥은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그들은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악을 쓰고 남을 이겨본들 본질적으로 유한성의 고통으로부터 놓여나지 못하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불멸을 꿈꾸었던 고대 그리스의 찬란한 영광조차 시간을 이겨내지 못한 경험이 그들의 핏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가진 낙천성은 그래서 매우 선험적인 기질로 보인다. 그들에겐 더 부자가 되려 하기보다 오늘밤의 사랑이 순간의 기쁨을 붙잡아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수지맞는 장사다.

바다는 대부분 잔잔하다.

달빛을 받은 바다는 아주 부드러운 실크천을 길게 두른 듯하다. 여흥은 자주 새벽까지 계속된다. 이윽고 잠이 들면 바다가 따라와 머리맡에 함께 눕는다. 그리스에선 잠든 머리맡까지 바다가 따라와 함께 눕는 걸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 해변은 해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두 주일 동안 되도록 그리스인과 그리스의 바다를 닮으려고 애썼다. 그것이 수지맞는 장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날마다 바다로 갔고, 벌거벗고 바다를 품었으며, 저녁엔 구슬프기도 하고 신나기도 한 렘베티카 연주와 노래에 내 흥을 맡기고 놀았다.

불 밝은 파르테논 신전이 올려다보이는 좁은 비탈길 끝에 있는 단골 선술집의 밴드마스터는 조르바 같은 거구의 몸을 일으켜 춤추는 나를 바다처럼 안아주었다. 내 몸은 까맣게 탔고, 눈빛은 더 깊어졌다.

떠날 때쯤에야 비로소 그리스의 바다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앉는 걸 느꼈다. 아, 그 바닷길 통해 환한 신화의 땅, 고대 그리스로 갈 수만 있다면. 제우스 놀던 올림푸스로 갈 수만 있다면.



주간동아 450호 (p96~96)

박범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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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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